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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사만의 리그’ 올림픽, 안녕한가요?

2014.02.06

올림픽과 그 스폰서십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몇 차례 논란이 됐던 이야기입니다. 이번 얘기가 화제가 되는 까닭은 그 안에 삼성과 갤럭시, 그리고 아이폰이 끼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삼성 제품 외의 스마트폰에 대해 이용을 제한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슬래시기어는 삼성전자가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용품에 ‘갤럭시노트3’를 넣었고, 선수들에게 대회 기간동안, 특히 개막식에서 사진 촬영 등에 이 제품을 쓰도록 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제품은 쓰지 못하게 막는 것까진 아니지만 로고가 노출되지 않도록 제품을 가리고, 방송은 선수들이 삼성전자 외 제품을 쓰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선 안 된다는 얘기도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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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외에는 안 돼”

처음에는 이런 식의 접근이 불편했습니다. 큰 돈을 들여서 광고하는 스폰서이고 선수들에게 제품을 지급하긴 했지만, 개인이 쓸 기기까지 제한하는 건 지나친 조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직접적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사소한 것 하나까지 예민하게 반응할 선수들에게 스마트폰 이용을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 싶었죠.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스폰서로서 타 브랜드 가리는 것은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코카콜라나 아디다스가 다른 제품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였죠. 듣고 보니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닙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이미 여러 대회가 스폰서십을 이용해 선수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스폰서 비용만 해도 수백억원씩 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 분야별로 기업 스폰서 한 곳씩만 뽑아 막대하고 절대적인 홍보 권한을 주는 ‘공생관계’가 정착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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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모든 선수들이 코카콜라에서 나오는 물과 이온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시청하고, 시상식에서 아디다스 로고가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입은 선수들을 지겹도록 봅니다. 물론 선수들이 그 브랜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특정 스폰서를 제외한 다른 제품에 대해서는 노출을 차단했기 때문이지요. IOC는 올림픽 개막 9일 전부터는 출전 선수들의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 활동도 모두 제한합니다. 단, 스폰서 업체의 광고에 참여하는 건 허용됩니다. 물샐틈없는 비즈니스 가이드입니다.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회 이름에까지 상표가 붙는 일도 이제는 낯설지 않군요.

그럼 갑자기 왜 삼성전자가 이슈가 됐을까요? 그 동안 음료수나 스포츠 용품에 대해서는 ‘그러려니’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중잣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의지로 골라서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타의에 의해 바꿔쓰라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제품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로고를 가리고 방송에 잡힐 기회를 저버리면서까지 다른 제품을 쓰려는 선수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불만이 있는 선수들도 있을테고, 그래도 올림픽 출전의 순간을 내가 쓰던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축제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건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기본권’이냐 ‘비즈니스’냐

삼성전자는 “IOC나 선수단에게 기기 이용을 직접적으로 요청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IOC가 스폰서 업체 외 기업들과 브랜드에 대해 관리를 하고 있어서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IOC는 지난해 런던 올림픽에서도 “메인 스폰서 코카콜라의 경쟁사인 펩시 콜라의 티셔츠를 입은 관람객의 입장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내비쳤을 만큼 스폰서 기업 브랜드를 깐깐하게 관리합니다. 비싼 비용을 낸 스폰서 외의 기업이 선수 개개인이나 관람객 혹은 여러가지 방식을 이용해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겠다는 겁니다.

큰 경기에 자주 스폰서로 나서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삼성이 직접 요청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IOC과 체결한 스폰서십 계약에는 관련 내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약서 상에는 스폰서가 할 수 있는 홍보활동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 시스템이 아주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삼성이 직접 갤럭시노트를 쓰길 요구했다기보다 올림픽 스폰서십 자체가 원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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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업체와 IOC의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스폰서 업체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내고 후원과 광고를 하는데, 그만큼의 권리가 주어질 필요는 있습니다. 광고주가 아니면서도 선수들을 이용해 홍보 효과를 내려고 하는 기업이나 이를 중개해 주는 브로커가 지금도 적지 않을 겁니다. 사실 스폰서십에 대해서는 올림픽 후원사부터 국가, 협회, 팀, 개인 등 다양한 스폰서십이 있는데 적어도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올림픽 후원사에 가장 우선권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폰서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선수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더 나아가 여러 가지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선수들은 실력을 내세우기보다는 광고판으로 쓰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광고판으로서 가치가 없는 선수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게다가 올림픽은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 갖가지 홍보 효과를 노리는 프로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량을 공정하게 겨룬다는 ‘거룩한’ 이념까지 갖고 있는데 말이지요. 스포츠 경기는 점점 더 첨단화되는 광고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브랜드 관리, 무임승차 절대 금지

다른 업계는 어떨까요? 가장 스포츠 업계와 가깝게 맞물려 있는 건 역시 스포츠 용품일 겁니다. 한 스포츠 업체 관계자에게 스폰서십에 대한 권한과 제한에 대해 물어봤더니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스포츠 용품에도 스폰서십이 들어가긴 하지만 경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용품에 대해서는 스폰서 업체와 관계 없이 원하는 것을 쓸 수 있다”고 하네요. 운동화나 수영복 같은 게 되겠네요. 하지만 IOC는 경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운영방침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합니다. 이를 어기고 개인 스폰서의 제품을 쓰다가 징계를 받거나 벌금을 무는 경우는 비단 올림픽 뿐 아니라 큰 대회에서도 종종 눈에 띕니다.

기사를 마무리하던 무렵, 새로운 얘기도 들었습니다. 미디어들도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올림픽 뉴스를 특집으로 묶을 때 1차 도메인에 직접 올림픽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서는 안되고, 기존 페이지에 ‘/olympic’처럼 붙이는 형식으로 쓰도록 가이드라인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도메인 앞에 ‘.’으로 페이지를 구분하는 네이버도 동계올림픽 페이지는 ‘http://sports.news.naver.com/sochi2014/’라는 주소로 운영하는군요. IOC의 까탈스러운 브랜드 관리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소치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세계 88개국에서 6천여명의 선수와 임직원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이번 올림픽은 개막식 그 자체보다 스폰서들의 활동이 더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 운동선수들과 프로페셔널 IOC가 어우러지는 화려한 축제의 현장이 기대됩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