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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사회를 위한 자양강장제, ‘게임화’

2013.12.12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설렘과 낭만이 아니라 그저 작고 하얀 ‘똥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낡아빠진 군 생활 추억담을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이른바 ‘게임화’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군대 있을 때 무서운 고참과 한 내무반을 썼다.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특유의 까불까불한 성격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과 같은 겨울이었고, 부대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눈이 내렸다. 북한과 가까운 부대는 아니었지만, 연병장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십수 센티미터씩 눈이 쌓이곤 했다.

하루는 눈을 치우는데, 그 고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5시가 넘어 일과도 끝난 시간에 눈을 치우느라 고참, 후임병 할 것 없이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을 무렵이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 두 명이 한 번 밀고 오는 걸로 하자.”

연병장의 눈은 넉가래로 밀어 연병장 끝으로 내버려야 한다. 십수명이 한 줄로 늘어서 연병장 가운데서 끝까지 마치 대걸레 밀듯 눈을 치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고참은 여럿이 하지 말고, 가위바위보로 몇 사람을 뽑아 한 번 밀고 오는 것을 반복해 눈을 치우자고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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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연병장 제설작업은 넉가래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공군 레미제라블 ‘레밀리터리블‘ 동영상에서 발췌)

별다른 대화도 없고, 굳은 표정으로 ‘업무 외 일’을 하던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가위바위보에 이기려 한순간에 축제판이 됐다. 최고참, 중고참, 졸병 할 것 없이 가위바위보에 목숨을 걸었다. 당연히 ‘작업장’ 분위기도 한결 밝아졌다. 가위바위보 하느라 더 느릿느릿 일이 진행했지만, 짜증과 피로는 한결 줄어들었다.

그 고참은 종종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때 어떻게든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 때는 몰랐다. 그저 성격 이상한 고참의 고약한 취미생활인 줄만 알았다. 그게 일종의 ‘게임화’였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게임화란 게임이 아닌 서비스나 콘텐츠에 게임을 즐기는 것과 비슷한 기법을 넣는 것을 뜻한다. 지루한 웹사이트를 게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설계하는 것, 모바일 서비스 안에 마치 게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아이템을 입히는 것 등이다. 재미없는 눈 치우기 작업을 순식간에 놀이판으로 바꿔버린 고참의 악취미는 훌륭한 게임화인 셈이다.

“제가 촛불집회 때 칼라TV 방송을 하면서 몸으로 느꼈어요. 사람들이 제가 하는 칼라TV를 보며, 막 요구를 하는 거죠. ‘어! 방금 카메라 앞에 지나간 사람 인터뷰해주세요’라든지 ‘저 사람 확성기 소리 시끄럽다고 얘기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요. 현장에서 방송하는 저는 게임 캐릭터고, 방송을 보며 저에게 ‘퀘스트(임무)’를 주는 이들은 게이머죠.”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12월11일 저녁 열린 ‘게임 마약법 반대 토론회’에 참석해 “게임화는 거부할 수 없는 21세기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게임화는 온라인 세상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말은 생소하지만, 현실에서도 게임화는 중요한 화두다. 진중권 교수의 촛불시위 현장이 그랬고, 군대 고참의 가위바위보 눈 치우기 게임이 그렇다. 근력 재활 치료에 키넥트 게임 기술이 쓰인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고, 인디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실제 교육용 도구로 활용하는 학교는 국내에도 많다.

계단을 소리가 나는 피아노로 만든 스웨덴의 지하철역은 시민의 공중보건에 기여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재미있는 계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란다. 투입구에 불이 켜질 때를 맞춰 빈 병을 넣으면 점수를 따는 ‘보틀 뱅크 아케이드’는 다른 지역에 버려진 빈 병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피아노 계단도, 빈 병 게임도, 사실은 모두 매우 단순한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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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계단을 활용한 지하철역의 게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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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처럼 만든 빈 병 수집장치

현재 국회에는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하 게임 중독법)’이 올라가 있다. 지난 4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지난 2011년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게임 ‘셧다운제’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강박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게임 공포증 환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게임을 규제하려는 비슷한 법안은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 분명하다.

진중권 교수는 토론회에서 “20세기 패러다임이 사진과 영화였다면, 21세기는 게임”이라며 “아이들은 21세기에 적합한 문화적 행동을 게임으로 놀이처럼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국회의원 본인들도 게임화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근엄한 국회 본회의장은 시도때도없이 온라인 MMORPG 세상으로 변한다. 나무망치를 지키려는 이들과 망치를 빼앗아 세 번 두들기고야 말겠다는 의자를 불태우는 자들 사이의 막고 뚫기 위한 몸싸움, MMORPG 속 ‘공성전’과 다를 바 무엇인가. 아, 이렇게 보니 게임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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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본회의장(사진: 대한민국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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