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측에서 판정까지…스포츠 신기술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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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전쟁이다. 편을 나눠 실력을 겨룬다. 승자와 패자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가 실력을 겨루던 올림픽이 현대에 부활한 뒤 올림픽·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각국의 총성 없는 싸움터가 됐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대 최첨단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스포츠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새 기술이 선보이는 경연장이 됐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에 기술이 어떻게 접목돼 왔을까.

계측

기록이 있어야 스포츠도 존재한다. 100m를 몇 초에 뛰었는지 정확히 잴 수 없다면 100m 달리기가 무슨 소용이겠나. 올림픽 같이 세계적인 경기에서는 0.01초 차이로도 승패가 나뉜다. 스포츠 역사는 정확하게 시간을 재는 기술과 함께 발전했다.

특히 올림픽은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가 ‘타임키퍼’ 자리를 두고 실력을 겨루는 장이다. 타임키퍼는 단순히 정밀한 시계를 납품하는 회사가 아니다. 기록 경기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건 물론이고, 선수가 받은 점수를 합산하고 경기 결과를 알리는 일도 모두 타임키퍼 몫이다. 타임키퍼로 꼽히면 빠르고 정확하면서 믿을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는 뜻으로 통하기 때문에 많은 시계 브랜드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타임키퍼 자리를 꿰차려고 안간힘을 쓴다.

정밀 기기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스위스는 가장 많은 타임키퍼를 배출했다. 제1회 근대 올림픽 타임키퍼인 론진을 비롯해 태그호이어, 오메가 등 많은 시계 브랜드가 돌아가며 올림픽 공식 기록 계측자 역할을 맡았다.

론진 1867년 제품

▲론진이 1867년 파리 국제박람회에 출품해 우승한 태엽 시계(출처 : 론진 웹사이트)

첫 번째 근대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 기록 장비를 댄 곳은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론진’이다. 론진은 1879년 5분의 1초 단위로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간 기록기를 처음 선보였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 쓰인 장비는 이를 개선한 것이다. 육상 100m 종목 공식 기록을 잴 때 론진의 휴대용 정밀 태엽시계(포켓 크로노그래프)가가 쓰였다. 론진은 9개 동계올림픽에서 기록 측정을 맡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타임키퍼도 론진이다.

오메가는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30대 정밀 시간 측정 장비를 보냈다. 이 덕분에 처음으로 10분의 1초 단위로 기록을 잴 수 있었다.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에는 100분의 1초 단위로 기록을 측정하는 장비가 기록을 곧바로 출력해줬다.

스포츠 기록 분야에서 자웅을 다투던 론진과 오메가는 1972년 7월 손잡고 ‘스위스타이밍’이라는 스포츠 기록 전문 회사를 꾸렸다. 스위스타이밍은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11개 올림픽에 타임키퍼 역할을 맡았다. 오는 2016년 열리는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0년 열리는 제32회 도쿄 올림픽까지 오메가가 맡기로 했으니, 반세기 넘게 스위스타이밍이 올림픽 기록 계측 업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다른 나라 시계 브랜드도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타임키퍼를 맡는다.

일본 세이코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 타임키퍼를 맡았다.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딴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도 세이코가 시간을 쟀다. 세이코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공식 타임키퍼로 활약한다. 1985년부터 세계육상연맹이 개최하는 모든 대회에는 세이코가 기록 계측 업체로 참여했다.

1972년 열린 제20회 뮌헨 올림픽 타임키퍼는 독일 시계 브랜드 ‘융한스’였다.

세계축구연맹(FIFA)이 여는 세계 축구 대회 월드컵 타임키퍼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위블로’다. 위블로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부터 후원을 시작했다. 유로 2008과 2014 브라질 월드컵도 위블로가 타임키퍼를 맡았다.

판정

규칙에 따라 승자와 패자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스포츠 분야에는 판정을 위한 기술도 발전해 왔다.

처음으로 결승선에 사진기가 놓인 건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이다. 오메가가 도입한 ‘레이슨드 타이머’는 결승선을 따라 빛을 쏜다.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하면 빛이 끊긴다. 이걸 신호로 레이슨드 타이머는 사진을 찍고 1천분의 1초 단위로 주자가 도착한 시각을 측정했다. 이 뒤로 심판이 리본을 들고 결승선에 서는 일은 사라졌다.

레이슨드 타이머 ▲레이슨드 타이머 (출처 : BBC)

처음 전자 채점장비가 도입된 종목은 펜싱이다. 펜싱 경기에선 1초 사이에도 서너번 공격이 이뤄진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에페 종목에 처음 전자 채점장비가 도입됐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플뢰레,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사브르까지 모든 펜싱 종목에 전자 채점장비가 쓰이기 시작했다. 선수는 득점 부위에 센서가 달린 호구를 입고, 끝에 센서가 달린 칼로 승부를 겨룬다. 칼 끝에 달린 버튼으로 상대방 득점 부위를 누르면 점수가 올라가는 식이다. 전자 채점장비는 선으로 선수 장비와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가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됐다. 그래서 국제펜싱연맹(FIE)은 좌우 움직임을 제한하고 앞뒤로만 움직이도록 경기 규칙을 손봤다. 최근 국제펜싱연맹은 무선 전자 채점장비를 도입해 경기장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도록 경기 방식을 바꾸려 하고 있다.

태권도도 2011년부터 전자 보호구를 도입해 자동으로 채점이 이뤄지도록 규칙을 바꿨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2011년 경주세계선수권대회부터 전자호구 시스템을 도입해 판정 시비가 생길 가능성을 없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전자호구가 쓰였다.

수영 종목은 1968년에 자동화됐다. 오메가가 제19회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터치패드와 수영장 시간 측정 장비를 제공했다. 선수들이 올라가는 출발대에는 부정출발을 확인하는 센서가 들어간다. 또 수영 레인 양쪽 끝에 설치된 패드에 닿아야 기록이 인정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패드에 조명을 설치해 선수와 관중이 바로 순위를 알 수 있도록 했다. 1등부터 3등까지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를 보여줘 순위를 표시했다.

2010년 제21회 벤쿠버 동계올림픽에는 처음으로 전자총이 쓰였다. 전에는 경기 시작을 알릴 때 작은 권총을 썼다. 소리는 1초에 340m 속도로 나아간다. 심판과 가까운 자리에서 출발하는 선수가 멀리서 출발하는 선수보다 총성을 빨리 듣는다는 말이다. 작은 차이지만, 0.01초 차이로도 승패가 갈리는 세계 정상급 선수 사이에는 논란이 일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벤쿠어 올림픽 타임키퍼 오메가는 전자총을 도입했다. 심판이 전자총 방아쇠를 당기면 모든 선수 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동시에 출발음이 난다. 심판과 거리 때문에 출발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 것이다.

오메가 스타팅 피스톨

▲심판이 총성 없는 총을 쏘면…(출처 : 더블레이즈닷컴)

오메가 스타팅 블록

▲선수 발돋움대 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출발 신호가 나온다(출처 : 기어패트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골라인 판독 기술이 도입됐다. 카메라 7대로 공의 위치를 추적해서 골인 여부를 가려, 골이 들어가면 주심이 찬 스마트 손목시계에 알람을 띄워준다.

방송

스포츠 행사에는 많은 관심이 쏠린다. 많은 이목이 쏠리는 만큼 방송산업엔 큰 먹거리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는 미디어 기술이 발돋움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1911년 켄자스 로렌스에서 열린 켄자스 대 미주리 미식축구 경기 소식을 웨스턴유니온이 전보로 미주리에 전했다.

처음 실시간으로 중계된 스포츠 경기는 권투다. 1921년 4월11일 조니 던디와 조니 레이가 피츠버그 모터스퀘어가든에서 맞붙은 권투 경기를 피츠버그 소재 웨스팅하우스 방송국이 라디오로 생중계했다.

처음 TV로 생중계된 스포츠 행사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이다.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은 세계에 기술적 우월함을 뽐내기 위해 국영 TV 방송국을 만들고 선수촌 등 몇몇 장소에 대형 TV를 설치해 중계방송을 했다. 인공위성이 없던 때였기에 독일 국민만 TV로 올림픽을 볼 수 있었다. 화면은 흑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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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개회식 영상

1956년 멜버른 올림픽부터 해외 시청자가 올림픽을 TV로 볼 수 있게 됐다. 위성으로 올림픽 경기를 중계했기 때문이다. 전세계 시청자가 위성을 통해 올림픽을 볼 수 있도록 된 때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부터다. 도쿄 올림픽부터 컬러TV 방송도 시작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모든 경기를 HDTV 영상과 5.1채널 음향으로 방송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주요 경기 3DTV 중계가 시범적으로 이뤄졌다.

인터넷의 등장은 세상을 바꿨다. 스포츠 행사도 예외는 아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홈페이지를 꾸리고 인터넷으로 경기 결과를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많은 경기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는 ‘모바일 올림픽’이라는 독특한 별명이 붙었다. TV보다 모바일로 경기를 보는 시청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네이트에서 올림픽을 본 시청자 가운데 82%가 모바일로 생중계 방송을 봤다고 발표했다.

스포츠SI

스포츠 경기가 단순히 승패를 나누는 유희거리를 넘어 수많은 데이터를 쏟아내는 과학기술의 각축장으로 변하면서 경기에서 나온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여기에는 ‘대회정보시스템’이 쓰인다.

대회정보시스템은 득점·반칙·승패 등 각 경기장에서 나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경기 운영진과 코치, 선수, 관중 등 여러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심판이 손으로 기록한 채점지를 일일이 경기 운영진이 컴퓨터에 입력해야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일부 종목에 대회정보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회정보시스템 구성도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회정보시스템 구성도 (쌍용정보통신 제공)

전체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대회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면 한곳에서 경기 결과를 입력하면 그 정보가 전광판, TV 방송 자막, 인터넷 웹사이트 등 다양한 창구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대회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쌍용정보통신 박현철 이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 선수가 탁구 단식 종목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20분이 지나서야 발표된 것은 경기 결과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대회정보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이런 일 없이 실시간으로 경기 결과가 공유된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스포츠SI 분야도 모바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경기 운영진이 단말기 앞을 지키고 앉아 있을 필요 없이 태블릿PC에 바로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다. 박현철 이사는 “아직 예산 문제 때문에 대회 조직이 시행하지 못하지만, 정보를 빨리 처리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웬만한 국내 대회에서도 무선 단말기로 경기 데이터를 입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