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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거부권, 보호무역으로만 읽을 것인가

2013.08.0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현지시각으로 8월3일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일부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애플이 미국으로 계속 제품을 들여와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는 뜻이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은 ITC에서 수입금지 결정이 나온 이후 60일 이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지난 6월 ITC는 ‘아이폰4’와 ‘아이폰3GS’, ‘아이폰3G’, ‘아이패드’, ‘아이패드2 셀룰러’ 등 일부 구형제품에 수입금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의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국내 여론이 한순간에 들끓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업체 애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과도하게 개입한 것은 아니냐는 유감도 뒤따랐다. 유감은 곧 우려로 연결됐다. 앞으로 비슷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이번처럼 미국 업체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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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결정이 미국 업체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함이었을까. 이 같은 주장을 마냥 지지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라는 국내 대표업체가 얽힌 일이기 때문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오로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연결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대형 법정 다툼을 계기로 표준특허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이클 프로맨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어빙 윌리엄스 ITC 위원장에게 띄운 서한에서 표준필수특허(SEPs: Standard Essential Patents)와 프랜드(FRAND) 원칙을 언급했다. 표준특허가 수입금지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수단으로 변해 경쟁업체를 과도하게 압박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이클 프로맨 대표는 “프랜드 원칙에 따라 표준필수특허를 제공하는 것은 혁신을 도모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ITC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CDMA 이동통신 시스템에서 인코딩/디코딩 전송 형식을 조합하고, 표시하는 장치 및 기구(특허번호 7,706,348)’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표준특허는 프랜드 원칙에 따라 다른 업체에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특허를 무기로 경쟁업체를 압박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정우성 임앤정특허사무소 변리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가리켜 “보호무역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보호무역주의로 본다면, 행정부 안에서 일반적인 정책적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업체와 다른 나라 업체가 다툼을 벌일 때 미국 기업에 유리한 판결이 나는 등 일방적인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정우성 변리사는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을 보호무역주의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또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보호무역주의관점이 아니라 특허권이 경쟁업체를 과도하게 압박하는 수단이 되는 것을 견제하는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미국 행정부가 앞으로 표준특허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방침을 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애플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진 탓에 국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을 보호무역주의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거부권 행사라는 얘기나 지난 198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쓰인 곁가지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는 얘기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ITC의 판결대로 애플의 일부 제품은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판매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많은 표준특허가 경쟁업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국내 업체나 기관 중 표준특허를 보유한 곳은 몇 곳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에트리(ETRI) 정도다. 기술특허 쪽에서는 국내 업체가 후발주자인 셈이다. 애플 제품의 판매금지 결정을 바탕에 두고 수많은 업체가 표준특허를 앞세워 경쟁업체를 압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결정이 삼성전자에는 안타까운 소식일 수 있지만, 기술 생태계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는 더 옳은 결정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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