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제조 혁명 ‘3D 프린터’를 고찰함, 진지하게

2014.04.30

‘제3의 산업혁명.’

3D 프린터를 언급한 문구엔 온갖 수식어가 붙지만, 그 중 ‘혁명’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생산혁명, 제조혁명, 소비혁명…. ‘파이낸셜타임스’는 인터넷보다 더 큰 영향을 낳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정보화 사회 이후 ‘3D 프린팅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기도 했다. 거의 매일 쏟아지는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3D 프린팅이 창출해 낼 새로운 일자리나 시장 규모는 크다 못해 어마어마하기까지 하다. 쾌속·신속 제조(Rapid Prototyping)의 개선 아이디어로 시작된 혁신적인 제조 기술은 지금 시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기세다.

Makerbotdml 보급형 3D printer

각국 정부들의 움직임들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2013년 3천만달러 규모의 3D 프린팅 특화기관 설립 계획을 공개했다. 이에 뒤질세라 박근혜 정부도 지난 4월23일 ‘3D 프린팅 산업 발전전략’ 내놓고 본격적인 지원 사업에 나서고 있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 정부도 3D 프린터의 잠재력을 포착하고 베이징에 기술산업연맹을 건립하는 등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민간의 영역을 넘어 정부가 직접 개입해 육성하는 기술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은 3D 프린터가 가져올 미래와 잠재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3D 프린터가 어떤 기술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당장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엔지니어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응용 사례들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어렵고 낯선 기술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기실, 온갖 장밋빛 전망만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그것이 가져올 불안한 내일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란 시민들 입장에선 쉽지 않다. 이미 학계를 중심으로 저임금 제조 노동이 3D 프린터로 대체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량 실업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아직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이번 ‘블로터닷넷’ 기획에서는 3D 프린터의 기술적 잠재력과 사회적 영향,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불안한 미래를 깊숙이 다뤄볼 예정이다.

‘시제품 빨리 만들고파’ 아이디어에서 탄생

3D 프린터의 아이디어는 작은 불편함에서 시작됐다. 30여년 전인 1983년, 44세의 한 디자인 엔지니어는 ‘어떻게 하면 빨리 시제품(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있었다. 캐드(CAD)로 설계한 상품을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저렴한 비용으로 완성할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해왔지만 좀체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원료 물질(photopolymers)을 변형해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데 보통 6~8주가 소요됐던 터다. 전통적인 제조 방식으로 깎고 다듬어 모델링하는 절삭 공정에 의존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이 공정을 최소화하는 것은 이 중년 디자인 엔지니어에게 묵은 과제였다. 몇 달을 파고든 끝에 기존에 소개된 기술들을 조합, 자외선을 활용해 더 빨리 더 저렴하게 제품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기에 이른다.

44세의 중년 엔지니어가 바로 3D 프린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3D 시스템즈의 공동창업자 찰스 헐이다. 그는 이 제조 방법을 발명하자마자 아내에게 가장 먼저 보여줬다. 아내는 “그것보단 나은 것 같은데”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나 보이긴 했지만, 그 의미를 짚는 건 당시로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그의 아내가 3D 프린터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흥분하고 있다고 했다.

헐은 자신의 방식을 ‘스테레오리소그라피'(Streolithography, SLA)라고 불렀다. 3D 프린터라는 용어로 지칭된 시점은 한참 뒤의 일이다. 얼마 뒤 찰스 헐은 회사를 그만두고 3D시스템즈라는 회사를 더그 네커스와 함께 창업한다. 자신이 개발한 SLA 기술이 1986년 특허에 등록되자 본격적으로 상품화를 꾀한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SLA-250’이라는 상업용 장비를 출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3D 프린터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찰스 헐이 3D 프린터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족보상 직계 시조라고 말하긴 어렵다. 3D 프린팅 기술은 이미 개발된 여러 기술의 총합적 성격을 띠고 있기에 그렇다. CAD가 없었다면, 히데오 코다마의 신속 조형 시스템 보고서가 없었다면, 3D 코퍼레이션의 광경화 방식의 시스템이 없었다면 3D 프린터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987년 3D시스템즈가 3D 프린터 상용 제품을 첫 출시하면서 3D 프린터 시장은 본격적으로 무한 가능성의 미래 단계로 진입할 기회를 맞게 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그리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특허가 3D 프린터 시장 활성화와 대중화의 발목을 잡는 꼴이었다. 3D시스템즈의 특허는 FDM, SLS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3D 프린팅 기술을 낳았고, 스트라타시스와 같은 경쟁 기업의 출현을 촉진했다.

요즘처럼 3D 프린터가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특허의 만료 그리고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관련이 깊다. 2005년 렙랩이 오픈소스 기반의 3D 프린터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대중화의 변곡점을 마련했고, 스트라타시스가 주도해왔던 FDM 방식이 2012년 6월, 20년 특허가 풀리면서 저가 3D 프린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3D시스템즈가 보유한 일부 기술도 특허가 만료돼 3D 프린터 보급의 새 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랫동안 개발돼 왔던 기술이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이런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피자부터 집까지, 실시간 ‘출력’한다

분야 주요 개발 및 연구 사례
자동차

MID 크루즈 콘트롤 스위치 제작, 대시보드, 바디패널

항공 무인항공기
국방 전시, 평시 수리부속 제작, 3D 프린팅 깁스
캐릭터 에니메이션 캐릭터 제작
의료 맞춤형 보청기(CAMISHA), 치아(임플란트 등), 의족, 인공 장기
건축 소규모 주택, 버스 정류장
기타 도자기 생산, 보드게임 제작, 음악 관련 악기 제작

3D 프린터의 응용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넓다. IT 전문 인터넷 뉴스 매체인 ‘리드라이트‘는  3D 프린터로 제조할 수 있는 10가지 상품을 열거하면서 피자나 초콜릿 같은 식품부터 성인용품과 인공 장기, 3D 프린터 그 자체까지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제작된 사례도 풍부하다. 올리브 버드는 이어폰 선을 끼울 수 있는 단추를 3D 프린터로 제작했고, 일본 시부야의 한 팹카페는 발렌타인 기념으로 맞춤형 초콜릿을 제작해주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자기 얼굴을 스캐닝해서 명함을 만든 사례도 있다. 디즈니 연구소는 테디베어를 집에서 제작할 수 있는 3D 프린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3D 프린터를 가장 먼저 상업화한 분야는 스마트폰 케이스와 액세서리, 피규어 인형 제작이다.

활용 분야는 소비재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 분야에서는 빌딩 건축에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남가주대 비터비공대는 3D 프린팅 기술에 로봇 기술을 접목, 골조나 구조물을 완성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가트너는 “3D 프린팅이 소비재 및 제조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건설, 교육, 에너지, 정부, 의약품, 군, 소비, 통신, 교통 및 유틸리티 산업에는 중간 정도의 영향을, 은행 및 금융 보험 산업에는 미미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3D 프린터라는 하드웨어의 진보뿐 아니라 디자인 도면의 공유 방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인터넷에는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는 여러 사물 및 상품들의 도면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웹사이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씽이버스’가 대표 사례다. 가정 내 소품이나 액세서리 등의 도면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로 등록돼 있어 3D 프린터를 소유한 이용자라면 누구나 내려받아 직접 제작해볼 수 있다. 구글이 정보를 검색하는 엔진이었고 링크드인이 사람을 찾는 검색엔진이었다면, 씽이버스는 인쇄 가능한 사물을 찾을 수 있는 검색 서비스인 셈이다. 이외에도 포노코, 셰이프웨이 등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youtube id=”OYqBxEAtXZA” align=”center”]

‘하루 만에 집 10채를 짓는 거대한 중국 3D 프린터’ 동영상 보기 

저임금 노동자 일자리 위협하나

인터넷과 블로그, SNS가 생산자(Producer)와 이용자(User) 조합을 의미하는 ‘프로듀저'(Produser)의 탄생을 알렸다면, 3D 프린터는 소비자와 제조업자의 결합을 의미하는 ‘콘슈팩처러(Consufacturer)’의 등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데스크톱 공장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제품의 소비자로만 머물던 시민이 직접 가내 제조에 참여함으로써 제조 산업의 민주화를 불러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에드 포레스트와 용 카오는 3D 프린팅 기술이 미칠 영향을 4가지로 정리했다. 요컨대 ▲모든 것을 직조할 수 있다 ▲노동, 조립, 유통 비용의 절감할 수 있다 ▲네트워크화 되면서, 크라우드소싱과 협업 가능해진다 ▲지리 경제학적에 영향을 미친다 등이다. 특히 네 번째 변화와 관련해 세계의 제조 공장인 중국의 위상이 일부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디자인 도면만 존재하면 세계 어디서든 제조할 수 있기에 저임금에 기반한 중국 노동력에 의존할 이유가 약화된다는 의미이다.

반면, 3D 프린팅 기술을 둘러싼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노동과 실업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감춰져 있다. 찬사와 열광을 내뿜는 사이 나의 직업이, 나의 직장이, 나의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기술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이 복잡한 이유로 은폐되면서 기술적 실업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의 장에서 쏙 빠져버리곤 한다.

미국 비즈니스 전문 온라인 잡지 ‘아비트리지 매거진은 “3D 프리팅 공정은 의심의 여지없이 저임금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진단했다. 고임금 노동이 담당해왔던 숙련 노동의 영역도 복잡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특히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노동조합의 저항이 시작됐다고 언급했다. 기존까지 3D 프린팅 기술은 자동차 프로토타입 생산에 적용돼 왔는데, 본격적으로 공장 내로 침투할 조짐을 보이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자동차 제조회사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단순 노동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은 명확해 보인다.

비단 자동차 산업이라는 제조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생산과 소매 판매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상품의 현장 판매를 담당하는 소매 부분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자영업 기반의 인형 가게, 소품 가게들이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도 3D 프린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성권 서일대 교수는 ‘3D 프린팅 기술과 건축적 활용’에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3D 프린팅과 로봇 기술이 결합되면 근 미래에 소규모의 주택을 짓거나 인테리어 벽체나 비정형 패널을 만드는 일은 분명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심에 흔한 버스 정류소 같은 구조물은 아마도 차량에 장착된 건축용 3D 프린터들이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테리어나 소규모 구조물의 건설로 끼니를 연명해왔던 일부 건설직 노동자들은 3D 프린터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에드 포레스트와 용 카오 교수도 이러한 우려를 전했다. 이들은 3D 프린팅 기술로 수입이 줄어들면서, 수출 경제 부문의 사회정치적 불안이 유발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노동에 대한 필요가 감소하고 실업률이 증대되면서 불안정성 수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술 혁신의 그늘도 경계해야

1880년대 중반, 미국 발명가 사이러스 맥코믹은 수확기계 제조 공장에 공기압축식 주형기계를 설치했다. 당시 그는 철강 주형노동자들의 전국노동조합과 마찰을 빚고 있었는데, 맥코믹은 공기압축식 주형기계를 통해 노동조합 지부를 조직한 기술자들을 솎아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결국 도입 3년 뒤 노조는 모두 해체됐고, 주형기계 사용도 중단됐다. 새로운 제조 기술이 만들어낸 우울한 단면 중 한 사례이다.(랭던 위너, 2010)

3D 프린팅 기술이 맥코믹의 주형기계와 동일한 사회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성급하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늘상 그랬던 것처럼, 혁신과 변화의 폭풍 속에서 기술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약자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공명되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수많은 보고서와 논문 속에서 그들을 걱정하는 문장을 만나지 못한 게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youtube id=”AKTSdW7-H3Q” align=”center”]

메이커봇 ‘리플리케이터2’ 동작 동영상 보기

참고 자료

  • 남정범, 김철, 유기용. 3D 프린팅 기술의 국방 군수분야 적용 방안.
  • 박형욱. 3D Printing 기술 현황 및 응용 개요.
  • 랭던 위너.(2010). 길을 묻는 테크놀로지.
  • 최성권. 3D 프린팅 기술과 건축적 활용.
  • 한국디자인진흥원. 3D 프린팅은 어떻게 소비문화를 바꾸는가.
  • CNN.(2014.2.14.). The night I invented 3D Printing.
  • Ed Forrest & Yong Cao.(2013). Digital Additive Manufacturing : A Paradigm Shift in the Production Process and Its Socio-economic Impacts.
  • Lancaster University. Freight Milies : The Impacts of 3D Printing on Transport and Society.

dangun76@gmail.com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mediati.kr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미디어의 수익모델 비교 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관련 분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저서로 '트위터 140자의 매직', '혁신 저널리즘'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mediagotosa/)에서 더 많은 얘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