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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짜리 폰 수입에 인증 비용 5천만원?

2014.05.27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저가폰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100달러짜리 저가폰은 물론이고 ‘갤럭시S5’와 같은 프로세서와 해상도를 내는 제품이 300달러 정도에 팔리는 게 중국 시장이다. 이런 제품들, 국내에 유통할 수 없을까?

일단 중국산 스마트폰이 국내에 유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파수에 따라 LTE가 안 될 수는 있지만, WCDMA 기반의 3G는 상관 없다. LTE도 제품에 따라서 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노트북도 들어오고 태블릿도 들어오는데 스마트폰이 없는 이유가 의아하다.

저가 제품 수입? 인증이 걸림돌

oneplus

중국에서 제품을 수입해 유통하는 용산의 중소 유통업체들을 찾아가 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입이 어렵고, 수익을 남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국가통합인증마크‘(이하 KC인증)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유통사들이 많았다.

“미국이나 중국보다 왜 한국에서만 제품이 유난히 비싸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유통 업체들은 생각만큼 그리 많은 수익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입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용산 기반의 유통 시장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긴 하지만, 이른바 ‘돈 돌리기’에 유리할 수도 있는 휴대폰 시장에는 감히 뛰어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수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류와 통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이윤이 포함되긴 하지만, 큰 영향 중 하나가 인증이다. 요 몇년 새 이 인증 절차가 KC인증으로 합쳐지면서 중소 유통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기와 주파수를 이용하는 모든 제품은 KC인증을 받아야 한다. 옛 전자파적합인증이다. 기업이 제조, 수입한 제품이 소비자에게 판매된 뒤 폭발, 감전, 주파수 오용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제품을 검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인증 자체가 수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전파를 쓰는 제품을 해외에서 가져와서 국내에서 쓰려면 개인조차도 인증을 받아야 했다. ‘아이폰’, ‘아이패드’가 대표 사례였다. 개인이 쓰더라도 몇백만원씩 되는 인증 절차를 밟고 통신사에 등록을 해야 비로소 아이폰을 국내 통신망에 물릴 수 있었고, 아이패드는 통관 자체가 거부당했다. 심지어 개개의 조립PC를 인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개인 용도나 연구용 제품에 대해서는 전자파적합인증을 면제해주기로 했고, 인증받은 개별 부품을 조립한 완제품의 경우 인증이 면제되도록 규제가 풀리긴 했지만 수입과 유통에 대한 규제는 더 심해졌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스마트폰은 KC인증의 꽃”

그럼 실제 인증에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간혹 제품이 수입돼 들어오고 있는 태블릿을 예로 들어보자. 태블릿은 일단 전자파 인증을 받아야 한다. 자율 안정 테스트도 필요하다. 배터리에 대해서는 별도 인증에 도면을 제공해야 한다. 무선랜과 블루투스는 각각 주파수와 버전, 그러니까 무선랜을 예로 들면 802.11b/g/n/ac에 대해 각각 인증을 받아야 한다. 충전 어댑터를 제공하면 이 역시 도면과 공장 설계도가 인증에 필요하다. 이렇게 인증에 드는 비용이 보통 1500만원 정도다. 나중에 제조사가 나사 위치라도 하나 바꾸면 또 다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스마트폰은 여기에 WCDMA, LTE 등의 주파수 관련 테스트가 또 따라붙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수천만원대에 이른다. 전체 비용은 약 4천만~5천만원까지 든다는 설명이다. 유통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이 ‘KC인증의 꽃’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1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1천대 수입하면 약 1억원인데 인증 비용이 4천만~5천만원입니다. 수천대 팔 수 있다면 인증 비용이 저절로 녹아 들어가지만, 초기 물량도 버거운 상황에서는 인증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100달러짜리를 15만원에 팔 수는 없으니 수입 자체가 어려운 거죠.”

KC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국내에는 스마트폰 수입이 가로막혀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PC는 조금 나은 편이긴 하지만, 그 역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태블릿과 구성품이 비슷한 노트북도 인증 비용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노트북은 개별 모듈로 인증을 받은 부품들, 예를 들면 PCI 무선랜카드, 블루투스, 배터리, 어댑터 등에 대해서는 한 번만 받으면 그 부품을 쓴 제품도 그 항목에 대해서는 인증이 면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다. 하지만 메인보드에 딱 붙어 완제품으로밖에 판매할 수 없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은 부품 단위로 인증을 받을 수 없어 완제품 모델 단위로 인증받아야 한다. 그만큼 인증 비용도 올라간다. 중소 “수입업자들은 KC인증은 애초 복잡한 인증을 간소화하기 위해 통합된 인증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더 까다로워졌다”고 말한다. 한 노트북 수입 유통 업체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비용 부담은 2~3배 가량 늘었고, 자율 안정 테스트가 더해지면서 인증에 시간도 거의 2~3배 걸립니다. 예전에는 노트북을 하나 들여오면 1주일, 길어야 열흘이면 인증을 받고 바로 판매할 수 있었는데 KC인증 이후 4주에서 길게는 6주까지 걸립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적절한 판매 시기를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증은 필요하지만 너무 번거로워요”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판매 수량이 많은 제품들은 나은 편이지만, 저가 제품일수록 부담이 더 크다. 중소기업들이 저가에 들여와서 판매하던 무선 키보드·마우스 세트의 경우 최근 들어 씨가 말랐다고 한다.

“키보드 하나 인증받는 데 전자파와 자율안정 등으로 350만원 정도의 인증 비용이 듭니다. 마우스도 마찬가지로, 또 다시 350만원이 듭니다. 이 둘과 신호를 주고받는 수신기도 USB로 전원을 쓰고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다시 350만원이 듭니다.”

2만원 정도 하는 키보드·마우스 세트를 수입하는 데 인증 비용만 1천만원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해외의 큰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들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미국, 유럽, 일본을 비롯한 인증을 한번에 받기 때문에 국내에 그대로 수입만 하면 된다. 이 때문에 새 제품을 발굴하는 것보다 대기업의 특정 제품을 병행 수입하는 것이 더 쉽다. 인증 절차가 빠지기 때문이다.

이는 유통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클라우드나 호스팅을 위해 서버를 직접 조립해서 쓰는 기업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수십, 수백개 단위의 부품을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너무 많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불만이다.

PSU

(사진 : Flickr by Mat_the_W, CC BY-SA)

인증 자체가 문제일까? 업계 대부분의 반응은 인증은 꼭 필요하긴 하다는 입장이다. 한 블루투스 액세서리 업체 관계자 설명을 들어보자.

“전파와 배터리, 어댑터 등은 안정성에 대한 문제가 늘상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성능 검사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번거롭고, 작은 업체들엔 진입 장벽으로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장사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인증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 인증이 일정 수준 이상의 물량을 유통할 수 있어야 수입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만들었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인증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제품을 찍어낼 수 있지만, 소규모 기업들은 인증 설비가 있는 인증 업체를 찾아 다녀야 한다. 그나마도 적절한 인증 설비를 갖춘 곳이 많지 않아 인증 업체끼리 외주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인증이란 게 꼭 필요한 안전에 대한 보증이어야 할 텐데, 실제 업계에서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은 ‘자금력을 인증하는 형식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