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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계여, ‘패션’을 입으시라

2014.03.20

지난 3월19일 LG전자가 영국 공식 블로그에서 ‘LG G와치’를 공개했다. 구글과 LG전자가 스마트시계를 함께 개발 중이라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순간이다. 같은 날 모토로라도 공식 블로그를 통해 ‘모토 360’이라는 손목시계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LG전자와 모토로라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 스마트시계를 내놓을 예정이다.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과연 특별한 날이긴 했다. 구글이 공식 블로그에서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위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웨어’를 발표한 날이니 말이다. 구글의 발표에 맞춰 두 업체가 스마트시계를 개발 중이라고 공개한 것이다. 스마트시계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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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서 배워라

손목시계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물건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실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손목시계의 본질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과 관련이 적기 때문이다. 기계식 시계 브랜드 브레게와 고가 의류브랜드 까르띠에가 처음으로 군인과 비행기 파일럿의 손목에 시계를 두르기로 결정한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일이다. 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손목시계의 역할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에서 의복생활의 일부로 바뀌었다. 오차도 적고, 값도 싼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한 손목시계보다 장인이 손수 만들었다는 역사적인 브랜드의 오토매틱 시계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여만원이면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스와치 시계 대신 유명한 패션브랜드가 내놓는 싸구려 쿼츠시계가 인기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손목시계는 사용자가 사회적 위치를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동시에 과시욕을 채워주는 도구가 됐다. 손목시계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도구적 기능 대신 문화적 기능을 강화해온 셈이다.

페블과 삼성전자, 소니는 손목시계의 이 같은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제품의 문화적 맥락보다 도구적 기능에 집중한 탓이다. 물론 겉모양을 평가하는 잣대는 보는 이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시계는 사람들의 손목에서 전통적인 디자인을 한 바늘 시계를 벗겨내지 못했다. 새로 발표된 LG전자의 ‘G와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갤럭시기어’와 ‘페블’, ‘LG G와치’에 높은 평가를 내리는 사회집단은 어쩌면 초등학교 교실에 한정될지도 모른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2013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 올씽스디가 주최한 ‘D11’ 컨퍼런스에 참석해 웨어러블 기기에 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저는 안경이 필요해서 안경을 씁니다. 하지만 안경이 필요 없는 이들이 구글안경을 쓰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구글안경은 가벼워야 하고, (쓰는 이들의)패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절제돼야 할 것입니다.”

당시 팀쿡 CEO는 ‘구글 안경’을 주제로 이야기했지만, 넓은 의미에서 웨어러블 기기는 패션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 같은 관점에서 모토로라의 모토 360은 재미있는 제품이다. 안드로이드 웨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통적인 모양의 손목시계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초침과 분침, 시침으로 이루어진 시계판이 인상적이다. 시계바늘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용두도 보인다.

모토로라는 블로그에서 “손목시계가 처음 등장한 이후 대표적인 패션 액세서리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라며 “모토로라의 비전은 모토 360으로 손목시계의 역사를 기리는 동시에 미래를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모토 360으로 손목시계와 스마트시계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 한 모토로라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같은 노력이 실제 보통 사용자에게 어떻게 먹혀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적어도 스마트시계는 일부 얼리어답터의 장난감이라는 인상은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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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삼성 기어2’, ‘기어2 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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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LG G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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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로라 ‘모토 360’

안드로이드 웨어,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사용자 처지에서 스마트시계에 주문해야 할 것은 패션뿐만이 아니다. 제품의 차별화도 제조업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안드로이드 웨어가 가진 양날의 칼이 제조업체 턱밑에 들어왔다.

기존 스마트시계 시장은 페블이나 소니, 삼성전자가 산발적으로 이끌어온 분야다. 페블은 페블 나름대로, 소니와 삼성전자도 각자의 플랫폼으로 스마트시계를 만들었다. 세 업체 모두 안드로이드를 기반에 두긴 했지만, 통합의 구심점은 없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웨어는 이 판을 뒤바꿀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선 앞으로 스마트시계 시장은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와 모토로라가 같은 날 개발 중인 제품을 공개한 것처럼 안드로이드 웨어는 더 많은 제조업체가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기능도 부족한 면이 없다. 피트니스 트래킹 기능은 기본이다. 스마트폰과 연동한 각종 알림 서비스도 안드로이드 웨어가 지원하는 핵심 기능이다. 기존 스마트시계가 보여준 활용성에 달력이나 지도, 구글나우와 같은 구글의 기본 서비스를 추가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기존 스마트시계가 가진 한계를 안드로이드 웨어가 넓히는 그림이다.

덕분에 제조업체는 고민을 좀 덜었다. 스마트시계에 어떤 기능을 넣고,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 기존의 걱정은 안드로이드 웨어로 해결하면 된다. 안드로이드 웨어는 제조업체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스마트시계용 플랫폼인 셈이다.

현재 전세계 수많은 제조업체에서 자유롭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개발 중인 것처럼 삼성전자나 소니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조업체가 안드로이드 웨어러블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안드로이드 웨어의 이 같은 특징은 반대로 제조업체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차별화다. 현재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은 차별화의 늪에 빠져 있다. 삼성전자의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지만 LG전자나 소니, 모토로라, HTC, 화웨이, ZTE가 내놓는 제품은 기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별로 쓰이지도 않는 기능이 뱀발마냥 붙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 제조업체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처럼 앞으로 많은 제조업체가 안드로이드 웨어를 앞세워 스마트시계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제조업체의 스마트시계는 안드로이드 웨어를 얹은 중국산 ‘묻지마 스마트시계’와 어떤 점에서 차별화를 꾀할 수 있을까. 안드로이드 웨어는 스마트시계 시장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인 동시에 차별화 숙제를 떠안게 하는 ‘구글의 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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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웨어’의 조작환경(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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