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人] 김만수, “열정에 미래를 베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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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3개월, 6개월, 9개월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고 싶어하는 직장인의 마음을 빗댄 표현이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기도,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한 회사에서 19년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일을 맡은 직장인이 있다. 김만수 한글과컴퓨터 A개발실 실장 얘기다. 남들은 3~4번 정도 회사를 옮겨다닐 동안 그는 한 회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개발자’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일까. 김만수 실장에게 비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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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에 약한 개발자

김만수 실장은 대학교 졸업 당시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을 살리고자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했다. 당시 한글과컴퓨터는 전직원 300여명 규모의 ‘아담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였다.

“처음에 회사에 입사했는데, 회사 분위기가 약간 학교 같더라고요. 대부분의 개발자가 밤에는 개발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모습이 일반 대학교 컴퓨터 동아리 같았지요. 다들 정말 개발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김만수 실장은 막내 개발자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열심히 배우고, 선배들을 곁눈질해 가며 열심히 배웠다. 프로그래밍에 빠져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고, 전철 타고 갈 때도 코드가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개발자라고 해서 항상 코딩만 하는 건 아니더군요. 고객을 직접 만나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고, 제가 싫어하는 개발을 해야 할 때도 있었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좋을 줄 알았는데, 꼭 좋지만은 않더군요.”

김만수 실장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했다. 현실은 달랐다. 을 받고 하는 일에는 일정한 책임과 의무가 뒤따랐다.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었다. 김만수 실장 마음속에 갈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시키는 일이 싫어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게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회사로 옮길까 고민도 했지요.”

김만수 실장이 이직을 결심할 때마다 그의 마음을 잡아줬던 건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배들이었다. 같이 술잔도 꺾으면서 고민을 나눴다. 고민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원래 이직하려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지 않고 바로 옮겨야 하는데, 전 제 동료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술도 한잔 하면서 얘기도 나누면 금방 마음이 풀어져요. 보통은 술로 해결하지 말라고 하지만, 전 술자리 같은 뒤풀이로 해결할 것을 추천합니다. 근원적인 문제 해결도 좋지만, 감정적인 갈등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자리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발 과정에서 경험한 좋은 기억도 계속 개발자로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언제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에 사소한 기능을 추가해줬으면 좋겠다는 한 고객의 부탁을 받았다. 김만수 실장은 따로 개발할 필요 없이 쉽게 추가할 수 있는 기능이라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굉장히 고마워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계속 개발자로 남을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됐다고 할까요.”

물리학도, 농활 대신 컴퓨터에 빠지다

사실 김만수 실장은 물리학을 전공했다. 남들보다 뒤늦게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농활을 가려고 준비했을 때다. 컴퓨터 동아리에 가보자는 친구 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인생은 달라졌을 게다.

“그 전에는 컴퓨터에 관심도 없었어요. TV나 시계를 뜯고 조립하는 것엔 관심이 있었는데, 컴퓨터나 게임엔… 글쎄요. 별 생각 없었습니다.”

친구 따라 간 컴퓨터 동아리 방에서 김만수 실장은 신세계를 만났다. 애플2 컴퓨터에서 ‘스네이크 바이크’라는 게임이 실행되는 모습, 코드 몇 줄을 넣으니 원하는 기능이 실행되는 모습에 홀딱 반했다.

“전공 공부가 뒷전이 됐지요. 물리학도 재미있는 학문인데, 컴퓨터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뒤늦게 불이 붙었지요.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선택했습니다.”

군대에 갔을 땐, 너무나도 컴퓨터가 하고 싶어 책을 사서 내무반에 갖다 놓을 정도였다. 김만수 실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마치 늦게 접한 컴퓨터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 공부에 매진했다.

“그럼 뭐해요. 제대하고 나니 머리가 하얘지더군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거예요. 어떡해요. 다시 시작했지요. 이게 인연이 돼 제가 지금까지 개발 일을 하고 있어요.”

개발, 정말 좋아서 해라

김만수 실장은 배움에 늦음은 없다고 본다. 그 자신이 대학교 1학년 때 직접 체험했듯이, 늦게 개발을 시작하더라도 개발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 있으면 언제든지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연봉이나 처우를 감안해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정말 좋아서 개발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만 있으면 어떤 힘든 일이든지 참고 넘길 수 있거든요. 아, 뭔가 표현하기 어렵네요.”

요즘 유행어 중에 ‘느낌 아니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김만수 실장은 개발할 때 그 ‘느낌’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개발 지식과 실력도 중요하지만, 개발 그 자체에 대한 ‘좋아함’을 개발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만약 자신이 개발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19년 동안이나 한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개발이 좋아서 개발자가 됐습니다. 좋아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개발을 업으로 삼고 있어요. 제 꿈이 개발자였기에 계속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신입 개발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개발자를 꿈꾸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원해서, 좋아서, 사랑해서 개발을 택했으면 합니다.”

김만수 실장은 스펙 때문에, 월급 때문에, 직장에 취직해야 하니까 개발자를 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개발에 뜻을 두지 않고 개발자 길을 걷다간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채 개발자란 길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발자를 꿈꾸는 친구라면 대학교 1~2학년 때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전공이 컴퓨터공학이라고 해서 막연하게 개발자를 꿈꾸기보다, 어떤 개발을 하고 싶고,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개발자가 됐으면 합니다. 그럼 오래 개발자로 일할 수 있거든요.”

김만수 실장은 고민 끝에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섰으면 후회하지 말고 되돌아가라고 충고한다. 맞지 않는 길에 계속 투자하지 말란 얘기다. 대학교 4학년이라도 개발이 자기 길이 아니고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단호히 다른 길을 택할 것을 권유한다.

“요즘 개발자들 뽑아보면 다들 실력이 좋아요. 개발 실력도 훌륭하고 영어 실력도 좋지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개발에 대한 열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중에라도 후회하지 말고, 진지한 고민 끝에 아니란 생각이 들면 다른 분야에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전 지금도 개발자가 꿈이에요. 제가 퇴직했을 때도 후배들이 저를 기억해주는 개발자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