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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달러보다 비트코인 더 많이 쓰게 될 것”

2014.07.22

“이미 느껴지듯 5년 뒤에는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달러 비중은 줄어들고 중국 위안화 비중이 커질 거라고 봅니다. 또 위안화만큼, 어쩌면 더 많은 비중을 비트코인이 차지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는 비트코인이 미래 화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7월22일 아침 마련한 ‘금융과 인터넷’ 패널 토론 자리였다. 박소영 대표는 16년 동안 전자결제회사(PG) 페이게이트를 운영하며 지켜본 흐름을 짚어보면 비트코인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향후 한국에서 결제 3분의1이 비트코인으로 이뤄질 거라고 봅니다. 우리 세대에는 아니겠지만 다음 세대는 모든 결제를 비트코인으로 할 수도 있겠죠.”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비트코인 세미나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금융과 인터넷’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건우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사회자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세상에 나타난 지 5년 밖에 안 된 가상화폐 비트코인은 시나브로 주류 사회에 스며든다. 연매출이 569억달러(58조4천억원)에 달하는 델은 7월18일부터 델 공식 웹사이트에서 비트코인으로 물건값을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판매 품목은 다양하다. 델 서버부터 디지털 카메라까지 델닷컴에서 파는 모든 상품을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다.

전자상거래 분야만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IT와 금융 심장부도 앞다퉈 비트코인을 포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6월 말 비트코인이 달러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고 인정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도 비트코인을 금융시스템 안으로 끌어안기 위해 규제안을 만들어 공표하고 여론을 모으는 중이다. 유영석 한국비트코인거래소(코빗) 대표는 “2014은 일반 상거래에 비트코인이 쓰이기 시작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금융 시스템이 다른 분야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는 탓이다. IT기술은 매번 한계를 뛰어넘으며 발전한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지구 반대편 미국에 사는 친구와 맘껏 영상채팅으로 수다를 떨어도 돈 한푼 낼 필요 없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돈을 보낸다고 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화를 달러로 바꿀 때 환전 수수료를 내고, 달러를 친구 계좌로 보낼 때 송금 수수료도 내야 한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제 송금회사는 수수료로 평균 9%를 물린다. 연간 해외 송금액은 500억달러(54조원)에 달한다. 직접 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파는 전자결제 시장은 훨씬 크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결제 금액은 2354억달러(241조원)에 달했다. 성장세도 무섭다. 2017년에는 7210억달러(738조원)에 달한다고 가트너는 내다봤다.

▲세계 모바일 전자결제 시장 현황 (조사: 가트너, 출처: Statista)

국경을 넘어 외국 쇼핑몰에서도 물건을 직접 사오는 일이 낯설지 않은 지금도 돈을 주고 받는 일은 여전히 번거롭다. 거대 IT기업은 틈을 노리고 속속 전자결제 시장에 뛰어든다. 구글은 ‘구글지갑’을 만들었다. 페이스북도 지난 4월 아일랜드중앙은행에 전자화폐 취급 기관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하는 한편, 7월18일에는 페이스북 안에서 물건을 바로 살 수 있는 구매 기능을 녹여 넣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웹사이트 알리바바도 자체 전자결제회사인 ‘알리페이’를, 카카오도 카카오톡 안에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뱅크월렛포카카오’를 올 하반기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 이상 금융 산업이 은행과 신용카드회사 같은 전통적인 금융회사 손에만 머물 수 없는 상황이다. 김건우 LG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지금 상황에는 금융과 비금융 경계가 허물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 전통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가치사슬 우위가 다른 쪽으로 확장되는데 그것은 인터넷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곳이 비트코인이 활약할 무대다.

비트코인은 중앙 관리조직이 없기 때문에 수수료가 거의 없고, 자금 이체도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자금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돼 있어 자금세탁도 어렵다. 기존 금융서비스처럼 거대한 기반 조직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은행이 없는 저개발국에도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살려 일반 소비자가 쉽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다면 비트코인 기업이 제2의 구글처럼 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은행 업무 가운데 스마트폰이나 PC, ATM기로 하는 비대면 업무가 85%에 달한다”라며 “비대면 서비스에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최적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일은 은행보다 인터넷 기업이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나 장미빛 미래만 그리고 비트코인 업계에 뛰어들면 곤란하다. 아직 한국 정부가 비트코인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결제 시장이 보여주듯 금융업은 보수적인 분야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규제가 까다로운 편이다. 당장 비트코인 사업을 벌였다가 정부가 비트코인 규제를 내놓으면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가 전자상거래 시장의 발목을 잡았듯 뒤처질지도 모른다. 박소영 대표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미리 정부와 발맞추며 비트코인이 대세가 될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승인을 받아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다고 하는 입장이에요. 비트코인이 보급되면 거래서나 현금영수증을 발행하려면 이런저런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할 겁니다. 자산 요건이나 지불능력 등을 검증받아야 비트코인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기존에 기득권을 가진 은행이나 카드회사, 캐피탈이 ‘우린 비트코인 쓰기 싫어’ 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러면 일반적인 환경에서 비트코인을 쓰기 힘들어지죠. 이런 일은 분명히 발생할 겁니다. 이때 사회적인 손실을 줄이려면 미리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가야 합니다.”

유영석 대표는 비트코인 관련 규제가 생겨도 비트코인 자체가 지닌 장점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이로 편지를 부칠 때는 우표를 붙여야 했죠. 이메일이 나오고 편지를 주고받기 훨씬 쉬워졌는데, 누군가 이메일을 보낼 때도 우표를 붙여야 하니 돈을 내라고 하면 이메일이 망할까요. 이메일이 주는 편리함은 여전히 있으니 이메일을 계속 쓸 겁니다. 비트코인도 세금을 내는 등 규제가 생겨도 계속 쓰이리라 봅니다.”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비트코인이 가진 플랫폼으로서 가능성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오르내리는 거래가격이 아니라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운용가능성을 보고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 벤처투자사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기존에 물리적인 장벽이나 수수료 때문에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플랫폼으로서 잠재력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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