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워즈니악, “망 위에서 돈으로 차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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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급행 인터넷을 허용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통신사들이 인터넷 기업에 대해 비용을 더 지불하면 서비스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할 여지를 둔 것이다.

이는 곧 망중립성 논란으로 번졌다.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제공돼야 하고 그 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같아야 한다는 것이 망중립성인데, FCC가 이 정책을 꺼내놓으면서 논란이 번지고 있다. 특정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망 제공업체, 그러니까 통신사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속도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금력이 있는 콘텐츠 업체들이 콘텐츠 그 자체 외에 통신 속도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카카오톡이나 라인,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등 서비스 자체는 거의 비슷하게 평준화된 통신 서비스 사이에서 누군가가 전송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아마 자금력이 많은 누군가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이미 수익을 내고 있는 대규모 사업자들은 더 유리할테고,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별도의 망 이용료를 지불하지 못하면 경쟁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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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워즈니악도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장문의 공개 서한을 통해 FCC의 정책에 반박했다. 워즈니악이 강조하는 것 역시 망 위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 컴퓨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 이용자들이 비트를 쓸 때마다 요금을 추가로 청구했다면, 개인용 컴퓨터는 10년 이상 늦어졌을 것이다. 애플컴퓨터에 쓰인 6502마이크로프로세서의 비트를 이용할 때마다 추가로 비용을 내야 했다면 나 스스로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각 인터넷 기반 사업자들은 통신비용을 내고 있다. 그런데 그 위에서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도록 차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 안에서 비트를 쓸 때마다 비용을 추가로 내도록 한다거나, 고속도로 통행료를 냈는데 더 빨리 달리려면 또 돈을 더 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워즈니악은 이어 “정부의 주요 목적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데 있는데, 이번 FCC의 결정은 정부가 금전적 권력을 갖고 있는 자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 선을 긋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FCC 결정에 반박하는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뿐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더 빠른 회선을 쓸 수 있는 거대 기업들, 그러니까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미국 IT기업들도 일제히 반박하고 나섰다. 중소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2012년, 카카오톡이 음성 통화 서비스인 보이스톡을 내놓았을 때 통신사들이 즉각 반발하며 특정 서비스에 대해 사업자들이 추가 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스트리밍의 트래픽이 많다는 이유로 특정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당시 한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정부에서 허가만 해준다면 스스로 인터넷망을 깔아서 서비스를 하고 싶을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흘러갔다.

비용에 따라 속도 차이를 둔다면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화질이 조정될 수 있고, 인터넷전화는 연결 안정성을 비롯한 통화 품질에 영향을 받게 된다. 특정 서비스의 결정권을 통신사가 가져갈 수 있게 되고, 그게 또 다시 경제 논리로 풀이된다면 단순히 경제적 부담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들의 등장을 차단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현실적으로 미국과 같은 논란이 생기기는 어렵다. 지난해 미래부가 ‘트래픽 관리 기준’을 선정하면서 통신사들이 망 품질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에 대해 막는 것을 원칙으로 정한 바 있다. 특정 트래픽이 통신망 품질에 큰 영향을 끼쳐 다수의 인터넷 이용에 불편을 끼친다는 것을 입증하면 정부가 그 트래픽에 대해 제한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상 망중립성에 가까운 적극적인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물론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국내 인터넷에 대해서는 정부, 기업, 통신사 간의 기본적인 약속의 기준이 서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국가 기간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해마다 전세계 어디선가는 인터넷 망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누군가는 서비스를 막고, 누군가는 더 큰 비용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만 더 빠르고, 누구에게만 사업의 기회가 열리는 흐름에 대한 우려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초기 인터넷은 우연하게도 자유로웠고 개방돼 있었다”고 편지에 적었다. 인터넷의 성장이 국가와 시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규제 하나하나가 점점 인터넷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는 걱정이다. 어쩌면 인터넷의 자유와 개방은 ‘우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