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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위험한 경제학
by 임주환 | 2009. 11. 20

개인적 체험이지만, 나를 열광시킨 책들은 늘 ‘불온서적’이었다. 지면 가득 신음소리가 넘쳐나는 그림책이나 성체험기에 헛되이 몰입하던 사춘기를 지나, 깜냥엔 세상의 질서를 엿보고 싶어 했던 대학시절 나를 사로잡은 책들 역시 모조리 금서이거나 한때 금서였던 책들이었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럽긴 매한가지라, 지금도 불온서적들은 서점에 넘쳐난다. 국방부가 고군분투하고 있긴 하지만, 과거 맹위를 떨쳤던 검열당국은 이제 무책임하고 둔감하다. 당국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사회와 시장경제의 모순을 폭로하는 이 불온서적들의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거칠게 요약하며 이렇다.

“당신이 돈도 빽도 없는 서민이라면, 나쁜 놈들에게 속기 십상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가족과 집 한 칸이라도 지키려면.”

부동산공화국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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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 김태동 김헌동 지음. 궁리출판 펴냄
  • <위험한 경제학 ①부동산의 비밀> 선대인 지음. 더난출판 펴냄.

나는 강남 아파트 입주를 꿈꿔본 적도 없는 무주택 서민이다. 참여정부 내내 강남의 땅값이 뛰어 오르는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아찔했고, 은행 빚을 엄청나게 끌어다 쓸 능력도 배짱도 없는 서민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미래는 빛의 속도로 아득해졌다.

내게는 강남의 아파트 값 폭등이 서민들의 삶에 총체적으로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추적할 능력이 없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10년 전 한 고교 동창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는 남자 쪽에서 챙겨야 한다며, 그 친구는 시골의 부모님께 논밭을 팔아 비용을 대라고 떼를 썼다. 대치동에 23평짜리 아파트를 사는 데 2억여원 정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동창들에겐 취직까지 했으면서 부모님께 손을 벌이는 그 친구가 좀 못나 보이기도 했다. 그게 시골출신 사내애들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그런데 그 아파트는 참여정부 말기 11억 원까지 가격이 뛰었고, 지금 그 녀석은 친구들 중 유일하게 종부세에 반대하는 ‘보수파’가 됐다. 참여정부는 그렇게 가정을 꾸리는 사내란 집 한 칸쯤은 제 힘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믿은 촌놈들의 ‘착각’을 바로잡아줬다.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의 저자들은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다룬 TV의 토론프로그램이나 신문지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미네르바를 감싼 거의 유일한 제도권 학자로 유명한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DJ정부 초대 대통령 경제수석,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의 동생 김헌동씨는 경실련의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으로, 대기업 건설사에서 일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부소장인 선대인씨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한 바 있다. 김헌동 본부장과 선대인 부소장은 함께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나는 2008년 여름부터 대두된 한국경제 위기론과 미네르바 열풍, 그리고 9월에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된 취재를 위해 이분들을 만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만나서 존경하게 된 분이 있는가 하면, 기사내용과 관련해 심하게 다퉜던 분도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취재를 위해 찾아온 내게 분발을 당부하는 말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는데, 요약하면 “니네 기자들은 왜 기사를 그따위로 쓰냐”는 것이었다. 수긍이 가는 지적이었다. 볼온도서로 꼽아본 이 책들을 읽어본다면 엉망진창의 부동산 기사를 양산해내는 한국 언론의 메커니즘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수년전부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강남집값 거품이 터진 것은 아닌 까닭에, 이분들의 ‘예언’이 빗나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외국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도 강남 부동산 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강남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부동산임이 입증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폭락 운운은 좀 무책임해 보인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언이 불발탄이었는지, 아니면 더 큰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잠깐 지연돼있는 상황인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다.

부동산 공화국 종말론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묶었지만, 두 책의 성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김태동, 김헌동 형제의 책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실패와 왜곡된 시장구조를 비판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반면, 김광수경제연구소와 선대인씨의 책은 아파트, 특히 강남아파트 가격에 낀 거품의 실체와 거품붕괴 뒤 닥칠 ‘일본식 장기불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집중하는 인상이다.

경제학에는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내게 두 책은 부동산문제와 한국경제의 여러 위기요인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혹적이었다. <문제는 부동산이야…>는 김태동 교수와 김헌동 본부장의 대담을 옮긴 것인데, 김 본부장이 부동산 시장의 현실과 여러 지표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면, 김 교수는 이런 현상들을 거시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으로 정리해주는 식이다. 최근 여러 권의 책을 펴내고 있는 선대인 부소장의 작업도 지난해 한국경제 위기론을 적극적으로 설파해 대중들에게도 제법 유명해진 김광수 소장의 자문 내지는 협업이!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거칠기 그지없지만, 두 권의 책에 담긴 내용들을 네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으로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부동산 가격거품은 왜 생겼을까.

지난 2000년 강남의 일반 아파트가 평당 700만원 대였고, 타워팰리스의 분양가가 950만원이었음을 고려하면 강남 아파트에 낀 거품을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풀어 오른 부동산 가격을 만든 자들은 누구일까.

김헌동 본부장은 재벌을 비롯한 건설업계, 국민의 요구보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설교통부와 재정경제부 중심의 관료, 재벌과 건설업계의 뒤를 봐주며 ‘검은 돈’을 챙기고 지역개발사업에 개입하는 정치인, 독자의 알 권리보다 재벌과 건설업체 광고매출에 신경쓰는 일부 언론, 업계와 관료들로부터 각종 (연구)용역을 받아 기생하는 관련 연구인력 등을 아울러 ‘개발5적’이라고 지칭한다. 이들의 협업시스템이 상위 5%의 땅부자가 자산과 권력의 80%를 장악한 부동산 공화국을 만든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거품은 왜 해악일까.

<문제는 부동산이야…>에서 저자들은 부동산 투기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양극화 심화를 꼽는다. 김태동 교수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3,600조원의 자본이득이 부동산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무주택자 등 없는 사람들이 세입자로서 본인이 죽을 때까지, 대대손손 집이 마련될 때까지 수백년이 걸리더라도 높은 월세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부동산 거품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축시킨다. 집값이 어지간한 회사원 연봉의 3~5배 수준이던 1980년대에는 서민과 중산층이 10년 정도 월급을 알뜰하게 모으면 집을 하나 살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금은 꿈도 꾸기 힘들만큼 가격이 뛴 데다 일자리마저 비정규직화로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부동산 거품은 부패공화국의 밑천이 된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의 뇌물사건을 경실련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60%는 개발업자나 건설업자가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뇌물을 주다 적발된 경우였고, 나머지 20%는 세금을 안 내기 위해 감세청탁을 한! 경우였다고 한다.

그럼 거품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문제는 부동산이야…>의 저자들은 거품이 꺼지는 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부동산담보대출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 폭락이 일어나면 금융시스템이 붕괴된다는 걱정(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떠올려보면 되겠다)을 하는 정책담당자나 금융권 전문가들이 들으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다.

일단 거품이 꺼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일본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정점의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도쿄나 오사카는 10%까지 폭락했다. 한국의 경우 다주택 소유자가 보유한 주택 수는 최소 240만호에서 최대 814만호로 추산된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일본식 대폭락을 경험하게 된다면, 이런 집 부자들이 제일 큰 피해를 보고, 이후 건설업체 부도, 실업자 급증 등으로 이어질 거라는 게 김태동 교수의 견해다.

설사 그렇더라도 투기경제의 암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이지, 4% 경제성장을 유지한답시고 암을 5~6배 키워온 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는 비판한다.

내집마련에 관심을 가진 중산층, 서민들이 귀를 기울여 볼만한 주제다. 요즘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던데, 그렇다면 지금이 집을 살 마지막 기회일까.

정말로 부동산 거품이 심각하다면 올 초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강남 집값 꿈틀’이나 ‘부동산 시장 기지개’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은 어찌된 영문일까. <위험한 경제학>에 따르면 이런 보도들은 ‘사기’에 가깝다.

상당수 언론들이 인천 청라와 송도의 분양이 과열양상을 띠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1년 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 잘만 하면 ‘먹고 튈 수’ 있는 이곳들을 제외하곤 전국 어디에서도 분양에 성공한 지역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 2009년 4월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16만호에 이르고, 2009년 하반기에만 11만호의 신규물량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선대인 부소장은 정부가 미분양 물량을 매입해 건설업체들의 자금난을 해소해주고, 대규모 토건사업을 일으켜 건설업체들을 부양하고 있는데, 이는 1990년대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만성적 공급과잉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집을 살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 참고 기다려보라는 뜻이다.

‘경제’는 숫자의 영역일 뿐 아니라 담론의 영역이기도 하다. 예컨대 주식시장에서는 똑같은 기업의 실적을 놓고도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해석방법은 큰 차이를 보인다. 각각의 애널리스트들 중 누가 적중률이 높은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정치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체계를 제시하는가에도 눈길을 둘 필요가 있다.

두 권의 책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는지는 말 그대로 그때 가봐야 안다. 그렇더라도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들 속에 담긴 한국경제의 위험요인 진단과 건설업과 정치권의 결탁 같은 날것 그대로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책 소개 글의 결론 삼아 <위기의 경제학> 표지에 적힌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추천사를 인용해본다.

“미국경제의 위기 배후에는 심각한 양극화와 더불어 금융과 의료가 터무니없이 큰 몫을 가져간 사실이 있었다. 한국 경제에는 양극화와 더불어 토건산업의 과잉비대가 아킬레스건이다. 본서는 이런 점에서 정곡을 찌르고 있다.”

두 권의 책에 모두 어울리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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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노동, 사회적 기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직 신문기자입니다. '게으름뱅이의 전망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 Responses to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위험한 경제학"

잘 읽었습니다. 요즘 대학가는 정말이지 불온서적(?)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는 11%에 불과하다는 기사에서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20~30년의 시차를 두고 몰락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때 소련의 붕괴를 두고 ‘자본주의의 승리’ 운운하던 경망스런 신문 기사가 생각납니다. 아무튼 대학교 때도 읽어보지 못했던 막스를 맘 잡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토지정의 시민연대로 가보시면 답이 나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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