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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표 입는컴퓨터, 이어폰과 아기옷

2014.01.08

인텔이 올해는 새 프로세서 대신 새로운 기술들을 공개하는 데 열심인 듯하다. 인텔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는 키노트를 통해 웨어러블 기기들을 설명했다.

인텔이 내놓은 제품들은 이어폰과 시계, 그리고 아기옷이다. 펜티엄 프로세서를 만들던 인텔이 만드는 것이라고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제품들이다. 인텔의 스마트 이어폰은 귀에 꽂고 운동을 하면 이용자의 심장박동을 기록해 앱으로 전송해주는 역할을 한다. 별도의 전원이나 배터리를 연결하지 않아도 이어폰 단자에서 흘러나오는 전력 정도면 충분히 구동된다.

Intel_Smart_Headset_Reference_Design

스마트 시계의 프로토타입도 등장했다. ‘페블’이나 ‘갤럭시기어’ 같은 것이긴 하지만 이 시계는 굳이 스마트폰과 연결할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작동한다. 눈에 띄는 기능은 GPS 기반으로 울타리를 치는 지오펜싱이 있고, 스마트폰과 연결해 전화나 메시지를 제어할 수도 있다.

인텔은 아기에게 입혀두기만 하면 아기가 느끼는 기분과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옷 ‘미모'(MIMO)도 꺼내놨다. 인텔은 더 나아가 피트니스 밴드 같은 기기를 위해 디자인 업체와 제휴할 의사도 밝혔다.

ces2014-restdevices_mimo-0465

인텔은 왜 컴퓨터가 아닌 시계나 이어폰 따위를 내놓는 것일까. 그 속내는 SD카드 만한 PC인 ‘에디슨'(Edison)에서 볼 수 있다. PC라기보다는 시스템온칩(SoC)에 가깝긴 하지만, 이 자체로 펜티엄 컴퓨터만한 연산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에디슨에 들어간 프로세서가 바로 인텔이 지난해 깜짝 발표했던 저전력 프로세서 ‘쿼크'(Quark)다.

쿼크는 그 자체로 20여년 전 등장한 펜티엄 프로세서 수준의 성능을 내지만, 전력 소비는 획기적으로 줄였다.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곳보다 상시 켜져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하는 마이크로콘트롤러(MCU)의 역할을 하는 칩이다. 애플이 ‘아이폰5S’에 넣어 화제가 됐던 M7 칩이 ARM의 대표 MCU라면, 인텔이 이에 대항할 칩으로 내놓은 게 바로 쿼크다.

하지만 현재 ARM 칩을 대신하는 아톰도 잘 받아주지 않는 시장에서 성능이 검증된 ARM의 MCU 대신 인텔의 쿼크 칩을 당장 받아줄 리가 없다. 제 아무리 인텔이라고 해도 시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전히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인텔은 성능, ARM은 저전력’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는 상황에서 초저전력이 중요한 칩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Intel_Edison_Logo

이에 인텔은 직접 완제품 형태로 제품을 만들어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판매하겠다는 의도보다는 이런 기기를 만들 수 있다고 제조사와 소비자들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여서 낯설 뿐, 오래전 VIIV를 비롯해 울트라북, 초소형 PC인 NUC 같은 기기도 제품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인텔이 직접 만들었던 적은 많았고 간혹 시장에 판매했던 제품도 있다.

바야흐로 칩 전쟁이다. PC에만 혹은 스마트폰, 태블릿에만 CPU가 들어가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1개에 1천달러가 넘는 비싼 칩을 만들어내는 인텔이 왜 고작 몇 달러 밖에 안 나가는 칩을 CEO까지 나서서 설명하는 것일까. 일단 PC나 스마트폰 외에 더 많은 칩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야 하는 것이 칩셋 업계의 숙제다. 그게 가전이나 자동차 뿐 아니라 입는 컴퓨팅으로 번지고 있다.

시장을 넓히는 효과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컴퓨팅 기기가 생길수록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 분야가 강해지고 그에 따라 인텔의 서버가 더 많이 팔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올 CES는 프로세서 외에 얼마나 더 많은 곳에 칩이 쓰일 수 있는 매체를 찾는 데 집중되는 모습이다. 인텔이 아기옷을 만들었다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일이 아니라, 그게 인텔이 주력해야 할 시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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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