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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디스플레이로 보는 휴대폰 변천사

2013.12.26

삼성전자의 기업블로그 삼성투모로우가 삼성 스마트폰의 역사를 다룬 인포그래픽 시리즈를 공개하고 있다. 12월26일까지 3편이 공개됐는데, 1·2편은 자랑에 가깝고 3편인 ‘디스플레이 진화’편이 좀 흥미롭다. 디스플레이 사업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에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곧 휴대폰의 발전과 연결됐기 때문이다.

sec_display큰 화면을 쓰려면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합당한 이유가 나오면 그에 맞는 디스플레이 패널과 프로세서, 콘텐츠가 필요하다. 휴대폰 그리고 스마트폰의 발전에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이를 대변하는 것이 화면 크기이기도 하다. 삼성투모로우의 인포그래픽을 통해 휴대폰 시장의 발전사를 돌아보자. 참고로, 삼성이 예로 든 기기의 모델명은 모두 SK텔레콤용 기기다.

삼성전자가 처음 휴대폰을 만들었던 1988년엔 휴대폰에는 숫자, 그러니까 전화를 걸 때 누르는 전화번호를 보여주는 수준의 액정 디스플레이가 달렸다.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는 일반전화와 달리 미리 전화번호를 누른 뒤 ‘통화’ 버튼을 누르는 휴대폰 특성상 디스플레이는 필수 요소였다.

국내 휴대폰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1990년대 중반에는 그래픽 디스플레이가 채용됐다. 삼성이 1994년 내놓은 ‘SH-770’은 안테나 신호와 시간 정보, 전화번호를 쉽게 볼 수 있도록 3줄의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채용했다. 그림은 나오지 않았고, 숫자와 간단한 영어 메뉴 정도가 떴던 기억이 있다.

1998년은 PCS와 함께 본격적으로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통신 방식도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다. 이때부터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글 메뉴 없는 휴대폰을 생각하기도 어렵지만, 1998년에서야 삼성은 그래픽 디스플레이에 한글 메뉴를 띄우기 시작했다. 인포그래픽에서는 폴더폰인 ‘SCH-800’을 예로 들었지만, SCH-800은 꽤 발전된 모델이고 삼성이 화면에 한글을 띄우기 시작한 건 ‘SCH-400’을 내놓았을 즈음부터다. 도트 그래픽 디스플레이는 메뉴를 한글로 보여줬고, 수십개 정도 입력할 수 있던 전화번호부에 한글 이름도 넣었다. 문자메시지는 초기에는 작동하지 않았고 통신망이 갖춰진 이후에 펌웨어 업데이트로 40자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모토로라 ‘스타택’이 프리미엄 휴대폰으로 히트를 치자 반으로 접히는 폴더폰이 슬금슬금 나오던 게 1990년대 후반이다. 이때 삼성은 대박을 친 ‘듀얼폴더’를 내놓는다. 기존 폴더폰은 시계라도 보려면 덮개를 열어야 했다. 하지만 ‘SCH-A2000’ 듀얼폴더는 밖에도 3줄을 표시할 수 있는 그래픽 LCD를 달아 시간, 통신상태, 간단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 디스플레이는 5줄을 표시했다. 외부 창을 쓰는 아이디어는 이후 수많은 폴더폰에 적용됐고, 삼성은 OLED를 외부에 넣는 시도도 했다. 최근에 삼성이 내놓은 ‘갤럭시골든’ 같은 제품에도 듀얼폴더의 유전자가 엿보인다.

한글이 입력되고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점차 늘어나면서 n탑(현 네이트)같은 텍스트 기반의 통신서비스도 시작했다. 하지만 요금이 비쌌고 콘텐츠도 별로 없었다. 대신 화면 크기와 해상도를 높여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휴대폰이 인기를 얻었다. LG는 한 화면에 텍스트를 11줄씩 띄워주는 휴대폰을 내놓기도 했다.

2002년에는 드디어 컬러 디스플레이가 나온다. 초기 컬러 디스플레이폰은 16컬러 혹은 24컬러 수준으로, 지금보다 색 표현력이 한참 부족했고 밝은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개선돼 불과 1년 정도만에 26만컬러를 표시할 수 있는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삼성의 인포그래픽에 나오는 ‘SCH-X430’ 같은 제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폰 디자인은 당연히 폴더폰이었고, 컬러 디스플레이와 함께 카메라가 하나둘 달려나오기 시작한다.

‘SCH-V300’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휴대폰과 멀티미디어가 연결된다. V300은 SK텔레콤의 준(June) 서비스에 맞춰 나온, 이른바 전략폰이었다. 준은 동영상이나 음악 등을 인터넷으로 스트리밍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엄청나게 비싼 데이터 패킷 요금에 비해 마땅한 요금제가 없어서 영화 한 편 보고 수십만원씩 요금을 무는 사고가 종종 생기기도 했다. V300이 나올 시점부터 휴대폰에서 동영상이나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됐고, 그에 맞는 해상도의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서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삼성은 디스플레이가 본격적으로 LCD 세대에 접어들면서 큰 화면, 높은 해상도의 화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됐다. 물론 삼성만 그런 건 아니었고,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를 쓴 다른 제품들도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2005년 8월에 내놓는 ‘SCH-B250’이 나올 무렵에는 디스플레이 해상도와 크기가 제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SCH-B250은 일명 ‘가로본능’폰으로, 화면을 가로로 보는 멀티미디어 용도에 최적화해 화면을 90도 회전할 수 있게 만든 기기다. QVGA로 부르는 320×240 해상도를 냈는데, 이 디스플레이로 당시 막 선보인 DMB도 볼 수 있었다.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책이나 신문 대신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이때쯤이었다. 휴대폰은 점점 더 발전하기 시작했고, 화면은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휴대폰이 당시 유행하던 PMP를 대체하기에 이른다. 대체로 PMP는 3.5인치에서 4.3인치 정도의 크기를 가졌는데 2008~2009년 즈음부터 휴대폰 화면이 3인치를 넘나들게 됐다. 폴더 대신 큰 화면을 강조한 슬라이드폰이 대세가 됐고, 아예 키패드를 떼어낸 풀터치폰이 나오기 시작했다. 삼성은 AMOLED 디스플레이를 쓴 일명 ‘아몰레드폰’을 내놓았다. 지금은 ‘애걔~’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3.5인치 화면은 PMP 역할을 대체하기엔 충분했다. 이 디스플레이가 이후 삼성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면서 ‘옴니아’나 ‘갤럭시’를 비롯한 스마트폰 제품들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주력 제품에 모두 AMOLED를 썼고 다른 기업들은 LCD를 쓰는 차이는 있었지만, 4~5인치의 화면이 400×240 정도의 낮은 해상도에서 800×480의 해상도를 거쳐 현재는 1920×1080 정도의 해상도를 내는 기기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터치펜이 더해지거나 색 표현력이 PC 모니터보다 좋은 제품도 속속 나온다. 손 안에 전화기 하나 들려있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화면만 돌아봐도 까마득한 옛날얘기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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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