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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폰’ 블랙베리, 어쩌다가…

2013.08.13

블랙베리가 매각을 검토중입니다. 상황이 썩 좋지 않은가 봅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블랙베리는 나름의 영역을 갖고 있던 스마트폰 기업이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블랙베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도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회사가 휘청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가 봅니다.

지금까지 나온 소식은 블랙베리가 이사회에서 특별위원회를 두고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블랙베리 플랫폼이 널리 퍼질 수 있는 대안을 찾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한마디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것은 매각입니다. 하지만 매각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설명입니다. 기업 전체를 매각할 수도 있고, 블랙베리10 운영체제 혹은 하드웨어 사업부를 떼내 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시장이 그리 원하는 게 아닐 겁니다. 역시 블랙베리의 가장 맛있는 열매는 역시 기업 서비스 솔루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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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의 기업용 서비스는 벌써 지난해부터 IBM이 한 번, 레노버가 한 번씩 손 댄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업들마다 직원들이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의 개인 기기를 업무에 활용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블랙베리 퓨전’ 같은 서비스가 이를 아주 잘 해줍니다. IBM과 레노버가 블랙베리에 어떤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결렬됐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블랙베리가 기업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매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기업용 솔루션일 겁니다. 하지만 블랙베리가 기업을 매각하려는 이유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보다 역시 블랙베리라는 플랫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보입니다.

블랙베리 이사회의 발표를 되짚어보면 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블랙베리 플랫폼이 더 많이 퍼질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라고 하면 올 초부터 이야기됐던 운영체제 개방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고 싶은데 운영체제 때문에 골치라면, 블랙베리를 쓸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좀 늦은 감은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윈도우 모바일을 이용해 블랙베리와 닮은 ‘블랙잭’을 만들기도 했고, HTC가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차차’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블랙베리의 하드웨어와 키보드라는 강점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블랙베리는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일까요? 명확합니다.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 때문입니다. 블랙베리는 운영체제부터 하드웨어까지 함께 만드는 세계에서 딱 2개 뿐인 회사입니다. 다른 하나는 애플이지요. 스마트폰이 업무을 돕는 것에서 시작했고 블랙베리는 여기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아마 스마트폰이 기업 시장에만 관련이 있었다면 블랙베리는 여전히 가장 잘 나가는 회사였겠지요.

반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로 시작된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게임, 영상 등 재미를 앞세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생활 정보를 결합해 대중 교통, 길찾기, 메시지, SNS 등을 이용하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기존 블랙베리 운영체제는 이게 안 되다시피 했고 업무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블랙베리10은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결국 블랙베리10이 나온 뒤에는 시장이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은 그 사이 저 멀리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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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안드로이드가 낮은 가격을 앞세워 블랙베리가 갖고 있던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데이터를 적게 쓰는 것이 블랙베리의 강점인데, 네트워크 상황이 안 좋은 저소득 국가들도 점차 통신망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가격을 낮추고 다양한 게임과 콘텐츠를 앞세우면 소비자들도 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심혈을 기울인 블랙베리 Z10, Q10은 너무나 비싸서 블랙베리의 주요 시장인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이 구입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몇 가지 잘못된 판단과 고집 그리고 적절한 시기를 맞추지 못한 것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빚어낸 셈입니다.

어쩌면 블랙베리는 기업이나 사업을 매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이사회는 사실상 블랙베리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 수순으로는 어제 나온 소문처럼 상장폐지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델은 일찌감치 돈이 있을 때 사모펀드를 끌어들여 주식을 거둬들였습니다. 회사가 잘 나갈 때야 CEO를 중심으로 직원들과 이사회, 주주들이 똘똘 뭉치지만, 어려울 때는 개선하기 위한 여러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돈에 휘둘리며 엉뚱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차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창업주나 CEO가 책임을 지고 기업을 이끄는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듭니다. 또한 매각, 상장철회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가도 오릅니다. 블랙베리에 선뜻 투자할 선의의 사모펀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쏜스텐 헤인즈 CEO의 블랙베리 살리기 의지가 강하고 블랙베리는 캐나다와 워털루 시의 경기를 떠받들고 있는 큰 축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최선인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는 알기 어렵지만 블랙베리와 관련된 모두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은 확실합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