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원준 사장, “SAP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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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쥔 이들은 변화에 둔감하다. 이미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지만 고객이 늘어날수록 제품을 빠르게 변화시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사적자원관리(ERP)와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 제품수명주기관리(PLM) 등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SAP의 입장도 이와 비슷했던 것은 사실이다.

전세계 상위 500대 기업 중 SAP 솔루션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80%에 이른다. ERP로 시장을 석권한 후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 ERP 시장에 눈을 돌리면서 이 분야도 시장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독일 기업 특유의 철저한 프로세스 관리 때문에 고객들이 요구하는 유연성을 SAP가 발빠르게 대응하지는 못했다. 고객들은 전체적인 사업 전반을 통찰하기 위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했지만 어느새 자신이 걸친 옷이 행동의 자유로움을 막는 엉뚱한 문제에 봉착해 왔다.

sapkoreaceo091023이런 고객들의 요구에 SAP가 드디어 변화를 선택했고, 고객들이 쉽게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서로 다른 서비스들을 조합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꿨다. 전략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이런 전략을 달성할 수 있도록 툴들도 새롭게 내놓고 있다. 비즈니스 프로세스 플랫폼(BPP)이 그것이다. 전용 개발 언어인 아밥 일변도에서 자바도 지원하는 것으로 변했다.

형원준 SAP코리아 지사장은 “이제 SAP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고 “ERP가 모든 기업들의 기간 시스템이다. 그간 기간 시스템들과 연동할 때 꼭 SAP의 개발 언어인 아밥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제 자바를 사용해서 서비스를 만들고 이를 레퍼지토리에 저장해 놓고 이 서비스들을 호출해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새 국내 기업들 앞에 아무도 없는 말 그대로 전세계 베스트프랙티를 만들어 내는 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프로세스가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면서 “이제 이런 프로세스를 더욱 세밀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기업 고객들에게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기업들은 외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기능은 별도로 개발해 왔다. 또 패키지 솔루션이 제공하지 못했던 것들은 내부 인력을 통해 독자 개발하고 기간 시스템과 연동해 왔다. 이 과정이 상당히 오래걸렸고, 이렇게 개발된 기업 내 시스템들은 3년~5년이 지나면 또 다른 기술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었다. 또 다시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했다.

SAP는 이런 기존의 시장 접근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도입하는 패키지가 제공하는 프로세스를 사용하거나 없으면 만들어서 서비스 저장소에 넣고 이를 호출에 기존에 있는 프로세스에 추가하면 된다.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데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하고 빠르게 필요한 비즈니스 로직을 만들어 바로 적용할 수 있어 IT 솔루션 도입 비용과 프로젝트 가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SAP는 BPP 플랫폼을 통해 엔터프라이즈 서비스 리파지토리(ESR)에 있는 서비스를 호출하거나 개발하라는 것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2800개의 서비스가 저장돼 있고, 연말이면 3500개의 서비스가 이 저장소에 저장된다. 각 기업은 물론 솔루션 파트너들은 앞으로 기존에 SAP가 제공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서비스는 물론 자사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만들어 이 저장소에 저장해 관리를 하면된다.

형 사장은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이렇게 설계된 것들이 모든 내부 애플리케이션과 긴밀히 연동돼야 한다. 이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왔다”면서 “프로세스를 설계하면 기업 내부 애플리케이션에 바로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 고객들은 자사의 프로세스 설계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자사만의 경쟁력 있는 프로세스를 바로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대규모 ERP 구축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서비스 적용 프로젝트들만 남게 된다. SAP코리아는 최근 메타넷ESG와 협력했다. 전통적인 ERP 컨설팅 파트너가 아니다. 궁금했다. 형원준 사장은 “메타넷ESG가 상대적으로 SAP 변화에 발빠르게 움직였고, 자바 인력들도 대거 확보하고 있다”고 전하고 “전통적인 파트너들도 이제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객들에게 훨씬 많은 이점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SAP가 자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많은 자바 인력들이 기업의 전략 컨설턴트로 거듭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서비스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기업에서 필요한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통해 실제 기업들의 문제 해결을 도와줄 수 있어 전략 컨설턴트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형원준 SAP코리아 지사장은 SAP에 몸담기 전 SCM 경쟁 업체인 i2 국내 지사와 아태지사장도 역임했었다. 당시 i2는 자바를 적극 지원했다. 형 사장은 “자바 게임 개발자를 채용해 기업들의 요구에 대응토록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자바 개발자들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물론 경영 컨설턴트로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SAP의 변화가 국내 자바 개발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AP의 변화는 최근 경제 위기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려는 기업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사결정자나 재무담당 총괄 임원, 정보담당 총괄 임원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업체를 인수할지, 아니면 내부 자원들을 줄여나갈지, 또 전혀 다른 산업군으로 뛰어들지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재 경쟁 관계는 물론 전혀 다른 산업군에서 일어나는 변화까지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은 항상 IT가 뒷받침해줘야 한다. 유연한 시스템을 기업들이 원했던 요구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딱딱한 이미지의 SAP가 이제 자사의 고정 이미지를 벗고 유연성을 자사 솔루션의 최대 무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SAP의 주장처럼 고객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개발자들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최근 열린 컴포짓 애플리케이션 발표회장은 많은 기업 담당자들로 채워져 1차적으로 고객들이 SAP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하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오라클의 맹공 앞에 SAP가 변화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