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선구자 3인이 말하는 ‘한국 인터넷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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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트 아시아 09’가 9월17·18일 이틀동안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리프트’는 전세계 IT 분야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혁신 사례를 소개하고 인터넷의 현재와 미래, 기술 흐름과 방향을 다루는 글로벌 컨퍼런스다. 2006년 스위스에서 창립돼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지난 2008년부터는 아시아 지역 나라들을 중심으로 ‘리프트 아시아’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둘쨋날인 18일 오전에 열린 대담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한국 인터넷 20년’을 주제로 국내 인터넷 서비스 1세대로 꼽히는 전문가 3명이 대담을 나누고 초기 인터넷 역사와 뒷얘기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허진호, 이재웅, 이동형 세 분이 대담자로 나섰다. 허진호 네오위즈인터넷 대표는 한국에 인터넷을 처음 연결하고 최초의 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인 주인공이다. 이재웅 님은 1995년 무료 웹메일 서비스 ‘한메일’을 선보이고 한국 첫 포털서비스를 태동시킨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다.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는 한국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전세계에 널리 알린 싸이월드 창업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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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한국 인터넷 선구자 3명은 90년대 중반 한국 인터넷 산업 태동기를 회고하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이유와 가치에 대해 조언을 하고 의견을 나눴다.

세 사람은 모두 “지금은 창업하기에 결코 어려운 환경이 아니며, 미래 비전을 갖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충고했다. 허진호 대표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의 벤처 투자 환경은 100년에 올까 말까한 광풍으로, 그 환경이 지금 창업 환경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며 “중요한 건 자기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이며, 바뀌는 환경에 따라 적절한 기회를 찾고 얼마나 거기에 집중하느냐의 문제”라고 끈기와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도 여기에 동의했다. 이재웅 씨는 “기업가들이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고 잘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게 성공한 기업일까”라고 반문하며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다음 창업 당시엔 대기업들이 잇따라 인터넷 서비스에 뛰어든 상태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회고하며 “벤처의 장점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이용자와 신속히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점이 새로이 가치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이라고 도전과 끈기를 강조했다.

이동형 싸이월드 창업자는 이동형 대표는 ‘후배에 대한 사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싸이월드 창업 당시엔 살아남기 위해 우리 서비스 테두리 안에 이용자를 가둬놓고 파트너를 죄는 구조에 익숙해져 사업을 해왔다”며 “나는 누군가로부터 좋은 기회를 받아 작은 성공을 이뤘지만, 과연 내 성공이 후배 창업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1999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시장이었다면 지금 2009년도 또 한 번 광풍이 불어닥칠 전야제 시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라며 “이번엔 훨씬 효과적으로 인터넷을 키워 지속가능한 플랫폼이 되도록 저도 참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009년 인터넷 환경을 둘러싼 규제와 감시의 움직임에 대해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허진호 대표는 “우리나라에선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다신 그런 행동을 못 하도록 질식할 정도로 강한 규제와 법률을 만드는데, 실제로 규제와 법률의 규칙을 꼬박꼬박 지키면서 경제활동 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라며 “시장과 사회의 자정 능력을 믿고 정책당국은 최소한의 규칙만 만들고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대화와 소통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창의력의 원천은 다양성이며 혁신도 다양성에서 비롯되는데,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획일성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며 “두 가치가 충돌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나 정책담당자, 업계 종사자와 이용자가 좀 더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생각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아야 하며, 그런 소통 도구로 인터넷이 이용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표시했다.

이동형 대표는 “다른 사람의 기회를 막아선 정당하지도 않고 옳은 제도도 아니다”며 “지금은 자유에서 반대방향으로 가 있는 상태인데,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아올 걸로 믿는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사회를 맡은 황순현 엔씨소프트 상무는 “정부의 인터넷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시계를 몇 년 앞으로만 돌려도 한국 정부는 인터넷산업 부흥을 위해 무모하리만치 투자를 집중했다”며 “지금은 인터넷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이익보다는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지만, 이것 역시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희망을 잃지 않기를 주문했다.

‘한국 인터넷 20년’ 대담 전문은 아래와 같다.

토론 : 한국 인터넷 산업 20년 역사

참석자 : 허진호 네오위즈인터넷 대표 / 이재웅 다음 창업자 /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싸이월드 창업자) / 황순현 엔씨소프트 상무(사회자)

황순현 : 안녕하세요. 이 세션은 리프트 아시아에서 여러 세션 중 가장 준비되지 않은 세션이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한 장도 없다. 여기 네 분은 불과 한 시간 전에 만나 세션을 어떻게 진행할 지 5분 정도 얘기를 나누고 이 자리에 올라왔다. 한국 인터넷 개척자인 세 분과 같은 자리에 선 것은 제게 영광이다. 당시 저는 저널리스트로 세 분 사업을 취재해 올렸고 얘길 나눴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섰다.

한국 인터넷이 20년 됐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따져서 20년인지 저는 몰랐다. 알고보니 국내 최초 민간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인 허진호 대표님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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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 왜 토론 제목을 ‘한국 인터넷 20년’으로 잡았는지 저도 궁금했다. 오늘 아침 얘기 나누며 저도 깨달았다. 우리나라가 해외 전용선으로 인터넷에 처음 연결한 게 1988년 12월이다. 하와이대학과 TCP/IP로 직접 연결했다. 그래서 한국 인터넷 역사를 20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저는 1983년 국내에 ‘SDN’이란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팀원이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다. 그 이후 90년도까지 SDN을 국내에 구축하고, e메일 시스템을 꾸리고, kr 도메인 디자인을 구현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후 1994년 아이네트란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창업했다. 최초의 인터넷 회사라고들 얘기하지만, 요즘 말하는 웹기반 인터넷 회사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아이네트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KT 브로드밴드 서비스와 비슷한 형태다. 아이네트는 웹서비스 회사는 아니지만 최초로 인터넷을 채택한 회사라 인터넷과 관련한 새로운 기회가 많았다.

아이네트는 나름 성공한 회사다. 창업 이듬해인 1995년에 매출 20억원을 기록했고, 1999년에는 매출액 300억에 30억원 흑자를 냈다. 당시 기업공개(IPO)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회사를 매각했다. 그 과정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우선 저는 인터넷회사 혹은 웹기반 서비스 회사의 광고 모델을 믿지 않았다. 1995년 야후닷컴이 처음 등장하면서 배너광고가 등장했고, 무한히 많은 웹페이지 만들면서 무한한 광고공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사업 초기 두 번 정도 웹 관련 비즈니스 기회가 있었다. 1995년 9월 아이월드닷넷이란 웹 디렉터리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야후닷컴과 비슷한 구조였다. 하지만 스스로 광고기반 웹서비스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거기에 집중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회는 1996년 초 아이네트 자회사인 아이소프트에서 앳소프트란 웹기반 e메일 솔루션을 개발했다. 1996년 다음이 내놓은 한메일과 비슷한 서비스를 할 수 있었지만, 저는 기업 대상으로 솔루션을 판매할 생각만 했다. 키워드 검색광고가 성공한 걸 보기 전까진 인터넷 광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때 의도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끝까지 갖고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중요한 건 자기가 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 바뀌는 환경에 따라 적절한 기회를 찾고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순현 : 허진호 대표가 아이월드닷넷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야후닷컴같은 성공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기 세 분은 한국 인터넷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재웅 님의 다음도 처음 출발했을 땐 지금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한메일을 본격 시작했을 때가 1996년인데, 초기 자금난에 시달린 걸로 기억한다. 그 땐 돈 없는 청년기업가였다. 한 언론사가 주최한 시상식에서 다음 한메일이 대상을 받고 상금도 약간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적은 돈인데, 그걸 받고 한두 달 더 버틸 수 있다며 어린아이처럼 웃던 게 기억난다.

이재웅 : 과거는 늘 그렇듯 좀 과장된 면이 있다. 그렇게 배고프게 살진 않았다.(웃음) 다음이 1995년 2월 만들어졌는데 첫 신문 인터뷰를 황순현 기자와 했다.

저는 광고시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다음을 시작한 것도 컨텐트를 프로페셔널하게 제공하면 돈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저도 몰랐다. 조금씩 컨텐트에 대한 투자를 해놓자고 출발한 게 다음이었다. 인터넷 엑스포라고 해서 컨텐트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했고, 공공 DB 개발 프로젝트도 했다. 그렇게 연명하다가 1997년도에 한메일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포털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다른 비즈니스를 줄여나갔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고 잘 준비하고 만들어나가는 게 반드시 성공한 기업일까. 대부분 기업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 당시 만들었던 비즈니스 모델은 계속 변한다. 다음과 같은 해 창업한 회사가 넥슨이다. 넥슨도 ‘게임’이란 장기 비전은 있었지만, 초기엔 소프트웨어 개발을 5년 정도 하다가 중간에 게임을 개발해 지금의 게임 회사로 자리잡았다. 이용자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보다는 미래 비전을 갖고 하나씩 적용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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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현 : 다음 소개할 분은 한국 인터넷 서비스 브랜드를 전세계에 알린 분이다. 지금도 외국인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꺼내는 얘기가 싸이월드다. 여기 계신 분은 싸이월드를 만든 이동형 창업자님이다. 싸이월드도 처음 만들었을 땐 지금 모습은 아니었을 게다.

이동형 : 반갑습니다. 저는 인터넷이 20년이 된 줄 몰랐다. 저는 1999년 창업했다. 먼저 한국 인터넷 시장에 감사드려야겠다. 창업 당시인 90년대에 저는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나이였다. 운 좋게도 그 시기에 누군가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빈 공간을 주고 뭔가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그 기회가 없었다면 한국 인터넷 시장에 다음, 네이버, 아이네트같은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저도 빈 공간에 있었던 수혜자다. 실제로 다음의 성공을 보고 창업을 했고, 싸이월드 첫 서버를 아이네트에 설치했다. 두려움이 없었던 이유가, 두렵지 않을 만큼 상황이 좋았다. 피같은 돈을 투자한 분도 많았다. 대기업이나 좋은 학교에 다니는 분들도 같이 하겠다고 적극 참여하는 상황이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고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상황, 그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다.

지금도 새 기업을 창업했는데,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찾아가면 밥이나 먹자고 하고, 투자 얘기를 꺼내면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러니 과거 한국에서 얼마나 좋은 기회를 많이 주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저는 일본에서 3년6개월간 사업하다 지난해에 돌아왔다. 그 전까지는 한국이 세계 표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한국 인터넷은 굉장히 특별한 곳이었다. 국민들에게 인터넷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대출을 해주고, 인터넷을 더 빨리 이용하도록 아파트 동 전체에 브로드밴드를 깔고, 사람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피시방 사업을 장려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 있었기에 한국이 인터넷 사업을 이끌 기회가 있었다. 싸이월드는 그런 기반 위에서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사업이다. 그게 한국의 지난 20년이었던 것 같다.

황순현 : 이동형 대표는 다음 성공을 보고 창업을 하셨다고 하면서 이재웅님께 밥 한번 안 사셨다. (웃음) 여기 세 분은 한 기업을 만들어 키워 내보내고, 성공했든 실패했든 다음 단계로 가서 새로운 창업을 한 분들이다. 오는 기회는 적극 끌어안고, 없는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모범 기업가다. 지금 한국 인터넷 산업에 대해 굉장히 많은 얘기가 나온다. 갈라파고스화부터 얘기해서 액티브X로 도배된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을 얘기한다. 이 상황에서 인터넷 사업을 막 시작하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주실 지 듣고 싶다. 이후엔 트위터를 통해 들어오는 질문도 두어 개 받겠다.

허진호 : 제가 두 분 경우를 예로 들어 말한 게, 창업 초기에 고생해도 비전을 갖고 끈기 있게 나가면 성공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굳이 창업 뿐 아니라 어느 경우에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환경이 어렵다지만 제가 창업했던 1994년보다는 환경이 좋다. 저는 처음 창업하고 이듬해 들어 도저히 이 상황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펀딩을 받으려 했다. 당시엔 벤처캐피털 개념이 없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투자를 부탁해, 당시로선 큰 돈인 40억을 투자받았다. 빌린 돈까지 합해 모두 80억원을 끌어모았다. 저만 해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다. 이재웅님 사례만 해도, 초기 3년동안은 외부 투자가 거의 없었다.

지금 환경은 그 때보다 분명히 좋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벤처투자 환경은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광풍의 시기였다. 그게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여러분의 환경이 기준이 돼야 한다. 3~5년 정도는 벤처캐피털이 투자도 많이 안 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투자 규모도 적지만, 다음이나 싸이월드 창업같은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성공에 이를 수 있을 거다.

이재웅 : 제가 창업 초기 창투사 가서 거절당한 적이 무지하게 많다. 당시 한 벤처캐피털 대표를 만나 우리 회사 가치의 4배 정도인 10억원 정도 투자해주십시오 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답이 없어 갔더니, 그 벤처캐피털 대표가 그 사이에 신문에 기고를 했더라. 요즘 부도덕한 벤처창업자가 문제다, 기업 가치의 4배수나 투자해달라고 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라고 썼더라. (일동 웃음)

사실 1995~1997년도를 생각하면 그 땐 인터넷 생태계가 지금처럼 건강하지 않았다. LG 채널아이, 데이콤 천리안, 삼성 유니텔, 현대 아이넷 등 많은 대기업이 인터넷 사업을 하고 있었고, 야후라는 강한 외국 기업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역시 벤처의 장점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이용자와 인터랙션이 빠른 데 있다. 지금도 네이버나 다음이 과점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다음과 네이버가 가장 기민하게 이용자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부분이 새롭게 창업하거나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동형 : 4배 갖고 모럴해저드라고 하면, 저는 30배 받았다. (일동 웃음) 저는 창업하자마자 투자를 받았다. 그것도 기업가치의 30배인 40억원을 받았다. 저는 100년만에 오는 광풍을 맞은 사람 중 하나다.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제게 e메일도 보내고 대화도 많이 한다. 그분들 만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저는 좋은 기회를 누군가에게 받아서 작은 성공을 만들어냈다. 과연 내가 만든 성공이 후배에게도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차지할까봐 다른 생태계를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 서비스 테두리 안으로 이용자를 가둬놓고 더 많은 매출 일으키기 위해 파트너를 죄는 구조에 익숙해져 사업을 해왔다. 제 판단으론 2000년 초까지 한국의 인터넷 비즈니스가 세계의 테스트베드로 주목받았음에도 현재는 리더십을 많이 잃어버렸다. 저도 거기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같아 굉장히 미안하다.

다행히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는 않고, 시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1999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시장이었다면 지금 2009년도 또 한 번 광풍이 불어닥치는 전야제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엔 훨씬 효과적으로 인터넷을 키워 지속가능한 플랫폼이 되도록 저도 참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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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현 : 90년대 후반은 투자에 관한 한 복불복의 시대였던 것 같다. 자, 트위터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세 분이 좋아하는 웹서비스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는 질문이다. 단 조건이 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 서비스는 빼고 말씀해달라.

이동형 : 최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서비스는 매셔블 같은 블로그 기반 미디어 웹사이트다. 재미있고 새로운 얘기가 많다. 테드도 좋아한다. 저도 한국인이라 네이버, 다음도 많이 이용한다.

이재웅 : 전 다음밖에 안 써서 사실 잘 모른다. (웃음) 저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MLB를 좋아한다. 그래서 MLB.com을 많이 이용한다. 매경기 실시간 중계도 해주고, 다양한 기록도 올라와 있고, HD 화질도 제공한다. 그걸 보며 이게 삶을 변화시키는 인터넷의 장점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인터넷을 썩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평소엔 책을 많이 본다.

허진호 : 저는 요즘 트위터를 열심히 쓴다. 블로그는 테크크런치리드라이트웹을 즐겨 본다. 비슷한 10여개 외국 사이트를 구글 리더를 이용해 RSS로 구독한다. 구글 독스도 많이 이용한다. 지난해 초 PC를 맥북으로 바꿨는데 오피스SW가 호환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구글 독스를 더 자주 쓰게 됐다.

황순현 :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이 또 있다.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서비스가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

이동형 : 저는 2004년 싸이월드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당시엔 네이버가 1등이었는데, 싸이월드는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될까. 둘째, 싸이’코리아’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에 나가서 싸이’월드’를 어떻게 만들까. 물론 타이밍이 늦어 쉽지 않은 게임을 4년동안 했고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를 안고 돌아왔다.

제 생각은 이렇다. 해외든 국내든, 서비스는 공동체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특히 온라인 서비스는 이용자 참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제가 일본에 가서 3년동안 일본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달라고 일본 커뮤니티에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기본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 비즈니스는 컨텐트형 비즈니스가 있고 플랫폼 비즈니스가 있다. 인터넷은 국가 장벽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국가적, 문화적, 민족적 장벽이 있다. 게임같은 컨텐트는 글로벌화하기 쉽다. 플랫폼이 아니니까. 하지만 포털이나 싸이월드같은 SNS는 공동체의 플랫폼이다. 쉽게 그 공동체의 메이저가 되지는 않는다. 글로벌 사업을 하려면 내가 가진 상품이 적합한지 판단하고 내 태도가 글로벌한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이재웅 :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인터넷 비즈니스 자체가 우리가 기술적으로 부족하거나 영 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저는 글로벌하게 경영하는 경험이 너무 적었던 것 같다. 다음이 빠르게 성장하는 서비스이다보니 해외에서 조직을 만들어놓고도 마케팅하는 노하우나 경험이 부족해 많은 시행착로를 겪었다. 이제 우리 경험이 큰 장점이 돼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걸로 믿는다.

허진호 : 저도 두분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순현 : 제가 어제 자료를 찾아봤다. 1989년 12월에 미국 하와이와 한국이 전용선을 연결하고 e메일 텍스트 데이터를 처음 주고받았다. 회선 속도가 56Kbps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때 가격이 월 1천만원 수준이었다. 지금 가정에서 쓰는 네트워크보다 훨씬 느린 네트워크가 월 1천만원이었다. 그 때 이후 우리나라 인터넷이 발전해 세계적 모델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시에 많은 기회를 놓쳤던 것 같다. 한국 인터넷산업을 재조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가 ‘갈라파고스’다. 한국만의 생태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갇혀 글로벌 리더십을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지 세 분 의견을 듣는 걸로 세션을 마무리하겠다.

허진호 :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일본은 갈라파고스화를 얘기하는 게 일본 휴대폰 제품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무선인터넷도 고립된 상태에 이미 돌입했다. 일본보다 5~10배 강하다. 국내 유선인터넷 환경도 그와 비슷하게 고립돼 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깨야 할 지 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우리나라 제도나 규제를 보면 징벌적 규제 성향이 강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앞으론 그런 행동을 못하게 질식할 정도로 굉장히 강한 규제와 법률을 만들면서 실제 규제 적용은 유연하다. 우리나라 경제사범 치고 실형을 산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얘기는 바꿔 말하면, 질식할 듯한 규제와 법률의 룰을 꼬박꼬박 지키면서 경제활동을 하긴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다.

우선 규제부터 과감히 없애야 한다. 일하다보면 구석구석 아픈 규제가 수백개씩 박혀 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솔직히 다 므로겠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 통째로 잡기 위해 모든 걸 금지하는 규제는 안 만들었으면 한다. 시장과 사회의 자정 능력을 믿고 최소한의 룰 메이킹, 공정한 심판자 역할만 하는 게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재웅 : 창의력의 원천은 다양성이다. 혁신도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인터넷도 그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실제 우리 사회는 수십년 동안 다양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다가, 최근 10년 동안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획일성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두 가치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원하는 대로 국민을 끌어가려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당분간은 계속될 거라 생각한다.

문화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가 많이 필요하고 정치권이나 정책담당자, 업계 종사자와 이용자가 좀 더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생각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싸움으로 해결할 것도 아니고, 이를 인정하고 갈라파고스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많은 대화와 소통의 도구로 인터넷이 이용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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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형 : 저도 기본적으로 맥락은 같다. 많은 사람들이 두 분 말씀에 공감할 것 같다. 내가 앞이 안 보일 때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 제도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될 지 반대 방향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거품이 있든 악플같은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기회가 막혀선 정당하지도 않고 옳은 정책도 아니다.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을 대부분 모를 때는 기회가 많았는데, 인터넷 파워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저는 중용을 믿는데 지금은 자유에서 반대방향으로 가 있는 상태인데,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올 걸로 분명히 믿는다.

황순현 :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겠다. 정부의 인터넷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미디어 섹터에서의 과도한 규제를 얘기하지만, 시계를 몇 년 앞으로만 돌려도 한국 정부는 인터넷 산업 부흥을 위해 무모하리만치 투자를 집중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 주는 이익보다는 그것들에서 나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지만, 이것 역시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거창하게 한국 인터넷 20주년을 얘기했는데, 2002년 월드컵 개최 당시 전세계 닷컴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 말이 있다. 시사점이 될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 겨울은 있는 법이고 봄은 반드시 온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 계절 변화를 겪으면서도 총체적 성장으로 간다면, 단기적 변곡은 문제가 안 된다.” 감사합니다.

(사진=@phploveme. CC BY-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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