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달러 PC ‘키팟’과 모토로라 ‘아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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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제 언니가 노트북을 구입한 뒤로 저희집에 드디어 ‘퍼스널 컴퓨터’ 시대가 열렸습니다. 집에 첫 컴퓨터를 들여놓은 뒤로 꼭 16년 만입니다. 하지만 컴퓨터 한 대를 여럿이 쓰는 집이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먼저 쓰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비밀폴더를 숨기느라 애를 먹기도 하지요. 사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입니다. 이 세상에 50억명이 넘는 사람이 여전히 개인용 컴퓨터 없이 살고 있으니까요.

컴퓨터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컴퓨터가 필요해도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겁니다. 케냐에서도 그렇습니다. 케냐 사람들은 교육과 보건,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IT 기술을 배워서 나라 경제도 살리고 싶어합니다. 기술을 기회로 삼고 싶은 거죠.

이스라엘 두 청년, 니산 바하르와 프란체스코 임베시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7달러 짜리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키팟‘(Keepod)입니다.

keepod4

▲키팟은 히브리어로 ‘고슴도치’라는 뜻입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사생활을 지켜준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Keep’ + ‘od’(=히브리어로 ‘모든 것’ 이라는 뜻)

아니 USB 메모리를 갖다놓고 뭔 딴소리냐고요? 얼핏보면 USB 메모리처럼 보이지만, 개인용 컴퓨터 맞습니다. OS만 쏙 빼 담아 이렇게 작은 겁니다. 이걸 어떤 컴퓨터에든 갖다 꽂으면 안드로이드4.4로 작동하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키팟이 있으면 하드디스크가 고장나거나 오래된 고물 컴퓨터도 다시 쓸 수 있습니다. 키팟을 꽂을 때마다 컴퓨터에 새 심장을 이식하는 셈이니까요. 키팟 OS에는 크롬과 드롭박스, 리브레오피스, 페이스북 등 몇 가지 응용프로그램이 기본으로 설치돼 있어서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키팟팀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인디고고에서 4만달러 이상을 모았습니다. 우리돈으로 4500만원 정도입니다. 이 돈으로 8GB짜리 키팟 1500개를 만들고, 키팟을 꽂아 쓸 컴퓨터 50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리브인슬럼이라는 지역단체를 통해 케냐 나이로비 마따레 마을에 있는 와이낫아카데미에 전달했습니다. 하루평균 소득이 2달러 밖에 안 되는 동네입니다.

keepod 7달러 PC

▲개인용 컴퓨터 키팟을 받은 아이들. 표정이 밝습니다. 녀석들 차례를 잘 지켜서 사이좋게 써야 할 텐데요.
마따레 마을 아이들에게 키팟을 전달한 후 발표한 감사 영상을 보려면 여기로.

키팟을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제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토로라가 만든 스마트폰 ‘아트릭스’입니다. 2011년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선정됐고, 한때 ‘갤럭시S2’와 당당히 견주기도 했던 모델입니다. 짱짱한 하드웨어에 확장성까지 갖췄더랬죠. 도킹스테이션으로 TV와 연결해 스마트폰 속 콘텐츠를 재생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문서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랩톱독에 꽂으면 전용 OS를 띄우거나 데스크톱 가상화를 통해 일반 노트북 처럼 쓸 수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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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터TV] 아트릭스 멀티미디어 독 리뷰 보기(2011.3.7.)

키팟과 아트릭스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둘 다 PC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두 제품 모두 가볍게 들고다니다가 어딘가에 꽂으면 PC로 변신시킬 수 있죠. 운영체제를 리눅스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차이점을 들자면 키팟은 OS와 저장장치 역할만 하는데 비해 아트릭스는 전화와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이고 CPU와 메모리까지 갖췄다는 겁니다.

3년 전, 아트릭스의 시도는 참신했지만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우선 랩톱독이 너무 비싸서 문제였고 스마트폰 시장이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에 그 짱짱하던 하드웨어도 금세 구닥다리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휴대용 OS 키팟도 아주 훌륭하지만 2%가 부족해 보입니다. 키팟을 꽂아 쓸 본체가 없으면 인터넷을 할 수도 없고 어떤 프로그램도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내 컴퓨터 한번 쓰겠다고 길게 줄 서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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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과 확장포트, 키보드와 터치패드, 스피커와 배터리만 갖춘 아트릭스 랩톱독.
속 빈 컴퓨터가 50만원이나 했다.

나란히 두고 보니 키팟과 아트릭스는 비슷한 기술과 아이디어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두 제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녀석들 언저리 어딘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키팟의 심플함과 저렴한 가격, 선한 의도에 아트릭스의 확장성을 더해보는 거죠.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사는게 쉽지 않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아주 유익한 기술로 말입니다. 휴~ 이 녀석들을 잘 섞어서 새로운 휴대용 기기를 만들어주실 분, 어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