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스마트폰 가격 매기기, 참 어려워요”

2014.05.09

5월 8일, 팬택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현장엔 묘한 공기가 흘렀습니다. 가격 결정 때문입니다. 새 스마트폰의 가치와 시장 분위기가 팬택에게는 판단을 어렵게 했나 봅니다.

으레 신제품이 나오면 기자들은 판매량 목표치와 출고가를 묻습니다. 가격과 판매량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동안은 비슷한 질문에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오긴 했습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90만원은 넘되, 그렇다고 100만원을 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 정도…”라고 이야기하면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말기 출고가 자체가 제조사가 전적으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애매한 부분이 늘 있긴 했던 게 행사장의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vega_iron_11

그런데 팬택은 ‘베가 아이언2’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은 듯했습니다. 제품 가격을 정하는 것,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특히나 판매량 자체가 판매점 리베이트와 보조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스마트폰 시장이기에 고민은 더 클 겁니다.

결국 팬택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박창진 부사장은 가격에 대한 힌트도 꺼내놓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가격을 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라고 오히려 기자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값을 정말 못 정한 게 분명합니다. 고민이 크긴 큰가 봅니다.

적정한 스마트폰 가격은 얼마일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스마트폰에도 저마다 특징이 있고, 원가가 다르고, 가치가 다릅니다. 그에 따라서 같은 사양의 제품이라도 가격이 다른 게 정상일 겁니다.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멋지고 독특한 제품이 나오고, 별 기능이 필요 없는 소비자들은 싼 제품을 살 수 있는 시장의 다양성을 가격과 연결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하철 혹은 사무실에서 주변의 스마트폰을 둘러보면 몇 가지나 보이시나요? 일단 가짓수가 별로 안 됩니다. 가격은요? 흔히 기준가가 되는 ‘출고가’도 모두 비슷할 겁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사실 그 동안은 대부분의 제품을 99만원 언저리에 놓고 판매량에 따라 통신사들이 제각각 보조금을 다르게 얹어 왔습니다. 통신사의 보조금,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이 얼마나 많이 매장으로 흘러들어가느냐가 판매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복잡한 리베이트 구조에 뛰어들지 않았던 애플이 판매점에서 홀대받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여기에 단통법이 통과되면서 가격을 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삼성이나 애플처럼 세계적으로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특정 가격을 고집할 수 있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국내 비중이 큰 팬택의 경우 국내 시장 상황에 예민할 겁니다. 마냥 값을 내리기도, 그렇다고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국내에 제품을 판매할 때 해야 할 고민입니다.

vega_iron2_07

그 동안의 스마트폰 가격은 마치 조립PC 시장처럼 CPU, 메모리, 디스플레이, 저장공간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가격대에 잡혔고, 여기에서 제품 가치보다 특정 브랜드의 선호도 그리고 사후 서비스에 대한 우려가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이 됐던 것이 일반적인 소비 문화였습니다.

그렇게 비슷한 가격대에서 삼성전자는 엄청난 점유율을 차지했고, 경쟁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력이 요구됐습니다. “값이라도 싸야 하지 않겠어?”라는 것이었지요. 소비자들도 이른바 ‘버스폰’을 기다렸고,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제품들의 상당수는 결국 다음 제품과 함께 보조금이 얹혀 팔렸던 게 현실입니다.

반면 성능이나 크기처럼 부품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들라는 요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습니다. 간혹 잘 만든 제품들도 나왔지만 결국 제품 그 자체보다 가격만 보고 망설여지는 것이 소비자들의 심리였고, 시장의 분위기도 누가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꼭 팬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산 제품들, 예컨대 같은 날 제품을 발표한 소니도 가격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게다가 단통법이 통과되면서 제조사로서는 단말기에 제 가치와 그에 따르는 값을 인정받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 돼 버렸습니다. 팬택의 고민도 그겁니다. 차별점을 ‘재료’로 잡았는데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 내릴 수도, 그렇다고 욕심껏 다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지요.

vega_iron2_09

세상의 모든 제품 가격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제품에 대해 어떤 가치가 부여된다면 그에 대한 값을 매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런 제품을 또 만들 수 있으니까요. 별로인데 비싸기만 하다? 그럼 안 사면 되지요. 그러면 그 특징은 사라지는 겁니다. 그렇게 시장이 정리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브랜드 하나로 모든 가치를 인정받고, 또 그에 따르는 기대를 만족시키는 기업의 노력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것만큼 다른 요소들도 시장에 파고들 수 있는 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통신사들의 보조금이 법으로 제한되는 만큼 팬택도 적절한 가격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어야겠지요. 시장도 그 다양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한 가지 제품만 쓰는 건 재미 없지 않나요? 제품이야 싸면 좋겠지만 내가 지불하는 비용에 맞는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가치를 사는 거죠. 문지욱 팬택 중앙연구소장은 행사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격과 물량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많은 IT 기기들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메탈 재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가도 높고 수급에 대한 위험 부담이 크지만 그로 인해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제품만 갖고 판매가를 매기기가 어렵습니다. 시장 환경과 브랜드를 함께 봐서 가격을 매겨야 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안타깝습니다. 제품 그 자체만 본다면 가치가 충분하다고 자신하는데 현재 상황은 가격을 내리라는 시장 분위기 때문에라도 가격을 매기기가 어렵습니다. 제품 그 자체를 보고 판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