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식 나눔, 쉽고 재미있게”…‘언컨퍼런스@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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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도 약에 쓴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하찮은 지식이나 물건은 없으며,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는 귀중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던 12월19일 아침, 40여명의 사람들이 약에 쓸 ‘개똥’을 찾기 위해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 다목적홀 ‘활력’에 모였다. 자신의 지식을 다른 이와 나누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언컨퍼런스@대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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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식 없이 참여하는 지식 나눔 장터

‘언컨퍼런스@대화’는 참여와 대화를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전파하는 비영리단체 더체인지가 준비한 행사다. 언컨퍼런스는 미리 발표자를 정하지 않는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 관심을 발표하거나 토론한다. ‘컨퍼런스’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방식의 컨퍼런스를 말한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침에 늦잠 자는 아들을 깨울 수 있는 비법’, ‘낯선 사람과 쉽게 말문을 틀 수 있는 비법’처럼 실생활에 요긴하지만 딱히 배울 곳은 마땅찮은 지식부터 ‘제주도를 혼자서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 ‘아프리키 타악기 젬베 연주법’ 같은 노하우나 재능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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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컨퍼런스@대화 

너무 사소한 지식 아니냐고 무시하지 마시라. 지식에는 무게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컨퍼런스가 ‘발표’를 통해 ‘전달’하는 데서 그칩니다. 발표를 통해서 무얼 떠올렸는지, 어떤 걸 생각하고 있는지 공유하기가 쉽지 않지요. 적어도 저희가 만든 행사에서는 사람들이 듣고 가기보다는 말하고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언컨퍼런스를 준비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기획한 조아신 시민단체 활동가는 대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모든 컨퍼런스에서 당연시하게 여기는 ‘발표’를 없앴다고 말했다. 행사 이름이 ‘언'(Un)컨퍼런스인 이유다.

더체인지는 2011년부터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를 통해 참석자끼리 지식 공유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번에 열린 ‘언컨퍼런스@대화’는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의 연장선에 놓인 행사다. 강연자와 참석자를 미리 정해두고 한 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방식의 자리를 만들어보고자 올해부터는 행사 이름을 변경했다.

“첫 회엔 500명이 유명 강사 강연을 듣고 집단 대화를 나눴고, 두 번째 행사에선 4명의 전문가를 섭외해 200명이 강연을 듣고 집단 대화를 나눴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얘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의견을 주시더군요.”

언컨퍼런스@대화는 올핸 서울에서 열렸지만, 내년에 다른 곳에서도 열릴 수 있다. 올해는 주로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였지만, 다음엔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

“한 번 하고 그치는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 행사를 찾은 사람들이 이번 행사에서 느끼고 배운 걸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더 발전시켰으면 합니다. 다음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언컨퍼런스가 열릴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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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아침에 깨우는 법 알려주실 분~?”

언컨퍼런스@대화, 이렇게 즐겨보자

언컨퍼런스@대화에서 지식을 공유하는 법은 참 쉽다. 배움거래 장터에 자신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지식과 배울 수 있는 지식을 올리면 된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형성되듯 배움거래 장터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줄 수 있는 지식과 배울 수 있는 지식이 거래된다고 할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이거 알려주세요’라고 달려들긴 멋쩍다. 적어도 상대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본격적으로 지식 공유 장터에 뛰어들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1. 자기소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행사에 참석했다고 하지만, 처음 본 사람은 어색하기 마련 아닌가. 언컨퍼런스@대화 행사장을 쭈뼛쭈뼛 서성거리고 있는 참가자들을 위해 더체인지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그냥 느낌 있게 앞에 놓인 이름표 찾아가세요. 자기거 찾아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뒤집어진 이름표를 그냥 골라서, 그 이름표 주인을 찾아주세요. 찾아주는 방법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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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한 이름표 찾기 현장

행사 사회를 맡은 최위환 활동가는 평범하게 이름표를 나눠주지 않았다. 단상 앞에 이름표를 나열하고 사람들이 무작위로 가져가게 만들었다. 이름표를 가져간 사람들 사이에서 ‘○○○씨 어디계세요’ 같은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작은 사람은 사회자 마이크를 빌려 이름표 주인을 공개 수배하기도 했다. 행사장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이날 행사 오전 내내 최위환 활동가는 사람들을 같은 성씨, 혈액형, 고향으로 묶었다. 심지어 참가자들 간 꼬리잡기 행사까지 열렸다.

2. 배움거래 장터 등록하기

자기소개 이후 참가자들 간 분위기가 급속도로 달아 올랐다. 같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참가자부터,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 참가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판단한 것일까. 사회자가 또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서로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지식공유는 배움거래 장터를 통해 이뤄진다. 배움거래 장터는 ‘알려줄 수 있는 것’과 ‘배우고 싶은 것’으로 나뉜다.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30분간 알려줄 수 있다’와 ‘1시간 동안 알려줄 수 있다’로 나뉜다.

참가자는 배움거래 장터 참여에 앞서 포스트잇과 펜을 나눠받는다. 연두색 포스트잇에는 30분 안에 알려줄 수 있는 것을 적고, 주황색 포스트잇에는 1시간 안에 알려줄 수 있는 것을, 노란색 포스트잇에는 배우고 싶은 것을 적는다. 포스트잇엔 하나의 지식만 적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쿨렐레도 가르쳐 줄 수 있고 스윙댄스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참가자는 포스트잇을 각각 작성해 배움거래 장터에 등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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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비어 있는 배움거래 장터

포스트잇 작성을 마쳤으면 배움거래 장터에 포스트잇을 붙이면 된다. 참가자는 자신의 맘에 드는 ‘알려줄 수 있는 것’을 골라 언제 배울 것인지 가르쳐 줄 사람과 협력해 시간을 정하면 된다. 배움거래 장터 오른쪽엔 배움 장소와 시간이 표시돼 있다. ‘알려줄 수 있는 것’ 포스트잇을 골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붙이고 파란색 포스트잇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함께 붙이면 된다. 일종의 수강신청 절차다.

수강신청 과정은 녹록지 않다. 수강신청을 하려면 참가자는 ‘알려줄 수 있는 것’ 포스트잇을 뽑아 사회자가 갖고 있는 마이크에 대고 ‘등록’을 외쳐야 한다. 인기가 많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먼저 떼어갈 수 있다. 눈치와 순발력이 중요하다. 이날 행사에서는 ‘우쿨렐레 연주법’과 ‘그림 그리기’가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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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줄 수 있는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서

물론 알려줄 수 있는 것과 배우고 싶은 것 시간이 겹칠 수도 있다. 이 땐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먼저다. 어떤 사람은 알려주고만 갈 수도 있다. 배우고 싶은 사람과 가르쳐 줄 사람이 시간 조정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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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 투자하면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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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수강신청 후 등록해야만 서로 지식을 나눌 수 있다. 

3. 렛츠! 지식공유 : 야매로 핸드드립 배우기

이번에 열린 ‘언컨퍼런스@대화’ 행사에서도 렛츠 방식으로 지식 공유가 이뤄졌다. 렛츠(LETS : Local Energy Trading System)는 공동체 안에 이미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동시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현장에서 연결하는 배움과 지식의 품앗이 시스템이다.

배움거래 장터에 등록된 수많은 ‘알려줄 수 있는 것’ 중 이창림 님의 ‘야매로 핸드드립하기’를 선택해 배워봤다. 생두를 원두로 만들기 위해 로스팅하는 과정부터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법까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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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림 님과 함께. “원두를 이렇게 샤샤샥~ 볶아야 합니다. 15분 동안요. 손이 아파옵니다.”

생두를 로스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에서 17분 정도며, 생두를 로스팅 하는 과정에서는 팝콘 튀기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는 걸 배웠다. 로스팅한 생두를 직접 그라인더로 갈고 커피를 내렸다. 다른 곳에서 이같은 과정을 배우려면 돈깨나 들 텐데, 여기선 품앗이로 거저 배웠다.

지식공유는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야매로 핸드드립하기’ 배움에 함께 참가한 홍승희(19) 양은 “고등학교 때 꿈이 바리스터여서 이 배움강좌를 신청하게 됐다”라며 “직접 기구를 만지고, 갈고, 커피를 내리는 게 너무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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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 양. “저 원두 갈아요~!”

행사장 구석구석 커피향과 우쿨레레, 젬베 소리가 배었다. 스윙댄스 기초 스텝을 배우는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이번 행사에서 ‘쇼핑몰 웹사이트 만드는 법’과 ‘교육 워크숍 기획하는 법’을 배우고 ‘간단히 프레지 만드는 법’을 가르친 정슬아 양은 “행사 처음엔 서먹서먹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라며 “재능나눔에 대해 그동안 거창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지식을 나눌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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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렇게 내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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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꽃을 피우는 곳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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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강연 중인 김승수님. 

4. 마무리 : 렛츠파티!

즐겁게 배우고 그대로 헤어지면 얼마나 아쉬울까. 언커펀런스@대화는 이날 배운 지식을 바로 사람들 앞에서 활용하는 ‘렛츠파티’로 마무리 했다. 우쿨렐레를 배운 참가자는 사람들 앞에서 1시간 동안 배운 우쿨렐레 실력을 뽐냈으며, 팝핀을 배운 사람은 팝핀댄스를 췄다. 스윙댄스도 무대 한 꼭지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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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배운 우쿨렐레. 연주곡은 ‘곰 세 마리’.

레크리에이션 기법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참가자는 렛츠파티에서 즉석에서 ‘옆사람과 함께 하는 앞으로~ 앞으로~ 노래하기’를 가르쳐 흥을 돋우었다.

누구도 “어색하다”거나 “그게 배운거냐”라고 퉁박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지식을 나누고 배운 것 자체가 즐겁고 신명나는 일이었으니까. 이날 배운 지식 덕에 ‘우쿨레레에 본격적인 욕심이 생겼다’라고 밝힌 참가자도 있었다.

행사 기획자이자 참가자들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쳤던 김승수 님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참가자 대부분이 ‘놀 준비’를 하고 와서 좋았다”라며 “이 모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흩어져서 소규모 ‘언컨퍼런스’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