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人] 류형규 리더 “음반으로 ‘덕질’ 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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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형규 SK플래닛 프로젝트리더(PL)는 ‘음반 덕후’다. 그의 ‘덕질’에 질린 아내는 음반을 모아두는 방을 한 칸 내줬다. “수집한 음반이 지정한 공간을 넘어오지 않게 신경써 달라”는 당부만 덧붙였다. 그가 주로 수집하는 음반 장르는 대중가요다. 수집한 음반이 몇 개인지 세는 건 오래 전에 포기했다.

“어렸을 때 우표 수집하는 사람 많잖아요. 대부분 한 시절 취미로 수집을 했다면, 저는 꾸준히 음반을 수집해 지금까지 유지했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좋아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좋아하고 끌리는 데 이유가 있나요.”

좋아하는 일은 부업으로 이어졌다. 류형규 리더는 매니아DB 운영자다. 매니아DB는 대중가요 음반 정보를 수집하는 웹사이트다. 현재 아티스트 정보는 20만건 이상, 음반정보는 35만건 이상, 악곡 정보는 425만건 이상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이곳에 있는 정보량은 그와 그의 친구 박진건씨와 함께 사서 모은 음반에 거의 비례한다.

시작은 사소했다. 1996년, 그의 음반 덕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류형규 리더는 가지고 있는 음반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릴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 전길남 카이스트 교수로부터 네트워크 개론 강의를 듣고 있을 때였다. 홈페이지 제작 숙제가 떨어졌고, 류형규 리더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처음엔 음반 목록과 가수·작곡가 정보를 주로 올렸다. 나중엔 가지고 있는 음반을 MP3 파일로 만들어 올렸다. MP3로 음악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일을 크게 문제삼지 않던 시절이었다.

“음반 수집을 하다가 웹사이트에 이를 DB로 만들어 공개하니 사람들이 ‘이런 음반도 갖고 있냐’부터 ‘고맙다’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 관심이 기뻤습니다. 더 많은 관심을 끌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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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형규 리더, 가수 한대수, 박진건(왼쪽부터). 류형규 리더는 한대수 팬클럽에서 박진건씨를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에 불과했던 류형규 리더의 음반DB 웹사이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다. 류형규 리더는 DB화를 위해 듣지도 않는 음반을 추가로 구입하고, ‘진건이의 가요DB’ 를 운영하는 친구를 만나 서로 DB를 합쳤다.

류형규 리더는 해외처럼 국내 대중가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웹사이트가 없다는 점에도 자극받았다. 구글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디지털 도서로 만들듯, 음반도 디지털화해 웹사이트에 차곡차곡 쌓으면 어떨까.

물론 쉽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친구 박진건과 함께 ‘케이팝DB’를 만들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다. 시장이 ‘디지털 음악’을 모를 때 디지털 음악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게 판단착오였다. 둘은 2003년 서비스를 접었다. 그리고 2005년 ‘매니아DB’란 이름으로 둘은 음반 DB화에 도전했다. 그러면서 음반 DB화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했다.

“처음에는 일일이 정보를 입력했습니다. 요즘에는 크롤러를 돌리죠. 검색엔진 봇이 몇몇 타깃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메타데이터를 뽑아 수동 또는 자동으로 음반DB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은 서버를 이전하면서 크롤러가 잠깐 작동을 멈췄습니다.”

이들은 로봇이 긁어오는 작사, 작곡 정보가 맞는지부터 해당 음반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조금씩 음반 정보를 추가했다. 평일 밤에 1~2시간, 주말엔 보통 반나절 정도를 매니아DB에 투자했다. DB화 과정에 필요한 도구는 직접 개발했다. 주로 어떤 가수를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지, 소녀시대 멤버 각각의 인기도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구글트렌드 비슷한 서비스도 개발해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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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형규 리더 아내가 음반 수집을 허락한 공간

류형규 리더는 자신이 만든 DB를 다른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쓸 수 있게 API도 개방했다. 누구나 매니아DB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하지 못했을 겁니다. 즐거워서 하는겁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제 정보를 가지고 더 다양하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들인 수고만큼 시간을 절약하면서요.”

류형규 리더가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가 갖고 있는 음반 중 DB화된 건 채 반도 되지 않는다.

“갈 길이 멀지요. 게다가 전 제가 갖고 있는 음반을 무손실 음원으로 만들어 보관하려는 욕심도 갖고 있습니다. 한 5테라바이트(TB)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