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비영리단체 만남 흐드러진 ‘봄봄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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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일등으로 도착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30여명이 넘는 사람이 행사가 시작하기 1시간30분 전부터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같이 KTX를 타고 대구에서 올라온 참가자부터 일찌감치 자리잡고 동료를 기다리는 사람까지, 11월1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6층에서 열린 ‘체인지온 2013’은 문도 열기 전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체인지온은 공익적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가치를 만들도록 돕는 행사다. 다음세대재단이 주최·주관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후원한다. 해마다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문을 여는데, 올해로 어느덧 6회째를 맞았다. 블로터닷넷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도 해마다 파트너로 참여했다.

체인지온엔 독특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매년 행사 시작 전에 안내 동영상을 통해 ‘행사장에 가장 먼저 온 사람’, ‘1등으로 참가비를 낸 사람’, ‘가장 먼저 행사를 등록한 사람’, ‘이번 행사와 관련 있는 주제가 이름에 들어간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본격 행사에 앞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주최측 배려다. 지난해 처음 와 보고 올해엔 나름 ‘1등 도착’을 노렸는데, 실패했다. 얼마나 일찍 와야 전광판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는지…. oTL

올해 체인지온은 ’11월의 봄봄봄’을 문패로 내걸었다. 올해 ‘미디어가 남긴 다양한 의미를 돌아보고, 데이터가 가진 미래적 가치를 내다보며, 미디어를 통해 변화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라는 주제란다. 참가자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돌아봄’, ‘내다봄’, ‘둘러봄’을 주제로 어떻게 비영리단체들이 미디어를 활용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설명했다.

올해도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가 사회자 마이크를 잡았다. “원래 제가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사회 자리에서 은퇴하려고 했는데요. 올해 사회를 볼 예정이었던 친구가 퇴…퇴사하는 바람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이어지는 유머에 청중이 쉴새없이 ‘빵빵’ 터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컨퍼런스. 체인지온 전매특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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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온 2013′ 행사 현장인 서울 양재동 엘타워. 이른 아침부터 많은 참가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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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제는 ‘봄봄봄’이다. 돌아봄, 둘러봄, 내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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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변함없이 방대욱 상임이사가 맡았다. “올해는 은퇴하려 했는데…” ^^;

돌아봄

방대욱 이사가 달궈놓은 분위기를 이어간 사람은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였다. 그는 ‘네트워크 안에 힘이 있다’라는 주제로 비영리 조직 실무자들의 디지털 미디어 사용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지루하게 조사결과를 나열하기보다는, 자신의 예를 직접 들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한동우 교수는 ‘10월의 하루’라는 트위터에서 시작한 한 소셜 축제를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떻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았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동우 교수는 ‘느슨한 관계’가 만드는 힘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저는 트위터 팔로어도, 페이스북 친구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올린 얘기가 잘 공유되는 까닭은 제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훌륭하기 때문이죠. 그물망처럼 촘촘한 네트워크보다는 얼기설기 형태로 된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활발한 공유 작업이 일어납니다.”

한동우 교수는 비영리단체라면 더욱 활발히 소셜미디어에 손을 내밀어 보라고 주문했다. “허공에 발길질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서도 움직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번 미디어 조사를 해보니 대부분 비영리단체가 카페와 페이스북을 운영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금만 더 손 내밀면 저처럼 쉽게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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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온 단골 기조발표자 가운데 한 분인 한동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소셜 네트워크의 가치에 고개를 끄덕일 무렵, 한 호리호리한 체형의 여성 강연자가 무대에 섰다.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겸 정신과 전문의였다. 이 강의는 그야말로 집단 ‘힐링’ 체험장이었다. 정혜신 대표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정신 상담을 한 경험을 들려주며 ‘개별적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 청중의 공감을 얻었다.

“한 개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는 상황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경제적 측면에선 낭비일 수 있을 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깊이 집중하는 효과가 다른 많은 사람에게 동심원처럼 퍼져나가기 때문이에요. 이런 공감력 때문에 많은 시민이 움직이고 치유가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직접 마주하자라는 말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강연장 이곳저곳에서 눈시울을 붉히거나 코 끝을 매만지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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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의 콧날을 시큰하게 한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

바통을 이어받은 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는 특이한 직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소셜 컬처 엔지니어’가 꺼내든 주제는 간단명료했다. ‘소셜은 살롱이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광장이지만, 사실은 살롱이 돼야 합니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흥을 돋우지 못하면 안 됩니다. 갑자기 트윗을 시작해 팔로어를 몇만명 모아야겠다는 숙제를 떠안으면, 그게 재미있을까요? 오늘 행사에서도 옆 사람과 인사 나누고 즐겁게 소통해 보세요. 살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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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살롱을 만듭시다~!”

둘러봄

예정보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자 흥겨운 선물이 마련돼 있었다. 식곤증도 쫓고, 분위기도 돋우자는 뜻이려나. 아카펠라 그룹 ‘다이아’의 막간 공연이 이어졌다. 사실 잘 모르는 그룹이었는데, 첫 노래를 듣고 무릎을 쳤다. ‘삼천원 삼천원 삼천원~♫’. 아하, 패스트푸드 맥×날× 광고 CM송을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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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점’은 체인지온 자랑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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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그룹 ‘다이아’의 깜짝 공연.

짧은 공연이 지나가고 오후 세션이 시작됐다. 맙소사! 점심 이후 첫 강연이 외국인 연사라니. 그나마 강연 주제가 흥미를 끄는 게 다행이었다. ‘데이터로 비영리를 내다보다.’ 커트 보엘커(Kurt Voelker) 포럼원 CTO가 동영상 화면에 떴다. 그는 비영리단체가 데이터를 잘 활용한 사례와 데이터를 쉽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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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첫 세션을 맡은 커트 보엘커 포럼원 CTO. 점심식사 마치자 마자 영어 강의를….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조성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도 비슷한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조성준 교수는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사례 중심으로 소개했다. 특히 날씨나 습도, 온도 등 기후 데이터를 분석해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등급을 예측할 수 있다는 대목이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 활용 사례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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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와인 품질도 예측할 수 있답니다.”

내다봄

컨퍼런스도 어느덧 마지막 고개로 접어들었다. 지난해에도 느꼈지만, 체인지온 행사는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제 미래를 들여다보는 ‘내다봄’ 자리. 이 세션은 체인지온 지역 행사인 ‘체인지온@'(체인지온 앳)에서 인기를 끌었던 연사들 중심으로 진행됐다.

첫 발표는 최용선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정책팀장이 맡았다. 그는 광주시가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어떻게 지역을 변화시키는지 소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인상깊은 건, 최용선 팀장이 속한 광주 광산구청은 공무원을 ‘공무활동가’라고 부른다는 대목이었다. 공무원도 시민단체 활동가처럼 주체적으로 지역을 바꾸기 위해 열정을 분출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단다. 발표를 들어보니 헛말이 아니었다.

광주 광산구는 5년마다 인구 센서스 조사를 한다. 1년에 1800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조사다. 이렇게 조사한 데이터가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 게 최용선 팀장은 안타까웠단다. 그래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고 재정렬해 지역별로 연령 분포를 시각화하고, 그에 맞는 지역별 시설 지원 정책을 세웠단다.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엔 노인정을, 어린이가 많은 곳엔 어린이집을 우선 지원하는 식이다.

올해 5월엔 위치정보를 활용해 5.18 사망자 지도도 만들었다. 정부에서 5.18 사망자로 공식 확인한 165명 데이터를 분석해 날짜, 사건, 사망 유형별로 데이터를 시각화했다. 이렇게 만든 지도는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무상 기증했다고 했다. ‘공무활동가’란 직함이 썩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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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광산구청의 ‘공무활동가’ 최용선 팀장.

개념미디어 ‘바싹‘에서 일하는 정종우 기자의 발표도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바싹’은 부산지역 아마추어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뜻 맞아 만든 웹진이다. 제작 과정부터 발행까지 우연과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단다. 잡지 형태도, 주제도 마니아 내음을 물씬 풍겼다.

“저희는 기자란 직함 대신 ‘씨부렁이’라고 불러요. 안무가, 시간강사, 백수, 시인, 고등학교 자퇴생, 실제 대학생, 화가 등 다양한 씨부렁이가 활동하고 있죠. 각자 관심사를 정리하는 게 곧 ‘바싹’의 미디어 활동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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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디어 ‘바싹’의 정종우 기자. “씨부렁이 해 보실래요?”

마지막 발표는 최영 진주YMCA 간사가 맡았다. 최영 간사는 비영리단체가 어떻하면 ‘스마트’해질 수 있는지 소개했다. 그는 종이 결재와 e메일 소통을 뛰어넘어 다양한 소셜미디어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면 보다 ‘똑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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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진주YMCA 간사. “비영리단체도 얼마든지 스마트해질 수 있어요.”

체인지온은 행사 마지막에 늘 ‘오픈세션’을 마련한다. 온라인 투표를 거쳐 선발된 5명이 ‘비영리와 미디어’를 열쇳말로 20장의 슬라이드를 15초씩 자동으로 넘기며 5분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너무 빨리 화면을 넘기며 얘기하는 바람에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체인지온 웹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과 발표 자료로 대신해 주세요. oTL)

체인지온 행사는 본행사인 강연 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행사장 바깥에는 비영리단체 종사자들이 들고 온 각종 팜플릿과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쉬는 시간 짬을 내 한바퀴 휙 돌기만 해도 이들 단체의 주요 활동을 에둘러 살펴볼 수 있다. 주최측인 다음세대재단의 세심한 배려도 눈에 띈다.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참가자 좌석에 ‘간식 봉투’를 놓아주거나, 오후 세션 막간 쉬는 시간에 ‘비타민 월’을 만들어 졸음을 쫓고 원기를 회복하도록 배려하는 식이다. 발표가 끝나면 강연자들이 추천해 준 책 꾸러미를 추첨을 거쳐 증정하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사회자인 방대욱 상임이사의 ‘입심’도 이때 절정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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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책 선물 받아서 얼떨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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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 마련된 비영리단체 기념품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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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참가자분들, 인연의 벽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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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후엔 간식을. 아! 체인지온은 종이컵을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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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무릎담요로 훈훈하게. :)

다음세대재단 체인지온 행사는 내겐 올해 두 번째이지만, 벌써부터 낯익은 얼굴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해마다 잊지 않고 찾는 단골손님도 적잖다고 한다. ’비영리와 소셜미디어’란 큰 주제는 비슷하지만, 해마다 발표 내용이 달라지는만큼 배움의 장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내년에도 새롭고 흥미로운 ‘살롱’을 열어주시길.

체인지온 2013의 모든 발표 자료와 동영상은 체인지온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행사 사진은 다음세대재단 플리커 계정에서 확인하면 된다. 컨퍼런스를 놓쳐 입맛을 다시고 있다면, 동영상과 발표 자료로 아쉬움을 달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