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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의 연작, 소니 ‘바이오’를 떠나보내며

2014.02.09

내가 ‘바이오’를 처음 본 것은 1998년이었다. 한창 활동하던 동호회에 한 회원이 기묘한 노트북을 들고 나타났다. 당시 노트북은 회색이나 검정색으로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영롱한 보라색 노트북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이 노트북의 멋드러진 로고는 다른 노트북과 거꾸로 붙어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소니의 노트북 바이오였다.

당시 워크맨과 오디오, TV 등 가전 업계에서 소니의 디자인 능력은 정말 최고였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들의 디자인은 늘 한발짝 앞서 있었다. 비싸다는 게 유일한 약점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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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PC시장에 뛰어든 것은 업계에 큰 화젯거리였다. 1998년 처음 등장한 ‘바이오 505’는 아니나 다를까 놀라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나는 애플이 ‘맥북에어’를 내놓았을 때보다 소니가 바이오 505를 발표했을 때 충격이 더 컸다. 바이오 505는 상판을 마그네슘으로 처리했고 음각으로 VAIO를 새겨넣었는데, 당시 다른 노트북들이 이용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로고를 붙였었던 것과 달리 소니는 반대쪽으로 큼직하게 브랜드를 새겼다. 그러니까 이 로고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맞은 편에 있는 누군가가 보는 것’이었다. 디자인과 브랜드를 아는 소니의 센스였달까. 요즘은 노트북 디자인의 당연한 요소가 된 것이지만.

힌지 부분을 둥그렇게 말고 그 부분에 배터리를 밀어넣은 것도 독특했다. 본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배터리를 뒤로 밀어낸 것인데, 그게 결과적으로 노트북 본체를 마술처럼 얇게 만들었다. 그 둥그런 옆면에 달린 전원 버튼과 LED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전까지 극단적으로 얇은 노트북이라면 샤프의 ‘뫼비우스’ 도시바 ‘포테제’ 시리즈 정도였는데, 바이오는 디자인 면에서 단연코 가장 아름다웠다.

게다가 본체에 보라색을 칠했다. 이건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노트북이 비쌌기에 점잖은 어르신들이 비즈니스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았고, 서류가방처럼 각진 디자인과 튀지 않는 색을 쓰는 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소니는 PC를 다른 용도로 해석했다. 바이오란 이름도 ‘비디오와 오디오를 돌리는 컴퓨터’를 뜻하는 ‘Video Audio IO’에서 따 왔다.

vaio_duo_design

당연히 소니 바이오는 등장과 함께 단숨에 인기가 치솟았다. 비쌌지만 충분히 그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었다. 1998년이면 사실 노트북만 들고 다녀도 사람들이 쳐다보던 시기였는데, 바이오를 펼치면 정말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단순히 디자인만 예쁘게 한 것이 아니다. 소니는 바이오 메인보드 설계에 온갖 기술을 집어넣었다. 기판을 양면으로 쓰고, 여러 층의 기판을 겹치는 등 메인보드 크기를 줄여 노트북의 부피와 두께를 줄이는 기술을 쌓아 왔다. 소니가 노트북을 발표할 때 메인보드를 꺼내서 보여주는 일은 의례가 됐다.

그렇게 단숨에 성공한 바이오는 505라는 이름으로 시리즈를 이어간다. ‘n505’가 나왔고 그 역시 바이오의 개성은 살리되 파격적인 디자인도 여전했다. 바이오가 국내에도 슬금슬금 병행 수입되기 시작했다. 소니는 한국 진출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한국 PC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결국 용산 전자상가에는 수많은 바이오 노트북들이 병행 수입됐다.

리퍼비시 노트북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소니 바이오 때문이었다. 국내 시장에서는 불량이나 단순변심으로 반품된 제품을 다시 손봐 싸게 판매하는 리퍼비시 제품이 낯설었지만, 용산 전자상가의 보따리상들이 리퍼비시 제품을 싸게 사와 마치 새것처럼 비싸게 팔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용산 시장이 들썩이기도 했지만, 이후 리퍼비시 제도는 노트북 시장의 한축을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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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소니는 제품 출시에 매우 인색했다. 그 대신 제품 하나하나를 아주 공들여 만들었고, 제품 수명도 길게 가져갔다. 소니에서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었던 노트북이 ‘바이오 C1’이었는데 이것 역시 시장에서 놀라운 반응을 얻어냈다. 적어도 12인치 이상이었던 노트북 시장에 8.9인치 화면을 꺼내놓은 것이다. 게다가 1024×480 픽셀로 2.13대1 비율의 독특한 화면비도 인상적이었다. HDTV도 없던 시절이긴 했는데 가로 화면이 길쭉한 영화를 볼 때 아주 제격이었다.

이렇게 작은 노트북 시장을 처음 연 건 도시바의 ‘리브레토’였지만, 바이오 C1 시리즈는 이를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저전력을 위해 통합칩을 썼다. 당시 펜티엄 호환 프로세서였던 크루소 칩을 썼는데 이 때문에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단점으로 꼽히긴 했지만 디자인과 휴대성을 앞세워 거의 3년 정도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이때 얻은 소니의 작은 노트북 만드는 기술은 이후 다양한 방식의 제품들로 등장한다. 터치스크린과 접이식 키보드 방식을 썼던 ‘바이오 UX’, 청바지 주머니에 넣어서 홍보했던 ‘바이오 P’ 등이 그 핏줄을 이어갔다.

vaio_c1

하지만 소니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진 못했다. 노트북이 대중화되면서 비싸고 좋은 제품을 적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고 대중적인 제품을 많이 파는 전략이 필요했다. 결국 소니는 플라스틱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고, 복잡한 메인보드 대신 일반적인 기판을 설계했다. 문제는 고가 전략이 계속됐다는 점에 있었다. 싸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은, 그저 그런 노트북들을 찍어냈다. 이건 소니만 겪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노트북 업체를 괴롭힌 고민이었다.

물론 소니는 여전히 C1같은 포터블 노트북을 내놓기도 했고, Z시리즈로 고급화하기도 했다. 가볍고 탄탄한 카본섬유 재질로 노트북을 만드는 시도로 얇고 가벼우면서도 탄탄한 제품을 만들기도 했고, 그래픽카드를 바꿔가면서 쓸 수 있는 노트북도 내놓았다. 디스플레이는 누구보다 좋은 것을 썼다. 하지만 여러 노력에도 그렇게 서서히 소니는 어려워졌던 것 같다. 노트북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갔고, 이윤은 박해졌다. 차별화는 어렵고 짜맞추기로 스펙만 강조하는 PC 시장은 소니의 노력을 그리 높이 쳐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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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PC 시장의 열기가 식고, 소니로서는 기회로 봤던 ‘윈도우8’ 역시 시장에서 썩 신통치 않다보니 소니라고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두 가지 이유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으로 소니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포기해야 할 사업 중 하나로 늘 PC가 꼽혔던 것도 사실이다.

아주 생각지 않았던 일은 아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아직 바이오가 단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은 남는다. 일본인더스트리얼파트너스는 바이오 브랜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바이오의 디자인 유전자는 계속해서 살아 숨쉴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가 이렇게 저물어가는 건 씁쓸한 일이다. 소니만의 일이 아니라 여러 PC 업체들이 벌써 수년째 PC 사업을 떨어낼 궁리를 해 오던 게 공공연한 비밀이기에, 바이오가 신호탄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PC 시장에서 디자인의 미학, 그 다양성과 가치를 만들어낸 바이오에 마음 무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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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