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모임 땀땀이 잇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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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쏟아지는 컨퍼런스와 세미나,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각종 블로거 모임, 동창생이나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약속들…. 이런저런 모임이 생길 때마다 십중팔구 빠지지 않고 거치는 공간이 있다. 온오프믹스다.

비공개 테스트 기간을 거쳐 서비스를 공개한 지 어느덧 2년 남짓. 온오프믹스는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모임전문 서비스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모임이 온오프믹스에서 꾸려지고 흩어진다. 한쪽에선 진지한 학술 세미나가 꾸려지는가 하면, 삼삼오오 짝지어 노는 모임도 불쑥 튀어나온다. 대기업이 주최하는 경진대회도 보였다가, 조촐한 가족·친지 모임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허나 온오프믹스를 운영하는 양준철(25) 재미삶연구소 창업자에겐 2년 남짓한 기간이 오롯이 재미있는 삶은 아니었다. 온오프믹스가 공개 시범서비스를 시작하던 2008년 3월 무렵, 양준철 씨는 병역특례로 다른 회사에 얽매인 몸이었다. 온오프믹스에 힘을 쏟기엔 주변 여건이 받쳐주지 않았다.

“답답했죠. 온전히 매달려도 서비스를 키우기가 녹록찮은데, 제가 제대로 영업이나 마케팅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주변에 열심히 홍보하고 서비스 방향을 고민하는 건 지금 형편에서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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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철 씨에게선 풋풋한 벤처 냄새가 난다. 아직 한창 젊은 나이. 허나 지나온 삶에는 녹록치 않은 연륜이 쌓여 있다.

양 씨가 처음 창업을 한 건 고교 1학년이던 2002년. 친구들이 대학만 바라보고 내달릴 때 그는 이미 창업에서 미래를 더듬더듬 찾고 있었다.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만진 컴퓨터는 평생 갈 길을 결정하게 해준 동반자였다. 초등학교 3학년때 베이직을 만졌고, 4학년 무렵엔 PC통신을 만나 사설 BBS 운영자가 됐다. 5학년부터는 리눅스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인터넷 세상에 빠졌다.

한창 컴퓨터에 꿈을 심던 중학교 1학년 무렵,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졌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당장 먹고사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닥쳤다. 컴퓨터에 미래를 싣기로 결심했다. 허나 중학생이 창업을 결행하기란 녹록치 않은 현실. 우여곡절끝에 창업 지원을 약속받고 경기도 평택소재 청담정보통신고교에 진학했다. 학교 안에 컴퓨터실을 겸한 사무실을 하나 얻고 친구들을 모아 첫 회사를 설립했다.

10대들이 모여 만든 회사는 그 자체로도 흥밋거리였다. 기술력이 뒷받침되니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갖고 방송 전파도 적잖이 타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거기까지였다.

“그땐 물정을 잘 몰랐던 거죠. 유명세를 타니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회사를 거저 먹으려 계획적으로 접근한 동료들도 적잖았고요. 끝까지 회사를 지키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첫 회사를 시작으로 두 번의 창업에서 쓴잔을 마셨다. 우여곡절끝에 병역특례를 시작하기 전인 2007년, 재미삶연구소를 창업하고 온오프믹스에 안식처를 마련했다. 상근 직원은 양준철 씨의 친구인 이상규 부사장, 달랑 1명. 나머지는 시간제 근무를 맡은 지인들이 도왔다. 그나마도 처음 1년여 동안은 수익이 전혀 없어 쌓아둔 곡식만 축냈다. 곳간은 날로 비어갔지만, 그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재물은 자연히 따라오리라고만 생각했다.

“안일했던 거죠. 회사에 위기가 오기 전까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으니까요. 통장이 거덜나고 빚이 늘자 아득해지더군요. 올해들어 벤처캐피털 관계자들과 만남을 갖고 자문을 받으면서 제가 참 순진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도 비즈니스 모델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받아들이다니.”고민 끝에 부분 유료화 모델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두려웠다. 자칫하면 그나마 유지되던 이용자들마저 등을 돌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용자와 온오프믹스 둘 다 실익이 가는 쪽으로 고민했죠. 그리고 선택한 게 결제 기능입니다. 모임을 하는 분들은 다른 데 신경쓸 것 없이 행사만 편하게 진행하고, 세금계산서 발행이나 결제, 사업증빙 등 절차는 온오프믹스가 대행해주는 겁니다. 그 대가로 전체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고요.”

다행히 결제대행 서비스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직원들 끼니도 해결할 수준까진 이르렀다. 아직도 배불리 먹진 못하지만.

“고민을 거듭하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우리가 생각도 못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객들이 먼저 알려주시거든요. 메인화면에 광고를 게재하거나 전용 스킨, 전용 도메인을 유료로 제공하는 모델 등이 모두 온오프믹스를 사용해본 분들이 제안하셔서 만들게 된 기능이니까요.”

시기도 잘 맞아떨어졌다. 양준철 씨는 내년 1월, 3년여에 걸친 병역특례 복무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다. “곧 회사를 다시금 정비하고 본격 영업과 투자 유치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하는 양 씨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저는 온오프믹스가 플랫폼이라 생각해요. 플랫폼이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결국 개방에 달렸다고 봅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온오프믹스를 사용하게 해야 겠다고 결론내렸죠. 11월 안에 온오프믹스 개설, 수정, 삭제, 참가신청, 덧글 달기 등 기본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API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XE(제로보드)용 플러그인도 함께 내놓을 생각이에요. 내년 1월 휴대폰 연동 기능까지 공개되면 굳이 온오프믹스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좀 더 쉽고 편리하게 온오프믹스 모임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