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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을 ‘모바일 수렁’에서 건져내려면?

2014.05.23

PC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은 잊을만 하면 나오곤 한다. 이는 인텔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모바일 시장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 러브콜을 보내지만 제조사도, 시장도 영 시큰둥하다. 인텔이 언제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 도시바가 구글의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의 파트너가 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정도지만 인텔에 대한 소식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인텔은 왜 모바일에서 기를 펴지 못할까? 왜 ARM 프로세서를 만들지 않을까?

역설적이게도 인텔을 괴롭히는 ARM의 성장, 그 중심에는 인텔이 있었다. ARM은 프로세서의 아키텍처를 만드는 회사다. 그리고 그 라이선스를 팔아서 수익을 낸다. ARM에는 공장도, 손에 잡히는 제품도 없다. 누군가 이 설계를 이용해 칩을 만들어야 완제품에 들어갈 수 있다. 초기 그 역할을 해주었던 게 바로 인텔이다. 인텔은 불과 2006년까지 ‘스트롱 암(strong ARM)’이라는 브랜드의 ARM 프로세서를 찍어 왔다. 그 스트롱 암의 뿌리는 DEC에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PDA를 비롯해 모바일 기기에 고성능 프로세서가 쓰이던 시기, 인텔의 스트롱암 인기는 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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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텔의 ARM 프로세서 사업은 ‘엑스스케일'(Xscale)로 브랜드를 바꾸면서 꽤 잘 되는 듯했지만 2006년 마벨에 ARM 프로세서 관련 사업을 매각했다. x86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노트북 가격이 내려가면서 본격적으로 1인 1PC 시대가 열렸고, 모바일 컴퓨팅이라는 개념도 곧 노트북으로 연결되던 시기였다. 인텔은 자고 나면 더 빠른 프로세서를 내놓았고, AMD와 경쟁에 숨이 찰 지경이었다. ARM와 x86의 성능 격차는 너무나 컸고 x86과 윈도우가 세상을 집어삼켰던 시기였다. 설마 ARM이 모바일 컴퓨팅의 중심에 서리라고는 내다보기 어려웠던 게 바로 그 2000년대 중반이었다.

인텔은 이후 2008년 ‘아톰’ 프로세서로 모바일용 저전력 칩 시장에 되돌아왔다. 첫 제품인 넷북은 인텔도 놀랄 정도로 많이 팔렸다. x86 기반의 아톰은 윈도우를 돌리기에 느렸을 뿐 그 자체로 성능이 부족한 칩은 아니었다. 인텔도 아톰을 세컨드PC가 아니라 교육용 혹은 신흥시장에 공급할 저가 프로세서로 자리매김했는데,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가 오면서 시장이 저가 제품에 눈을 돌렸다.

돌아보면 그게 인텔에 부메랑이 됐다. 소비자들이 ‘아톰’이라고 하면 어떤 인상을 받을까? 아무래도 성능이 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 사이에 ARM 프로세서는 성능을 꾸준히 끌어올려 왔다. 그 중심에는 인텔이 빠진 자리를 채운 삼성전자 그리고 모뎀과 함께 ARM 아키텍처를 발전시켜 온 퀄컴이 있었다. 그 좋아진 성능을 활용한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인 아이폰, 그리고 안드로이드폰이 있었다. 그게 불과 2009년, 2010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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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PC의 절대 강자 구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PC는 정체를 넘어 2013년에는 9.8%가 줄었다. 2014년 전망도 썩 밝지는 않다. 저소득 국가들도 PC보다 태블릿이나 모바일기기를 사고 있다. 이는 곧 인텔의 위기론으로 이어진다.

인텔은 과연 모바일 시장에 적응하지 못할까? 지금까지는 분명 그렇다. 성능이 안 좋아서일까? 인텔의 아톰 프로세서와 ARM 기반 프로세서는 성능이나 전력소비량이 거의 엇비슷하다. ARM 프로세서의 성능은 높아졌고, 아톰 프로세서의 전력 소비량은 줄었다. 결코 성능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부분, 그리고 마케팅의 약점을 꼽을 수 있다.

인텔이라고 하면 x86의 대표주자임은 분명하지만, 굳이 모바일까지 x86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이 모두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된다. x86용 안드로이드가 개발되고 자바 위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호환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톰 태블릿에서 구동되지 않는 앱은 꽤 많다. 제조사들도 ARM 위주의 라인업에서 인텔용을 따로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구글도 ‘넥서스’ 태블릿에 아톰 프로세서를 고민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제품이 선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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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인텔이 ARM을 찍으면 어떨까? 인텔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라인을 갖고 있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더 좋은 성능의 칩을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인텔이 모바일 시장에 자연스럽게 뛰어드는 방법이다. ‘ARM-아톰-펜티엄-코어-제온’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갖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AMD가 그런 결정을 했다. ARM 기반 서버용 프로세서 개발에 이어 x86과 ARM의 이종컴퓨팅 프로세서를 내놓았다. ARM 시장에 늦게 뛰어든 AMD지만 x86과 ARM의 강점을 모두 끌어안은 칩을 만든 것은 AMD만 할 수 있는 강점이다. 시장의 판단이 뒤따라야겠지만 AMD는 거꾸로 서버-태블릿에 이어 장기적으로 스마트폰까지 ARM 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AMD도 되돌아보면 멀리 돌아왔다. ‘레이디언’을 만들던 ATI는 ‘이미지온’이라는 모바일 그래픽 프로세서 사업을 갖고 있었다. 이 칩은 모바일 게임기, 휴대폰, TV 등에 쓰이는 게임, 영상 디코딩 칩이었다. 실제 제품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컴퓨텍스를 비롯한 전시회에서 늘 주목받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ATI를 인수한 AMD는 곧 이미지온 비즈니스를 팔았다. AMD 역시 x86이 시장의 중심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AMD의 경쟁 상대는 인텔이 아니었다.

ARM의 진출이 어렵다면 또 다른 기회는 있다. 바로 ‘아라’ 프로젝트다. 아라는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다. 디스플레이부터 카메라, 메모리, NFC 같은 모든 부품을 이용자가 원하는대로 조립하는 제품이다. 프로세서도 골라서 꽂을 수 있다. 이는 인텔이 가장 자신 있는 조립PC 시장의 구도와 매우 닮아 있다. 제조사가 선택해주지 않아 뛰어들지 못하던 완제품 시장과 달리, 소비자들의 선택으로 제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텔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아라 프로텍트에서 인텔이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준비에 머뭇거릴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인텔은 늘 해오던 것처럼 ‘더 빠른 칩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올해 선보일 실버몬트 아키텍처의 모바일 프로세서는 인텔이 작심하고 만드는 칩이다. 하지만 그게 곧 판매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톰 프로세서의 문제는 성능이나 전력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미지 개선, 그리고 영업력에서 찾아야 한다. 인텔은 전통적으로 ‘갑’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 주도권이 제조사로 넘어간 요즘의 상황이 인텔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미지가 바뀌지 않느다면 아톰이라는 이름에 고집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ARM에 대한 고집을 부릴 이유도 없다. 한때 ‘마케팅 기업’이라고까지 불렸던 인텔의 저력이 아쉬운 요즘이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