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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한달 된 공인인증서, 왜 아직도 써야 하나

2014.06.22

“정부가 민간 회사를 미성년자 자식으로 보는 것 같아요. 부모로서 미성숙한 민간 회사를 관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 민간 회사에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지시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자기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 다 큰 자식에게 그러는 부모는 없잖아요.”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한국 전자결제 시장 규제를 가부장적인 집안에 빗댔다. 페이게이트가 6월19일 오후 잠실 사무실에 마련한 ‘신용카드 원클릭 결제를 위한 보안·인증수단’ 세미나 자리였다. 페이게이트는 웹 표준 환경에서 액티브X 등 플러그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결제대행업체(PG)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

온라인 결제에서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이 폐지된지 꼭 한 달째다. 지난 5월20일부터 온라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공인인증서를 안 써도 된다는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 개정안이 발효됐다. 30만원 이상을 결제할 때도 공인인증서를 쓰도록 강요할 이유가 없어졌다. 드디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아마존이나 이베이처럼 클릭 한번만 하면 간편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기대하는 이가 많았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자. 무엇이 달라졌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공인인증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규정이 없어진 지금도 여전히 온라인 쇼핑몰은 30만원 이상 결제할 때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 공인인증서가 아니더라도 각종 플러그인을 설치하도록 강요한다.

왜 그럴까. 신용카드 회사가 여전히 공인인증서에 묶인 결제방식을 쓰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구태언 변호사는 온라인 쇼핑몰에 신용카드 결제 기능을 넣는 결제대행업체도 신용카드회사 가맹점으로 보는 규정(여신전문금융업법 제2조 제5호) 때문에 결제대행업체가 신용카드 회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제대행업체가 아마존 원클릭 결제처럼 간편한 결제 방식을 개발해 들고 나와도 신용카드 회사가 인정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얘기다. 구태언 변호사는 “신용카드사의 장벽을 넘지 못해 새 결제 방법을 만든 결제대행업체가 문전박대 당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Paygate_Seminar_KooTaeEon_01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 발표자료 발췌

새 결제 기술이 나오기 힘든 구조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불편으로 돌아온다. 김성동 알라딘커뮤니케이션 웹기획·마케팅 팀장은 상당히 많은 고객이 결제 과정이 너무 어려워 상품 구매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모바일 결제 페이지까지 갔다가 복잡한 결제 과정 때문에 포기하는 고객은 50%가 넘는다. PC 웹사이트도 15% 넘는 고객이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두고도 결제가 어려워 책 사기를 포기한다. 김성동 팀장은 “매출 1%를 올리려고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마당에 50%면 굉장한 손해”라고 말했다.

Paygate_Seminar_KimSeongDong_Aladdin_01 ▲김성동 알라딘커뮤니케이션 웹기획·마케팅 팀장 발표자료 발췌

김성동 팀장은 알라딘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문의 가운데 4분의 1이 신용카드 결제 문제라며, 이 때문에 생기는 손해도 크다고 토로했다.

“배송 문의는 굉장히 간단해요. ‘내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기사님께 말씀드릴게요’하면 됩니다. 신용카드 결제 문의는 사용자 PC에 액티브X가 왜 안 깔리는지, 깔렸는데도 어떤 충돌이 나서 안 되는 건지 전문가도 직접 보지 않고는 답변하기 힘들어요. 우리는 카드회사도 아닌데 카드사 클레임을 해결하는 상황이죠. 그래서 카드 결제 문제만 전담하는 상담원도 생겼어요. 몇년 동안 이런 문제를 상담하다보니 전문가가 생긴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전자결제 시장을 꼬치꼬치 참견하지 않고 시장 경쟁에 맡기라고 현업 전문가는 주장한다.

이동산 페이게이트 기술이사(CTO)는 “세계 전자결제 시장의 화두는 경쟁”이라며 “전자결제 시장을 민간이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부보다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가 적은 민간회사가 결제 시장을 주도하면 지금보다 다양한 결제기술이 나올 수 있고, 다양한 기술이 시장에 나오면 공인인증서처럼 정부가 지정한 몇몇 보안 기술에 기댄 지금보다 더 안전해진다는 게 이동산 기술이사의 주장이다. 이동산 기술이사는 “카드회사가 아닌 가맹점이나 쇼핑몰 혹은 작은 회사가 만든 결제 솔루션도 보안성이 검증됐다면 시장에 나오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구태언 변호사도 “예전에는 휴대폰 단말기를 해외에서 가져오면 일일이 전파인증을 받아야했지만, 지금은 처음에 한 사람이 인증을 받으면 같은 기기는 모두 인증을 받은 것으로 친다”라며 “신용카드 회사가 한 번 인증받은 결제 방식은 보안성 심의 같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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