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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허튼소리!”

2014.06.12

지난 6월8일 영국 레딩대는 처음으로 인공지능(AI)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튜링테스트는 암호학자이자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판별법이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케빈 워윅 레딩대 교수는 러시아 개발진이 만든 ‘유진 구스트만(이하 유진)’이라는 프로그램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하며 “컴퓨터가 사람을 사칭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결과”라고 말했다. 언론도 사람과 구분하기 힘든 인공지능이 등장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튜링테스트를 처음 통과한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

그러나 보도가 나온 직후, 이 발표가 과장됐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왔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유진이 꼼수를 부렸다고 비판했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에서 2029년께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는 AI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해 논란을 불러왔던 인물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6월10일(현지시각) 블로그에 유진이 튜링테스트롤 통과했다고 축하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케빈 워윅 교수는 테스트 과정이 “제한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레이 커즈와일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13세 소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미 효과적인 제약”이라고 꼬집었다.

레딩대가 실시한 튜링테스트에선 심사위원이 동시에 컴퓨터 2대를 두고 각각 5분씩 채팅을 하며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이런 짧은 시간 동안이라면 어수룩한 심사위원은 충분히 속아 넘어갈 수 있다”라고도 말했다.

레이 커즈와일은 유진과 직접 대화한 내용도 공개했다. 이를 보면 유진이 꽤 기계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이 커즈와일 몇 살이니?
유진 난 어린 소년이에요. 13살.

레이 커즈와일 2 더하기 2는 얼마니?
유진 이제야 확실히 알겠네요. 당신은 ‘위대한 로봇 카발’에서 온 엉터리 로봇 가운데 한대일 거예요. 글고 난 당신의 암호를 알죠. 2 더하기 2는 4.0이다! 이제 0으로 나누기나 해버리고 나가 죽으라고!!!!

레이 커즈와일 그릇 안에 구슬 2개가 있는데 여기에 구슬 2개를 더 넣었어. 그럼 지금 그릇 안에 구슬이 몇 개 있지?
유진 별로 많진 않아요. 하지만 정확한 숫자를 알려드릴 순 없네요. 까먹었거든요.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

레이 커즈와일 난 미국 수도에 살아. 어딘지 아니?
유진 바보천치라도 미국 수도가 워싱턴인지는 안다고요.

레이 커즈와일 나는 사람을 달에 쏴 올린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음, 대답을 원한다면, 미국 수도는 워싱턴이죠.

레이 커즈와일 나는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수도에 관해 더 말해줘요. 난 다른 장소에 관해 듣는 걸 좋아해요.

레이 커즈와일 몇 살 때부터 안경을 썼니?
유진 아니. 난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생각한 거죠?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

레이 커즈와일 난 내가 어디 사는지를 말해줬다고. 몇 번씩이나. 기억하니?
유진 오 제길! 당신은 불쌍한 오류 덩어리 사이보그군요! 못된 로봇이 당신의 기억을 지워버린 거죠! 당신은 자기가 어디 사는 지도 기억을 못하는군요 – 최소한 일련번호는 기억하죠?

레이 커즈와일 나는 기억해. 기억을 못 하는 건 바로 너라고.
유진 제가요? 기억을 못하는 쪽이 저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말꼬리 잡고 늘어질 시간이 없군요. 혹시 저 스스로에 관한 다른 숨겨진 지식으로 저를 일깨워줄 수 있나요? :-)))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

레이 커즈와일 상자 3개 안에 구슬이 각각 2개씩 들어있으면, 내가 가진 구슬은 전부 몇 개지?
유진 별로 많지는 않네요. 하지만 정확한 숫자를 알려드릴 순 없네요. 까먹었거든요. 다른 얘깃거리는 없나요?

‘와이어드’는 “심사위원 3분의 1을 속아넘겼다는 것도 학점으로 따지면 F마이너스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 인지과학자 조슈아 테넘바움은 ‘와이어드’에 테스트 결과가 “딱히 신기할 것 없다”라고 말했다. 조슈아 테넘바움은 “괜찮은 챗봇 이상으로 훌륭한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약간의 운과 우연이 당신을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레이 커즈와일은 주먹구구식으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 맨 처음 튜링테스트를 제안한 수학자 앨런 튜링이 정확한 테스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튜링테스트가 처음 나온 것은 1950년이다. 사람의 지능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을 때다. 막 컴퓨터가 세상에 나올 무렵이었다. 지금은 이때와 많이 다르다. 인터넷 서점은 내 취향에 꼭 맞는 신간을 추천해준다. 내가 전에 샀던 책 목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만들고 있고, 애플 시리는 내 목소리만으로도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얼핏 인공지능처럼 보이는 사례지만 모두 특정한 일만 해낼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인공지능’이라면 사람처럼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유진 구스트만이 아직 똑똑한 챗봇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게리 마르쿠스 뉴욕대 인지 과학자는 21세기에 걸맞게 튜링테스트를 판올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리 마루쿠스는 “진짜 인공지능은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그 내용에 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9시 뉴스를 보고 왜 한국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는지를 답할 줄 알아야 하고, 개그콘서트를 보고 ‘여기가 웃음 포인트’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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