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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소리와 떨어져 지낸 2주일

2013.11.27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 살고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스스로가 깨닫지 못할 만큼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꼭 층간소음이나 귓가에 울리는 시끄러운 수다가 아니라, 자동차 소리같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소음에 아무렇지 않게 노출돼 있다. 조용한 공간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 게 바로 소음이다.

얼마 전 2주간의 출장을 앞두고 취재에 도움이 될 만한 제품들을 찾아봤다. 하나는 작고 화질 좋은 카메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보이스 레코더였다. 다행히 소니코리아에서 ‘RX1R’ 디지털 카메라와 ‘SX1000’ 보이스 리코더를 함께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아이가 함께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냥 MDR-1R 헤드폰인줄 알았는데, NC가 붙어있다. 노이즈 캔슬링(소음제거) 기능이 들어 있는 ‘MDR-1RNC’ 헤드폰이었다. 그러고 보니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나 버스 안에서 한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잘못 보낸 건지 알 수 없지만 며칠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모른척 하고 헤드폰도 출장 짐에 함께 쌌다.

sony1rnr

결과적으로 출장 기간 내내 이 헤드폰은 카메라만큼이나 아주 잘 써먹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어제 오늘의 기술도 아니고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니지만, 비행기에서 써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륙하자마자 헤드폰을 쓰고 전원을 넣었다. ‘띠링~’하는 신호음과 함께 노이즈 캔슬링이 작동한다. 아, 그런데 엔진 소음이 ‘싹’ 사라지진 않았다. 대신 ‘쿠~’하는 묵직한 소음이 ‘스~’하는 작고 낮은 소음으로 바뀌었다. 제 아무리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해도 항공기의 큰 엔진 소리를 모두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인가보다. 순진하게도 물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은 조용함을 기대했던 터라 약간 실망스럽다는 생각은 했지만, 거슬리는 큰 소음은 줄었다.

비행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헤드폰을 꽂고 한창 영화를 봤다.(비행기에서는 두 개짜리 헤드폰 핀을 쓰지만 그냥 이어폰을 꽂아도 소리는 들린다.) 시간이 좀 지나자 기내식을 나눠준다. 승무원과 이야기하고 기내식을 골라야 하니 헤드폰을 벗었는데 “앗!”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잊고 있었는데 헤드폰 바깥은 엄청난 소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인데 승무원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이 헤드폰을 끼우고 듣는 게 훨씬 잘 들렸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는 주변 소음을 녹음해 패턴을 분석하고 그 반대 음파를 쏴서 상쇄하는 것인데, 주로 엔진 소음이나 일상 소음 등 낮은 소리를 잘 걸러내고 목소리처럼 예측할 수 없는 소리는 잘 걸러지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는데 어쨌든 듣기 싫은 소리만 걸러주는 건 사실이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 헤드폰이 내는 가장 끝내주는 소리는 스마트폰 등 외부 소스 기기를 완전히 분리했을 때 느껴지는 약간 멍~한 조용함이다.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호텔방에서도 이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과 안 쓴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오히려 조용하다고 생각하던 곳이 정작 조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과 완전히 차단되다보니 집중도 잘 됐다. 피곤한 출장 일정 속에서도 그나마 집중해서 기사를 쓸 수 있었던 데에는 MDR-1RNR 헤드폰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워서 목을 돌릴 수 없다는 것만 아니면 잘 때도 헤드폰을 쓰고 자고 싶을 정도였다. 이 헤드폰은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란히 앉은 일행들에게 화젯거리가 됐다.

MDR-1RNC

제품을 빌려준 소니에서는 아마 내가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카메라나 보이스 리코더 체험기라도 소개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12시간을 넘나드는 3차례의 비행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늦은 밤마다 집중해서 빠른 시간 내에 기사를 쓸 수 있게 도와준 이 헤드폰은 뜻하지 않은 큰 발견이었다.

물론 노이즈 캔슬링은 소니 헤드폰만의 특징은 아니다. 소음을 줄여주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은 젠하이저나 보스 같은 오디오 브랜드들이 많이 내놓고 있다. 다만 그 관심과 효용성이 처음같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조용함’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여전히 흥미로운 일이다. 한 가지, 노이즈 캔슬링 제품들의 고질적인 음색 변화가 최근 제품까지도 시원스럽게 해결되지는 않고 있는 건 아쉽다.

아, 다른 얘기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두 기기도 출장에 큰 도움이 됐다. 본체 크기는 작지만, 큼직한 풀프레임 센서와 F2.0의 조리개가 만들어내는 RX1R의 사진은 모든 이벤트의 사진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똑똑한 보이스 리코더는 아무데나 던져두어도 주변 소음은 덜어내고 목소리만 잘 골라 녹음해주었다. 또한 10초 단위로 끊어서 재생해주는 받아쓰기 모드는 정확한 코멘트를 받아적어야 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스마트폰 녹음기와 육중한 풀프레임 DSLR 카메라를 선택했더라면 아무래도 사진도 덜 찍게 되고 녹음 파일도 쌓아놓기만 했을 게 뻔하다. 스마트폰이 많은 것들을 대체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문 기기만의 영역은 있고, 또 계속 발전하면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집 떠난지 오래되니 별 감상이 다 떠올랐던 것도 같다.

RX1R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