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지난 1년 동안 크게 주목 받았지만, 그 정체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을 응용해 만들어진 비트코인의 친구들을 알아보면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트코인에서 뻗어나온 가상화폐는 알려진 것만 8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몇 가지만 알아보자. 원조인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먼저 짚어보고, 비트코인 원리를 응용한 파생 가상화폐 네 가지를 소개한다. 여기선 ▲전문 채굴꾼 문제를 해결한 ‘라이트코인’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만든 ‘네임코인’ ▲익명성을 강화한 ‘제로코인’ ▲가상화폐 대중화를 노린 ‘도기코인’을 살펴봤다. 가상화폐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비트셰어’도 흥미롭다.

비트코인, 수학 기반 P2P 가상화폐의 원조

비트코인 로고

▲비트코인 로고(출처 : 위키미디어 CC-PD)

비트코인은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발행되는 가상화폐이자, 이를 관리하는 P2P 네트워크다. 가상화폐라는 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 싸이월드 도토리나 네이버 캐시 등 이미 다양한 가상화폐가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만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비트코인의 작동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주인이 없다. 네이버 캐시는 네이버라는 회사가 발행하고 관리한다. 반면 비트코인은 P2P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앙 서버도 없다. 대신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관리하는데 자기 컴퓨터를 빌려준 모든 사람의 컴퓨터 안에 나눠져 있다. 기존 가상화폐가 웹하드라면, 비트코인은 토렌트다.

그럼 비트코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보통 ‘돈’은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한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없다. 누구나 비트코인을 찍어낼 수 있다. 비트코인을 만들려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과정이 금광에서 금을 캐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마이닝(mining)’, 우리말로는 ‘채굴’이라고 한다. 채굴하는 사람은 ‘광부(miner)’라고 부른다. 누구든 가장 먼저 문제를 푼 사람은 25비트코인을 가져갈 수 있다.

수학 문제는 일종의 암호인데, 너무 복잡해서 일반 가정용 PC로 풀려면 몇 년이 걸린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캐기 위해 광부들이 자기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십시일반 모으는 곳도 생겼다. ‘채굴 모임(mining pool)’이다. 채굴 모임은 여러 광부의 컴퓨터에서 계산능력을 끌어모아 비트코인 암호를 푼다. 암호 푸는데 성공해 비트코인을 받으면, 계산에 기여한 만큼 광부들에게 비트코인을 나눠준다.

비트코인이 금과 비슷한 면이 또 한 가지 있다. 양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2100만개까지만 발행된다. 비트코인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돈의 양이 늘어나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물가상승,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조치다.

비트코인이 P2P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주자, 비트코인의 작동방식을 본 뜬 가상화폐가 많이 나타났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구조를 공개해둔 덕분이다.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이사는 “비트코인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고, 비트코인을 통해 가상화폐의 가능성도 검증됐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비트코인을 응용한 비트코인 친구들을 만나보자.

라이트코인, 전문 채굴꾼을 솎아내다

라이트코인 로고▲라이트코인 로고 (출처 : 위키미디어 CC-PD)

라이트코인(LiteCoin)은 비트코인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 일반 사용자도 가볍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이름도 ‘라이트’코인이다. 비트코인 작동방식을 거의 그대로 빌렸다. 다만 전문 채굴꾼 때문에 일반 사용자가 가상화폐를 만들기 어려워지는 문제를 보완했다.

비트코인은 비교적 단순한 암호를 써서, 암호를 푸는 전용 기기(ASIC)를 만들기 쉬웠다. 전용 기기가 나온 뒤, 새로 만들어진 비트코인 대부분은 이 기기를 가진 사람들 손에 떨어졌다.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가면서 이런 전문 채굴꾼이 크게 늘었다. 전용 기기 수백 대를 운영하는 비트코인 채굴 기업도 나타났다.

문제는 전문 채굴꾼 때문에 일반적인 사용자가 비트코인을 만들기가 어려워졌다는 거다. 나는 지난해 11월 업무용 노트북으로 비트코인을 만들어 봤다. 4박5일 동안 얻은 비트코인은 0.5원어치도 안 됐다. 전문 채굴꾼과 비트코인을 두고 경쟁했기 때문이다.

이건 처음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뜻에서 벗어난 일이다. 비트코인은 원래 많은 사용자에게 컴퓨터를 빌려 써서 비트코인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컴퓨터를 빌려준 사용자에게 보답으로 비트코인을 준다. 몇몇 전문 채굴꾼이 비트코인 발행 과정을 독차지하면, P2P 방식으로 유지되는 전체 비트코인 시스템이 불안해진다. 분권화된 화폐를 만들려고 했던 창작자의 의도에도 어긋나게 된다.

라이트코인에는 전문 채굴꾼을 막는 장치가 있다. 비트코인보다 한층 복잡한 암호를 풀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코인 암호를 푸는 전용 기기를 만들기 어렵다. 전문 채굴꾼이 나타나기 어렵게 모든 사용자의 라이트코인 생산 능력을 하향평준화한 셈이다. 암호를 풀기 어렵게 만든 덕분에 역설적으로 전용 기기가 없는 일반 사용자도 집 컴퓨터로 가볍게 가상화폐를 만들어 볼 수 있게 됐다.

라이트코인 시장은 비트코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비트코인 시장의 6% 정도로, 우리돈으로는 765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1월9일 오후 라이트코인 1개는 24달러(2만5천원) 정도에 팔린다.

네임코인, 분권형 인터넷 주소체계를 만들다

네임코인 로고

▲네임코인 로고(출처 : 위키미디어 CC-PD)

네임코인(NameCoin)은 인터넷 주소(도메인)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자, 여기서 쓰는 가상화폐다. 인터넷 웹사이트 이름을 관리하는 데 쓰여서 이름도 ‘네임’코인이다. 네임코인 시스템이 만든 인터넷 주소는 ‘.bit’로 끝난다.

모든 인터넷 주소는 단 한 곳이 관리한다. 비영리기관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다. ‘.com .net .org .info .biz’로 끝나는 최상위 인터넷 주소를 만들거나 거래하려면 ICANN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ICANN은 인터넷 주소를 검열한다. ‘대마초닷컴’ 같은 인터넷주소를 못 만들게 하는 것이다.

네임코인은 지금처럼 한 곳에 집중된 인터넷 주소 관리 시스템에 반대한다. ICANN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새 인터넷 주소를 만들고자 한다.

아이디어는 비트코인에서 빌려왔다. 비트코인이 거래장부를 네트워크에 배포해 P2P 방식으로 운영하듯, 네임코인은 인터넷 주소를 P2P 방식으로 관리한다. 네임코인 인터넷 주소를 등록하고 거래하는 일은 익명으로 이뤄진다. 2011년 6월 위키리크스는 네임코인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대안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자기 컴퓨터를 빌려준 사람들은 보답으로 네임코인을 받는다. 네임코인은 ‘.bit’으로 끝나는 인터넷 주소를 살 때 쓴다. 네임코인 시스템에 힘을 보탠 사람이 그 안에서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네임코인을 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인터넷 주소를 차지하기도 어려워진다. ‘.bit’ 주소를 만들려면 0.01네임코인을 내야 한다. 인터넷 주소를 만든 사람은 그 주소를 삭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다.

네임코인 시장은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가상화폐 가운데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지금까지 발행된 네임코인은 650억원어치다. 네임코인 1개는 6.5달러(6900원) 정도에 거래된다.

제로코인, 비트코인보다 더 비밀스런 가상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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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코인 로고 (출처 : 제로코인 웹사이트)

제로코인(ZeroCoin)은 비트코인보다 익명성을 강화한 가상화폐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정보보안연구소 연구원들이 만들었다.

비트코인은 거래 내역이 모두에게 공개된다. 비트코인이 익명성을 보장하는 방법은 전자지갑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하는 것 뿐이다. 만약 전자지갑 주인이 누군지를 안다면 그 사람이 그동안 비트코인을 거래한 모든 내역을 누구나 살펴볼 수 있다. 2010년에 누군가가 비트코인 2만개를 주고 피자 2판을 샀던 기록을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는 이유다.

제로코인은 더 복잡한 방법을 쓴다. 내게 제로코인이 100개 있다고 치자. 나는 제로코인에 A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A에 암호를 건다. 그리고 A를 제로코인 네트워크라는 은행에 보관한다. 훗날 제로코인을 쓸 일이 생기면 금고에 가서 제로코인 100개를 꺼내달라고 한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집어넣은 A를 그대로 돌려받는 게 아니라, 제로코인 100개를 돌려받는 거다.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상관없다.

은행은 내가 제로코인을 맡긴 적이 있는지, 내가 맡긴 제로코인이 100개가 맞는지 확인한다. A가 은행에 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A의 암호를 아는지도 본다. 내가 제로코인 100개를 맡긴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면, 은행은 맡아둔 제로코인 가운데 무작위로 100개를 꺼내 내게 준다. 내가 은행에 넣은 돈과 은행에서 받은 돈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거래 내역을 추적하기 어렵다.

도기코인, 가상화폐의 보편화를 노린다

dogecoin_logo▲도기코인 로고 (출처 : 도기코인 웹사이트)

전직 IBM 엔지니어인 빌리 마커스는 비트코인에 푹 빠졌다. 기술적인 혁신성이 특히 맘에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마약 같은 불법거래에 악용된다는 오명을 얻은 점도 껄끄러웠고, 전문 채굴꾼만 새 비트코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직접 가상화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마커스는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상화폐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즐겨하던 게임에 나오는 가상화폐에서 이름을 따오려 했다. 그런데 친구 잭슨 팔머가 개를 마스코트로 삼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인터넷에서 개 ‘짤방’이 인기있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나 라이트코인처럼 어려워보이는 가상화폐가 아니라, 짤방 가상화폐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 두 사람은 뜻을 모았다. 마커스가 ‘도기코인(DogeCoin)’이란 인터넷 주소를 사들인 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힘을 모아 새 가상화폐를 세상에 내놓았다.

도기코인은 라이트코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전문 채굴꾼만 도기코인을 독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에서다.

도기코인이 발표된 건 2013년 12월6일인데, 벌써부터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미 1500만개가 만들어졌다. 62억7천만원어치다. 도기코인 1개는 0.0002달러 정도다.

비트셰어, 가상화폐의 대모를 꿈꾼다

지금까지 비트코인에서 뻗어나온 가상화폐 몇 가지를 알아봤다. 이것들은 비트코인을 바탕으로 몇 가지 기능을 손보거나 추가한 정도다. 여기서 소개할 비트셰어(BitShares)는 다르다. 가상화폐보다 한 차원 높은 개념이다.

비트셰어 개념도

▲비트셰어 개념도 (출처 : 비트셰어 백서)

비트셰어는 가상화폐라기보다 ‘가상화폐 생태계’에 가깝다. 비트셰어 개발자는 비트셰어를 ‘다면적 디지털 자산’이라고 설명한다. 무슨 말일까?

비트코인류 가상화폐는 모두 똑같은 약점을 갖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비트코인이 100만원에 거래되는 이유는 단지 사람들이 그게 100만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생산하는 데 드는 원가가 100만원인 것도 아니고, 누군가 비트코인이 100만원이라고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100만원만큼 가치가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오로지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서 가치가 생긴다.

비트셰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물경제와 가상화폐를 맞대응시켰다. 비트셰어는 ‘비트애셋(BitAsset)’이라는 가상화폐를 여러 개 품고 있다. 각 비트애셋은 실물상품 하나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비트골드'(BitGold)라는 비트애셋은 금값과 함께 움직인다. 1비트골드는 금 1온스로 맞교환되는 식이다. 금값이 올라가면 비트골드의 가치도 올라가고, 금값이 떨어지면 비트골드 가치도 덩달아 떨어진다.

이런 가상화폐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비트실버’나 ‘비트달러’처럼 서로 다른 실물상품과 연결되기만 하면 된다. 비트코인과 맞교환되는 가상화폐도 생길 수 있다. 각 가상화폐는 비트셰어 시스템 안에서 일정 비율로 교환된다. 비트실버 14개로 비트골드 1개를 사는 식이다. 비트셰어가 널리 퍼지면, 이론적으로는 모든 상품을 비트셰어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비트셰어를 ‘다면적 디지털 자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비트셰어 개념도

▲비트셰어 개념도(출처 : 비트셰어 백서)

비트셰어에는 비트코인의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도 여럿 있다. 거래장부를 여러 개로 나눠 채굴자의 부담을 줄였고, 가치 급변동을 막는 장치도 마련했다. 에스크로(제3자 지불 중계) 거래도 비트셰어 자체 기능만으로 할 수 있다.

비트셰어도 문제는 있다. 비트셰어가 작동하려면 맨 처음 누군가는 진짜 물건을 주고 비트셰어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누가 금을 주고 아무 가치도 보장받지 못하는 비트골드를 받으려 할까. 비트셰어 개발자는 비트셰어가 가진 장점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트셰어를 쓸 거라고 했지만, 그 전망이 현실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비트셰어 자체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실험판인 ‘프로토셰어'(ProtoShare)가 나와 있다. 프로토셰어를 쓰면서 비트셰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비트셰어 개발자는 실험을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프로토셰어 일부를 비트셰어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했다.

가상화폐, 삶과 결합하는 것이 숙제

비트코인을 응용한 파생 가상화폐부터 모든 실물거래를 끌어안은 가상화폐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다양한 가상화폐가 등장했다. 비트코인이 불을 댕긴 상상력은 끝이 안 보인다. 가상화폐가 일상 생활에도 널리 쓰일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터넷이 등장해 가상의 세계를 열었듯이 가상화폐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젖힌 것은 분명하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비트코인은 새로운 인터넷 경제를 만드는 시작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라며 “경제 성장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가상화폐라고 해서 개념적인 수준에만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가 쓰일 실제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가상화폐는 ‘가상’이란 딱지를 떼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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