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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그 시절 그 ‘12대 IT 기기’

2013.12.24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리뷰 칼럼니스트인 월트 모스버그가 월스트리트저널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22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야말로 이제는 한마디 한마디가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달인’이 됐습니다.

그가 월스트리트저널을 떠나며 22년간 인상 깊었던 12가지 제품을 다시 소개했습니다. 그는 제품 자체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 환경을 얼마나 바꿨는지, 각 제품이 이후에 나올 환경을 어떻게 바꿨느냐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그가 뽑은 것들은 당연히 기술이 아니라 완제품들입니다. 대부분은 한 번씩 만져봤거나 지금 이 글을 그 제품으로 읽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월트모스버그가 꼽은 기기들과 그 이야기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주루룩 훑어보니 근 20년간의 IT 환경 변화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팜파일럿, 뉴튼 메시지패드, 아이패드

제일 처음 만져봤던, 그리고 처음으로 구입했고 가장 많이 샀던 모바일 컴퓨팅 기기는 ‘팜'(Palm)입니다. 그 첫 모델인 팜 파일럿은 1997년 US로보틱스가 만들었는데, UI와 기능을 단순화하고 필기 입력의 정확성을 높여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래서 이런 PDA 기기를 두고 OS나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팜파일럿’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습니다. ‘호치키스’처럼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된 겁니다. 영화 ‘미녀삼총사’에서도 윈도우모바일 PDA를 팜 파일럿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어쨌든 팜은 이후 팜III, V, VII 등으로 세분하기도 했고 컬러 화면, 그리고 수만가지 앱으로 PDA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따져보면 팜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모바일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이렇게 편리한 PDA와 휴대폰을 합쳤으면 좋겠다는 스마트폰에 대한 요구를 이끌어낸 제품이기도 합니다. 저는 iOS의 단순한 바탕 화면 구조도 팜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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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일럿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됐습니다.

소니나 삼성도 팜 기기를 만들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전성기를 누렸지만, 너무 심플한 구조만 고집한 탓에 멀티미디어 기능에 매혹된 신규 이용자들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났지요. 팜은 현재 HP로, 다시 LG로 조각나면서 뼈대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PDA라는 말을 처음 대중에게 알린 건 애플의 ‘뉴튼 메시지패드’입니다. 이건 지금 봐도 참 큼직합니다. 가격도 꽤 비쌌습니다. 당시 애플은 기술력에 비해 욕심이 과했던 듯합니다. 이 기기는 1993년에 처음 나왔는데, 요즘 기기 수준의 애니메이션 효과를 꿈꿨습니다. 펜으로 글자를 받아적는 기술을 시도했는데 그게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월트 모스버그는 문장 형태로 메모를 입력하면 자연어를 읽듯 입력되는 걸 무척 신기해하긴 했는데요. 한글에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이용자들에겐 썩 신통찮은 물건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게 나중에 아이패드와 희미한 고리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들도 나오지요.

2010년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세상은 열광하거나 시큰둥했습니다. 이런 기기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처음 나온 아이패드는 큰 아이팟터치 정도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응용프로그램(앱)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9.7인치 화면을 아이폰과 전혀 다른 용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4년만에 50만여개에 이르는 앱이 쏟아졌습니다. 그 변화는 태블릿에 대해 생각도 않던 안드로이드 진영에 태블릿용 운영체제를 만들도록 자극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엔 터치스크린 기반 ‘윈도우8’을 내놓도록 했습니다. 컴퓨터는 점점 아이패드를 닮아가고 있지요.

윈도우95와 넷스케이프

PC시장은 ‘윈도우95’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그전까지 윈도우가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목을 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곁다리 상품이었다면, 윈도우95는 주력 상품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윈도우3.1’까지는 굳이 윈도우를 안 써도 도스로 응용프로그램들을 쓸 수 있었지만 윈도우95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반강제적으로 윈도우95란 플랫폼으로 이전을 시켰는데, 그럼에도 윈도우95는 그 자체로 꽤 멋있는 운영체제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윈도우95는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운영체제기도 합니다. 기대만큼 제대로 안 돌았으니 그랬겠지요. 초기에는 커널 자체의 안정성도 낮았을 뿐더러, 요구하는 컴퓨터 성능을 맞추기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습니다. 도스와 16비트 기반의 응용프로그램 환경을 32비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윈도우95는 단숨에 고성능 PC를 시장에 깔아버렸고, 응용프로그램들을 32비트로 전환했습니다. PC 보급의 붐이 윈도우95를 성공시켰는지, 윈도우95가 PC 보급 붐을 이끌어낸 것인지는 아직도 판단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에게 키보드보다 마우스를 더 많이 쓰게 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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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95의 종료 화면 (사진 : skyfaller. CC BY.)

이때의 기억이 남아서일까요? 요즘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처럼 ‘윈도우8’을 내놓고 새 운영체제를 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상입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단번에 뒤집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것 같네요.

윈도우95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많은 것들을 바꿨는데 텍스트 기반으로 쓰던 응용프로그램들 그리고 PC통신을 이미지 기반의 아이콘과 인터넷, 특히 월드와이드웹 시대를 앞당겼습니다. 모뎀 전화요금 외에도 분당 접속료를 내면서까지 인터넷에 접속하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넷스케이프’와 ‘야후’였습니다. “인터넷이 뭐냐”고 물었더니 “넷스케이프를 켜고, 야후에 접속해서 알고 싶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된다”고 친구에게 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결국 시장은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를 통합시킨 마이크로소프트가 점령하긴 했지만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꼼짝 못하게 했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그 뿌리가 ‘모질라’로 남아 ‘파이어폭스’로 진화하긴 했지만 회생이 쉽지는 않군요.

구글과 안드로이드

넷스케이프와 함께 서서히 가라앉은 게 바로 야후입니다. 지금은 서서히 회복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 옛날 야후로 통하던 인터넷 세상은 이제 ‘구글’로 통하게 됐습니다. 느린 인터넷 환경에 맞춰 간단한 검색창만 띄웠던 구글은 강력하면서도 단순한 것이 강하다는 결론을 우리에게 안겨줬습니다. 이제 구글은 검색 서비스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터넷 환경이 돼 버렸습니다. 크롬OS를 보면 이제 윈도우와 설치형 응용프로그램 없이도 구글 서비스만으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컴퓨터의 역할을 대부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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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야 뭐 더 이상 말할 게 있을까요? 2008년 나온 이 운영체제는 아이폰과 맞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운영체제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휴대폰을 쓰는 방법, 스마트폰을 쓰는 방법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폰을 통해 큰 수익을 얻었다고 하지만, 진짜 황금알은 그 위에서 검색과 지도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이 거두어들이는 검색광고 수익입니다. 제조사는 흔들릴 수 있어도 안드로이드는, 구글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구글 입장에서는 꼭 안드로이드 뿐 아니라 iOS 기기들 역시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요한 허브이기 때문에 iOS에도 안드로이드 못지 않은 지원을 해주는 것이지요.

아이팟과 아이폰

안드로이드가 잘 될 수 있었던 데는 아이폰의 역할이 컸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앤디 루빈이 구글이라는 좋은 회사를 선택했고, 구글이 이를 잘 키웠고,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애플 사외이사로 아이폰 개발에 참여하면서 두 운영체제는 엇비슷한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어쨌든 그 시작은 아이폰이었습니다. 2007년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사실 별볼일 없던 기기였습니다. 그 전에 모토로라와 아이튠즈폰에서 쓴맛을 맛봤던 애플이 혼자 다시 뭔가 해보려 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듬해에 나온 앱스토어는 스마트폰 세상을 뒤집어놓았습니다. 앱스토어는 앱 공급 수단을 통일한다는 것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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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키노트가 유명세를 탄 것도 아이팟을 발표할 때 보여주었던 퍼포먼스 덕분이었습니다.

아이폰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아이팟이었습니다. 아이튠즈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던 이들이 콘텐츠 때문이라도 아이폰으로 넘어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당시 MP3 플레이어는 주로 64~128MB 정도의 메모리를 갖고 있었는데 아이팟은 플래시 메모리 대신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저장장치로 쓴 덕분에 4~5GB의 엄청난 용량을 가졌지요. 그런데 HDD를 넣은 주크박스 플레이어를 애플이 처음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애플은 이를 알릴 때 용량 대신 ‘주머니 속 1천곡’이라는 말을 더 강조했습니다. 아이튠즈 음악 스토어로 콘텐츠를 팔기 시작하면서 아이팟은 ‘음악 플랫폼’이 됩니다. 아이팟이 예뻐서 산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 소비는 ‘아이튠즈를 쓸 수 있는 음악 재생기’라는 역할에서 나왔지요. 구글도, 삼성도 근래 들어서 음악 서비스를 시작했지요.

스티브 잡스가 동전 주머니에서 꺼내들면서 세상에 공개된 ‘아이팟나노’, iOS를 쓰는 ‘아이팟터치’ 그리고 동그란 터치휠을 돌려서 쓰는 ‘아이팟클래식’ 등이 아직 나오고 있긴 하지만 애플은 올해 처음으로 아이팟 신제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 역할을 아이폰이 대체하기 때문인진 몰라도, 아쉽긴 하네요.

맥북에어

PC 제품으로서는 맥북에어가 유일하게 뽑혔네요. 스티브 잡스가 서류 봉투에서 꺼내든 이 얇은 노트북은 당시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했던 노트북의 두께가 아니라 한쪽 끝은 거의 뾰족할 정도로 얇게 만들었습니다. 하드디스크 대신에 SSD를 쓰고 특수 설계한 프로세서를 넣어 극단적으로 얇게 만든 것이지요.

지금은 이 정도 두께의 노트북을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해도 무게나 두께를 따르지 못하는 회사들이 많았습니다. ‘Thinner than Air’ 같은 홍보 문구를 내세웠던 회사들도 생각이 납니다. 결국 인텔이 앞장서서 ‘울트라씬’이라는 폼팩터를 제안하고 더 얇은 디스플레이와 튼튼한 재질 등을 만들어내는 기술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노트북들이 날씬하게 다이어트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요. 하지만 여전히 얇은 노트북이라고 하면 맥북에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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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울트라북의 개발 목표는 ‘맥북 에어’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 ‘블랙베리’와 ‘갤럭시S’를 더 넣고 싶습니다. 요즘 누구나 당연한듯이 쓰는 인터넷 메시지 서비스의 원조는 블랙베리입니다. 우리가 ‘삐삐’로 부르던 무선호출기를 들고 다니면서 숫자 정보를 수신할 때 블랙베리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삐삐를 내놓았지요. 양방향 통신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블랙베리는 이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으로 진화했고 ‘커뮤니케이션=블랙베리’란 공식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나오면서 ‘블랙베리 메신저처럼 무료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운 ‘왓츠앱’ 같은 응용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블랙베리 메신저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바꿔놓았지만, 정작 그 흐름에 블랙베리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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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S는 사실 논란이 많은 제품이긴 합니다. 단 3개월만에 만들어냈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급조한 제품이긴 하지만, 삼성전자가 무엇을 하고 어떤 강점을 지닌 회사인지 세상에 알리는 역할은 확실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스마트폰은 원래 이 정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을 만큼 빠릿빠릿한 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디스플레이부터, 칩, 메모리, 배터리까지 직접 다 만들 수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개운치 못한 카피캣 시비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안드로이드가 시장에 정착하고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속도 경쟁을 하도록 만든 것 역시 삼성전자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이야기는 왜 안 하냐고요? 이 두 서비스의 영향력과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월트 모스버그는 월스트리트저널을 떠나 새로운 매체에서 리뷰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