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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을 만든 건 ‘놀이터’와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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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월요일. 한 좌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취재하려고 간 건 아닙니다. 이날은 제가 좌담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이 좌담회는 한국의 인터넷 역사 30년을 기록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열렸습니다. 강경란 아주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과 교수, 박현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CP, 윤석찬 모질라재단 커뮤니티 리드, 최우형 구글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개발 담당자, 허진호 크레이지피시 대표, 정다예 CC코리아 상근활동가, 안정배 편집간사, 그리고 제가 참석했습니다.

좌담회는 20세기의 청년과 21세기 청년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기획에서 시작했습니다. 21세기 청년이 20세기 청년에게 그때 당신들은 인터넷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라고 묻는 식으로요. 좌담회 내용은 30년 인터넷 역사를 쓴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20세기 청년과 21세기 청년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20세기 청년은 강경란 교수, 박현제 CP, 윤석찬 리드, 최우형 박사, 허진호 대표이지요. 정다예 상근활동가와 안정배 편집간사, 저는 21세기 청년입니다.

‘한국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는 규모가 제법 큽니다. 인터넷 산업과 문화를 이끈 주역을 1년여 넘게 인터뷰했지요. 이 프로젝트가 인터뷰한 인물은 쟁쟁합니다.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깐 박현제 전 두루넷 이사,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김정주 넥슨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와 첫눈 창업자 등이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웹에 공개돼 있습니다. ☞인터넷역사.한국)

인터넷 역사 한국 로고

제가 일원으로 있던 행사를 얘기하려니, 부연 설명이 길어지는군요. 그렇지만 더 해보겠습니다.

1982년 구미에 있던 전자기술연구소(KIET)와 서울대학교가 TCP/IP로 통신하는 데 성공하고 나서 인터넷이 지금처럼 널리 쓰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한동안은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 학생들이 운영을 맡았습니다. 전길남 교수는 1982년 인터넷 통신을 세계에서 2번째로 한국에서 성공한 인물입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었습니다.

그 연구실에 있던 학생들이 허진호 대표, 박현제 CP 등입니다. 그때는 인터넷 망을 깔고 운영하는 게 큰 문제였답니다. e메일로 학술 자료를 주고받는 사람들끼리만 쓰는 통신 수단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전화 교환수처럼 e메일을 A란 곳에서 B로 무사히 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서버 관리, 네트워크 관리도 연구실 학생들 몫이었고요.

그런데 이 활동이 학위 논문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늘같은 교수님 말씀이니 다들 따랐지만, 논문은 논문이었죠. 그래서 남들보다 학위를 받는 데 2~3년씩 뒤처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터넷 관리하는 것 때문에 바빴단 얘기지요. 카이스트에는 1년에 한 번 큰 체육대회가 열리는데요. 허진호 대표는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에 7년 있으면서 이 체육대회에 참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였답니다.

인터넷으로 통신하는 데 성공한 게 1982년, 상용화 된 게 1994년. 12년 동안 인터넷은 일반에 퍼지지 못했습니다. 1995년 무료 e메일 서비스 ‘한메일’이 나오고 1998년 두루넷이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깔면서 퍼졌지요. 네, 그땐 그랬습니다.

저는 좌담회에 가면서 그때 얘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었습니다. 제가 인터넷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갖춰져 있었거든요. e메일은 쓰면 되는 것이고, 기사는 보면 되는 것이었으며, 검색은 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좌담회에 온 20세기 청년들은 ‘우리가 하는 얘기는 옛 이야기일 뿐,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실은, 이 좌담회를 마련한 데는 허진호 대표와 박현제 CP, 최우형 박사, 윤석찬 리드 등에게 지금 인터넷을 둘러싼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힌트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옛 이야기는 이미 1년여 인터뷰하면서 다 기록했으니까요. 좌담회 참석자는 초기 인터넷 사업가입니다. 이해진・김정주・송재경 창업자보다 앞선 세대지요.

지금은 인터넷 산업을 규제하는 정책을 정부가 정하면 업계는 따라가지만, 이분들이 청년이었을 땐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인터넷을 규제하기는 커녕 뭔지 잘 몰랐죠. 그래서 PC통신 사용자가 인터넷에 쉽게 접속하게 하는 방법,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깔기 등은 초기 인터넷 사용자의 몫이었습니다. bloter.net과 같은 도메인 등록도 정부가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생생한 얘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이분들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하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얘기를 재미있게 듣는 데서 그쳐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진호 대표는 “우리가 토대를 만들었지만, 우리에게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꽤 높은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려는데 ‘내 얘기는 너에게 도움이 안 돼. 너는 너일 뿐’ 이란 말을 들은 겁니다.

허진호 대표는 이런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SA연구실에는 전길남 교수님을 보고 들어간 것이고, 들어가 보니까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하고 있던 거지, 우리가 하는 네트워크(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 그런 생각 없었죠.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충 역할을 분담해서 한 건데 뒤돌아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전길남 교수님이 책임의식, 전문성, 주인의식을 강조해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따랐어요. 1980년대까지는 전길남 교수님의 머릿속에 있는 전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 말에 20세기 청년들은 동의했습니다. 저는 ‘그럼 이 좌담회는 어떻게 진행되지?’란 생각 뿐이었죠. 허진호 대표는 이어서 “20대에게 임무와 비전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20대에겐 그 세대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자유롭게 하다보면, 카오스처럼 튀어나오는 알맹이가 있고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놀이터’얘기가 나왔습니다. 요새 자주 쓰는 단어로 ‘잉여 문화’라고나 할까요. 이번 좌담회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단어였습니다. ‘놀이터’와 ‘잉여’란 단어는 연거푸 나왔습니다. 지금 세대에는 없고, 그때 그 세대에는 있는 것이서일까요.

30년 전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은 놀이터였습니다. 허진호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로 유닉스를 깔아 쓸 수 있는 연구실이라서 좋았고, 박현제 박사는 아무때나 프로그래밍하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게 좋았다고 했습니다.

윤석찬 리드에겐 학교 전산실이 그랬지요. 윤석찬 리드는 전공인 지질학보다 컴퓨터를 하는 게 더 즐거웠다고 합니다. 재미있었고요. KIDS라는 국내 최초의 인터넷 게시판(BBS)도 20세기 청년들에게 놀이터였습니다. 재미있어서 하다보니 인터넷의 토대를 닦았고,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었단 겁니다.

최우형 박사와 박현제 CP는 그때는 ‘사용자와 운영자를 구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네이버나 다음이 정책을 바꾸면 사용자는 따라야 하지요. 구글이 성인인증을 한다고 앱을 내리면 받아들여야 하고요. 이 모습은 인터넷 산업이 커지며 나타난 걸 수 있지만, 20세기 청년들은 인터넷을 자기 놀이터라고 여겼던 것 아닐까요. ‘잉여로움’이 흐르는 상태 말입니다.

▲개발자 행사를 가면 종종 보는 ‘빈백’입니다. 윤석찬 리드는 제록스가 발명한 것 중 가장 대단한 건 ‘빈백’이 아닐까라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참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 말입니다. 전 ‘한눈 팔지 마’란 얘기를 더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말이죠. 21세기 청년들의 얼굴에 이 생각이 스쳤을까요. 20세기 청년들은 물론, 당신들이 청년일 때와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다른 걸 안다고 말했습니다.

최우형 박사는 자기 세대를 “특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행복한 세대”라고 말했습니다.(최 박사는 온라인으로 참여해, 사실은 ‘썼’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실업자가 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세대이고요.

IMF 터지기 전까지 카이스트 학생들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까요. 중소기업에 가거나 창업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 진학률 30% 일 때라, 취업 못 할 걱정도 없었고요. 지금처럼 공무원, 교사와 같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라는 부담도 덜했답니다. 지금과 많이 다르네요.

인터넷역사.한국의 20세기 청년과 21세기 청년의 대담

윤석찬 리드는 좌담회가 끝날 무렵 ‘놀이터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란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진 ‘우리에겐 정말 잉여문화를 발산할 놀이터가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윗세대가 놀이터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20세기 청년은 그때 연구실이, 전산실이 놀이터란 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다들 좌담회에서 ‘돌아보니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거든요. 그러고 나선 마음이 가는 일을 했습니다. 하다 보니 창업하고,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인터넷 통신망을 까는 데에 합류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청년과 헤어지고 나니 길은 어느 새 어둑했습니다. 도곡동 카이스트에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지금 저를 둘러싼 환경을 30년 뒤 제가 ‘놀이터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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