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애플 ‘아이폰’ 키노트에 담긴 7가지 코드

2013.09.11

새로운 아이폰 ‘아이폰5S’와 ‘아이폰5C’가 9월10일(미국시간) 정식 발표됐다. 아이폰 출시 키노트는 이제는 매년 가을마다 열리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역시 애플은 새로운 아이폰을 내놓았고, 소문 속의 보급형 아이폰도 공개했다. 분명 팀 쿡 CEO을 비롯해 필립 실러, 크레이그 페더리히 등은 아이폰에 대해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 외에 키노트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본다.

apple_sep_2013_keynote

1. 너무 정확한 루머

또 다시 루머가 애플의 키노트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애플의 신제품에 쏠리는 관심 때문에 취재에 열을 올리는 미디어들도 이해는 되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내용이 미리 공개된 탓에 키노트는 김 빠진 맥주 꼴이 됐다. 아이폰5C 발표는 물론이고 제품 색깔, 아이폰5S의 A7칩, 지문인식 홈 버튼까지 키노트는 루머를 하나하나 확인시켜주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특히 지문인식 센서인 ‘터치 아이디’의 이름을 설명하는 순간에는 맥이 탁 풀렸다.

궁금해도 참을 수 있으니 개발이나 생산 과정을 지나치게 캐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터치 아이디는 지문 인식을 편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지만, 사실 기능만 따져보면 뻔하디 뻔한 지문인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이름을 터치 아이디로 지은 작명 센스 정도가 즐거운 요인이었다.

적당한 루머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나 기대를 불러오는 요인이지만, 이번 아이폰의 사례를 보면 이건 루머가 아니라 산업 스파이 수준이 아닐까.

iphone5S_hero

2. ’64비트 OS’의 진짜 의미

누군가는 또 ‘애플의 혁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 발표한 내용 중 가장 혁신에 가까운 변화는 iOS가 64비트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64비트 컴퓨팅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애플도 그저 ‘더 빠르다’는 정도로만 설명했지만, 왜 빨라지는지 알 필요는 있다.

64비트 컴퓨팅의 주된 성능은 메모리에 달려 있다. 32비트 컴퓨팅은 메모리를 최대 4GB까지 관리할 수 있다. 2의 32제곱이다. 32비트 컴퓨터에는 이 이상의 메모리를 올려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서 2의 64제곱만큼의 메모리를 관리할 수 있도록 운영체제와 프로세서가 바뀌고 있다. 그러니까 총 18,446,744,073,709,552,000바이트(B)의 메모리를 쓸 수 있다. PC에서는 이 문제를 벌써 10년 전에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메모리가 1~2GB에 머물던 모바일 기기에서는 아직 고민하지 않던 문제다. 메모리를 더 많이 넣을 수 있는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2GB 이상의 제품이 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64비트 운영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A7의 이 64비트 컴퓨팅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애플이 ARM v8 아키텍처, 그러니까 내년에 선보일 코어텍스-A57의 기술을 일부 당겨 썼을 가능성이 있다. 애플의 A시리즈 칩은 ARM의 설계를 라이선스해서 설계하는데, ARM은 ARM v8 아키텍처로 처음 64비트 컴퓨팅을 시작한다. 설계도 그 자체인 코어텍스 라이선스를 구입하지 않는 애플로서는 ARM v8의 아키텍처만 가져와 미리 적용했을 수 있다. 지난해에도 코어텍스-A15, ARM v7 칩의 출시 전에 애플은 이 기술을 일부 적용해 A6 칩을 만든 바 있다. 지난해보다 성능이 2배 빨라졌다고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64비트보다는 새 아키텍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폰5S의 메모리 용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아무리 커도 2GB를 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64비트 운영체제를 굳이 도입한 것은 앱과 개발 환경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애플은 개발도구인 X코드에 64비트 변환 코드를 넣어 32비트로 만든 앱을 64비트 버전으로도 어렵지 않게 포팅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인피니티 블레이드3’ 개발자는 키노트에 등장해 단 2시간 만에 64비트 앱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르면 1년 뒤, 늦어도 3년 안에 서서히 4GB 이상의 메모리가 보급되는 시기가 올 것이며, 이때면 애플의 앱스토어는 이미 64비트가 대세가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iphone5S_cam

3. 하드웨어 강조, 눈에 띄네

애플은 매년 새 기기를 발표할 때 하드웨어 성능을 강조하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강조했다. 그 동안은 아주 추상적이지만 직관적인 표현을 썼다. ‘이전보다 2배 빠르다’란 식이다. 물론 올해도 아주 재미있는 지표를 공개하긴 했다. 아이폰5S가 첫 아이폰에 비해 CPU는 40배, GPU는 56배 빠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올해는 A7 칩을 설명하면서 유난히 숫자 이야기를 상세하게 했다. 정수연산과 부동소수점 연산의 레지스터 성능이나 10억개의 트랜지스터, 102mm의 다이크기 등이다. 애플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낯설다. 쓰는 사람이 굳이 세세히 몰라도 되는 숫자들 아닌가. 64비트와 32비트 앱에 대한 설명도 사실상 아이폰 키노트가 아니라 지난 WWDC에서 했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드웨어 이야기를 덜어내고 기능들을 소개하려고 애쓰는 삼성전자의 최근 발표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느낌이다. ‘애플답지 않다’는 뒷맛이 남았다.

performance_m7_hero

4. 아이폰5의 단종, 살아남은 4S

아이폰5C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많고 상세한 소식이 있었기에 사실상 확정 분위기였다. 다만 아이폰5와 아이폰5C의 자리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아무래도 디자인이나 재질 때문에 아이폰5가 아이폰5S와 5C 사이에 자리잡을 것 같았는데, 결국 아이폰5는 단종된다. 대신 그 자리를 아이폰5C가 채우고, 공짜폰은 아이폰4S가 이어간다. 30핀 단자와 3.5인치 디스플레이는 1년간 수명을 더 연장하게 됐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저가 혹은 중국 시장을 노린 것도 있겠지만, 완성도가 너무 높은 이전 세대 제품이 신제품 판매에 간섭을 끼치는 이른바 자기잠식(Carnibalization), 시쳇말로 ‘팀킬’이 일어나는 것이 신경쓰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년간 애플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이폰을 판매했지만 그 안에는 적잖은 아이폰4S가 섞여 있었다. 이는 곧 애플 실적에 영향을 끼쳤다.

아마 아이폰5S가 나올 시기에 값을 내릴 아이폰5를 노리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알루미늄 바디로 매끈하게 뽑아낸 아이폰5는 분명 아이폰5S 판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시장에서 철수시키되, 같은 성능을 가진 플라스틱 아이폰을 내놓은 것이다. 저가폰이 아니라 고급폰의 판매 잠식을 방어하기 위해 아예 간극을 벌린 제품이다. 199달러면 아이폰5S 16GB나 아이폰5C 32GB를 고를 수 있는데 소비자가 성능을 포기하고 32GB의 용량을 선택해도 재질이나 프로세서 등의 차이로 애플은 결코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나마 틀린 소문을 꼽자면 ‘아이폰5C가 저가 시장을 노린 공짜폰’이라는 것 정도가 되겠다.

iphone5C_hero

5. LTE-A? LG유플러스?

올해는 통신망 이야기가 쏙 빠졌다. 아마 국내 통신사들은 아이폰의 LTE-A를 간절히 기다렸겠지만, 아쉽게도 LTE-A는 없었다. 다만 더 넓은 통신망에 범용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 LTE 로밍 문제가 해결됐다는 얘기다. 무려 5가지 세부 제품이 나온다.

국내에는 일반적인 LTE모델인 A1533(GSM) 버전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 기기는 1, 2, 3, 4, 5, 8, 13, 17, 19, 20, 25 등 모두 11가지 LTE 주파수를 잡을 수 있다. 1대로 거의 전세계에서 LTE를 쓸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3G를 CDMA로 바꾼 A1533(CDMA) 버전이 갈라진다. 이제껏 아이폰을 써 왔던 통신사들은 이 2가지 제품을 쓴다.

여기에 CDMA와 UMTS. TD-LTE 등에 따라 A1453, 1457, 1530 등의 제품들이 더해졌다. A1530이 FDD-LTE와 TD-LTE를 혼용해서 쓸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중국용 기기다.

특이한 것은 CDMA망 지원이 늘었는데, CDMA EV-DO Rev.A와 Rev.B 방식으로 800, 1700, 1900, 2100MHz대의 주파수에 접속할 수 있다. 현재 LG유플러스는 2.1GHz의 CDMA EV-DO Rev.B를 서비스하고 있는데 CDMA방식의 A1533 아이폰5S가 이 주파수와 LTE를 동시에 쓸 수 있다. 실무적인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사양만 읽어보면 LG유플러스도 아이폰5S를 판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또 다시 타진해볼 수 있다.

iphone5S_carrier

▲아이폰5S의 세부 모델. 국내에는 A1533(GSM)이 기본으로 들어온다. CDMA 주파수 지원을 늘린 A1533(CDMA)가 LG유플러스에서 개통될 가능성도 있다.

[업데이트] LG유플러스의 CDMA 주파수 확인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습니다. LG유플러스의 CDMA EV-DO는 1.8GHz에서 서비스되기 때문에 아이폰5S 역시 LG유플러스에서 출시는 어렵습니다. VoLTE가 안되니 싱글 LTE로도 쓸 수 없습니다. 안타깝네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6. 생중계 사라진 까닭

이번 키노트는 동영상 라이브 중계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아이패드, 올해 6월 WWDC의 키노트는 애플TV와 아이튠즈를 통해 생중계했는데 이번 아이폰 이벤트는 영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11일 오전에 중국과 일본에서 이뤄질 현지 이벤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중국과 일본에서 별도의 발표회를 갖고 키노트 영상을 녹화해 보여줄 계획이다.

지난해 아이폰5 발표 당시에는 LTE 통신망 때문에 국내 두 통신사가 주목받았는데, 올해는 중국과 일본이 그 자리를 꿰찼다. 중국은 처음으로 아이폰1차 출시국으로 발표됐고 애플도 이를 강조했다. 금색 아이폰5S가 나온 배경도 중국인이 유독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일본도 1위 통신사인 NTT도코모를 통해 처음으로 아이폰이 출시된다. 일본은 애플 제품을 쓰는 비중이 매우 높은데 그간 일본에서 3위에 머무르던 소프트뱅크가 아이폰을 적극적으로 밀며 2위를 넘나들었다. KDDI도 아이폰을 출시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1위 업체인 NTT도코모는 소니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제품만으로 대응했는데, 올해부터는 아이폰을 직접 유통하게 됐다. 일본에서 아이폰 판매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를 증명하듯 키노트 시작 전에 뒷문으로 NTT도코모 사장이 몰래 입장하는 장면이 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iphone5C-color

7. 애플의 유머

애플 키노트에서 유머는 이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지난 WWDC에서 기가 막힌 유머로 단숨에 스타가 된 크레이그 페더리히는 이번에도 iOS7을 들고 나왔다. iOS7의 기능들을 부지런히 소개하면서도 농담을 빼놓지 않았다. iOS7에는 벨소리가 여럿 추가됐다. 그 동안 베타 버전에도 없던 사운드들이다. 테크노 음악 벨소리를 들려주면서 “춤추느라 전화를 못 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웃음을 일으켰다.

또한 iOS7의 스포트라이트 검색 기능을 소개할 때도 메시지에 ‘Craig, your hair looks good’이라는 문장이 등장했는데, 곧이어 알람 기능을 데모할 때 ‘pick up shampoo and conditioner’라는 메시지가 떠 웃음을 터뜨렸다. 페더리히는 특유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는데,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필립 실러 역시 아이폰5C의 재질을 설명하면서 “비소, 수은 등의 공해가 없고 안드로이드도 없다 (Arsenic-free, mercury-free, and Android-free)”고 말해 참석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안드로이드를 비꼰다기보다는, 한때 아이폰5C 디자인에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는 제품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던 점을 염두에 둔 농담으로 보인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