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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길남 박사 “게임은 SW 산업의 핵심”

2014.05.27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대표가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 14’ 첫날 기조연설 무대에 올랐다. 김정주 대표가 밟은 무대는 원래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의 기조연설을 위해 예약된 자리였다. 김정주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전길남 박사를 소개했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 옛 은사를 모시는 학생의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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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NXC 대표

김정주 대표 “창업 부르는 열린 사회 되길”

“은사님을 직접 소개하고 싶어서 잠깐 올라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전 전길남 박사님의 연구실에서 참 많은 회사가 탄생했어요. 혹독하게 연구에 집중하는 연구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회사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신기합니다.”

전길남 박사는 1982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김정주 대표의 연구실 추억담은 그때로 돌아간 기억이다. 지금의 김정주 대표와 허진호 전 인터넷기업협회 회장,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등이 모두 전길남 박사의 제자였다.

“우리나라는 중간에 그만두거나 쉬거나 진로를 바꾸기 어려운 분위기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전길남 박사님의 연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중간에 그만둘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눈치나 앙금도 없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창업의 산실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조금 더 열린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실패는 곧 죽음이다. 진로 변경은 배신이고, 오로지 한 길만 강요한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적은 것도, 재기 가능성이 낮은 것도 모두 이 같은 사회 분위기 탓이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김정주 대표의 속내는 사실 실패와 재기와 재도전이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주 대표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전길남 박사가 게임을 가리켜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말이다. 전길남 박사가 한국에서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하고 30여년이 지났다. 이제 게임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아우르는 산업의 꽃이 됐다.

“전길남 박사를 소개합니다.”

김정주 대표의 소개 뒤에 전길남 박사가 무대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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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길남 박사(카이스트 명예교수)

“유일하게 국제 경쟁력 갖춘 SW 산업이 온라인게임”

“게임 산업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IT 산업 중에서 하드웨어 분야는 잘하고 있거든요. 삼성, LG가 만드는 스마트폰은 전세계 최고 수준까지 갔어요.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어떤가요? 비슷한 규모로 커야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텐데요. 국제적인 경쟁력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전길남 박사의 물음에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국내 하드웨어 산업은 전세계 최고수준까지 올라갔다. 사실이다. 이동통신네트워크도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파는 업체도 국내에 있다. 헌데, 소프트웨어분야는 어떤가. 해외 업체와 몇 세대 이상 뒤처진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가끔 외치는 이른바 ‘한국형’ 소프트웨어 개발론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수많은 소프트웨어 중 적어도 한 가지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전세계 1등이다. 바로 게임이다.

전길남 박사는 “유일하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가 바로 온라인게임”이라며 “온라인게임 산업에서 우리나라와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와 견줄 수 있는 게임 개발 선진국은 미국과 일본, 중국 정도다. 최근엔 중국이 한국의 게임 개발 기술을 많이 따라 잡았다고 말하는 이도 더러 있다. 하지만 전길남 박사는 “아직은 한국 게임 개발 기술이 한발 앞서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게임 개발은 소프트웨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게임은 그야말로 IT 산업의 총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선, 게임은 소프트웨어 개발뿐만 아니라 그래픽과 예술, 음악 등 시·청각적으로 매력적인 콘텐츠다. 게임이 단순히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 까닭이다. 또,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한다고 생각해보자. 수많은 이들을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서버 개발과 관리 기술이 함께 발전한다. 특히, 요즘처럼 하드웨어 주도권이 옛 PC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로 넘어오는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 산업도 플랫폼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혁신한다. 게임 산업의 발전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전길남 박사는 “게임 산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 중 스토리텔링은 보너스”라며 “스토리텔링과 콘텐츠산업이 중요해짐에 따라 IT 분야에서 온라인게임 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게임업계, 정부 규제에 더 적극적 목소리 내야”

게임 산업이 전체 IT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별개로 국내에서 게임 산업은 그리 수준 높은 생태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게임 산업에 걸어둔 빗장을 쉽게 풀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보는 어른들은 너무 앞서 걱정을 하고 있다. 놀이와 여가 대신 효율과 경쟁이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게임은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전길남 박사는 정부의 게임 규제에 업계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가 게임에 과도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실 정부라는 것은 체질적으로 규제를 하고 싶어합니다. 현재 국내 정부가 셧다운제나 4대 중독법 등으로 게임 업계를 규제하고 있는데, 업계와 업계 종사자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돼요.”

정부의 과도한 게임산업 규제와 별개로 게임 업계도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것이 전길남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셧다운제가 국회를 통과할 때, 국내 게임 개발업체는 한마디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다. 지닌 2013년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이른바 ‘중독법’ 카드를 국회에 제출했을 때도, 게임 업계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너무 고분고분했던 것은 아닐까. 국내 게임업계가 어느덧 20살 청년으로 자란 오늘,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전길남 박사는 “산업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라며 “그동안 국내 게임 업계는 너무 수동적으로 움직여왔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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