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하루’ 땀땀이 기록 10년…“자동 수집 유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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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은 하루가 역사가 된다.”

다음세대재단이 ‘e하루616’ 캠페인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요. 다음세대재단은 8월8일 오후 다음 한남사옥에서 e하루616의 10년을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곳에는 10년 동안 e하루616 캠페인을 이끌어 온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와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기록학 전문가인 이소연 덕성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와 원종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담당자, ‘세월호 72시간의 기록’을 만든 김수영 다음커뮤니케이션 exeLab 팀장이 함께 했습니다. 참가자 5명은 원탁에 둘러앉아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Haru616_10th_Anniversary_conference_01

e하루616은 해마다 6월16일 하루 동안 인터넷 세상을 갈무리해 기록으로 남기는 운동입니다. 다음세대재단이 지난 2005년 시작했으니, 올해 6월16일로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인터넷을 기록하는 일을 e하루616만 하는 건 아닙니다. 미국 ‘아카이브닷오아르지‘나 한국 국립중앙도서관 ‘오아시스’도 인터넷을 기록합니다. 이들과 e하루616이 다른 점은 누리꾼이 직접 참여한다는 겁니다. 아카이브닷오아르지는 웹사이트를 수집하는 로봇을 이용하고, 오아시스는 돈을 주고 외부 회사에 일임합니다. e하루616은 누리꾼이 직접 수집할 웹사이트를 고르고 왜 이곳이 보존할 만하다고 생각하는지 기록하는 운동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선별하고 기록하는 사관의 역할을 누리꾼에게 직접 맡긴 셈이죠. 참여할 때 기술적인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 모으는 자료는 웹사이트 갈무리 화면뿐입니다. 다음세대재단은 웹사이트를 간단히 갈무리해주는 도구도 제공합니다.

누리꾼 시선으로 인터넷 역사를 기록한다는 취지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참여하는 누리꾼이 줄어들면 e하루616 자체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참여도를 올리려고 경품을 내걸거나 홍보에 열을 올리면,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사람보다 경품을 좇는 뜨내기가 극성을 부리게 되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e하루616이 의미를 잃지 않는 건 아직도 초심을 지킨 덕이 큽니다. 이소연 교수는 e하루616처럼 누리꾼이 손수 참여하는 디지털 아카이빙 활동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기록 업계에서는 아카이빙을 전량수집이라고 안 해요. 가치에 따른 선별이 기본이죠. 가치가 만인공통일 수는 없잖아요. 사용자나 수집자가 선별하는 게 의미 있는 거죠. 모든 기록에는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선별이라는 행위 자체가 맥락을 부여하는 겁니다.”

LeeSoyeon_Professor_DuksungWomensUniversity_DepartmentofLibrary&InformationScience

▲이소연 덕성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기록은 정신적 인프라”

이소연 교수는 단순히 웹사이트를 기록하는 일을 10년 동안 계속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카이빙 작업 자체는 지루한 작업이에요. 아카이브를 설명할 때 자주 드는 비유가 있어요. 한 사회에 물질적인 인프라가 고속도로나 상하수도, 전력망이라면 정신적 인프라는 역사나 기록학이라고요. 빛을 발하는 일은 아니지만 없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루하고 어떤 이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일을 10년 동안 계속 해온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원종관 담당자는 누리꾼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기록학 관련 종사자가 가장 못하는 것이 마케팅 캠페인이에요. 자연스럽게 손 내밀고 참여하도록 하는 걸 잘 못해요. 너무 기술적으로만 접근해서 사람들이 어려워하죠. 아름다운재단과 세월호 기록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까 얘기를 많이 했어요. 기존에 저희가 갖고 있는 메타데이터 항목 30여개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죠. 사람들에게 이걸 모두 기록하도록 요구하면 기록하기 어렵게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일반 웹사이트에 정보 올리듯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도록 했어요. 쉽게 기록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WonJongGwan_Archives_KoreaDemocracyFoundation

▲원종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담당자

“손쉽게 로봇으로 긁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방대욱 상임이사는 e하루616이 ‘진짜 아카이빙’이 아니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술회했습니다.

“‘화면만 갈무리할 뿐이지 작동하지도 않고, 표면 말고 아래까지는 (기록)하지도 않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떨어져 기록이라고 볼 수 없는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인터넷 업계 쪽에서는 거꾸로 ‘우리한테 돈 얼마 주면 로봇 만들어서 다 긁어다 줄게’하는 분도 계셨고요.”

BangDaewook_Daumfoundation_ExecutiveDirector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

방 이사는 계속 제대로 된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며 기록문화를 확산하는 대중 캠페인으로서 방향성을 고집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제대로 기록하는 것보다 (기록)문화를 확산시키자는데 방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향성을) 계속 갖고 왔는데 그 문화가 과연 만들어졌나 보면 크게 눈에 띄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등을 계기로 기록이라는 이슈가 태어나 다행이긴 한데, 아직도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할까 유혹을 받아요. 일개 재단이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아직도 캠페인에 방향을 맞추고 있지만, 이게 과연 맞는지 고민도 있죠.”

김수영 팀장은 개인이 남긴 기록이 역사가 되는 과정으로서 e하루616이 값어치 있다고 답했습니다.

“e하루616 10주년을 의미있게 본 건, 누군가 개인의 시각으로 그날에 의미를 둔 기록을 넘겨 준 거잖아요. 각자 개인이 그 시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 기록을 넘겨준 거죠. 그게 우리의 역사가 돼 가는 모습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기록문화가 많이 퍼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의 기록 욕구는 상당히 많아졌어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록은 일어나고 있죠. 기업도 기록에 상당히 의미를 두거든요. 우리가 할 일은 저널링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되고 정보가 되고 지식이 돼 다음에 나아갈 동력이 되는 것을 짚어주는 거죠.”

KimSue_DaumCommunications_ServiceCommittee

▲김수영 다음커뮤니케이션 exeLab 팀장

이소연 교수는 기록학 분야 전문가로서 기록에 관한 인식이 변한 것을 체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측정 가능한 지표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비전문가인 분들이 전문가인 우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고 발언하는 것 같아요. 이 분야 종사자가 위협감을 느낄 정도로요.”

원종관 담당자도 이 교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심각하게 느껴요.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매체를 손에 쥐면서 그런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희에게는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죠. 우리 영역이라고 하는 곳 밖에서도 이렇게 기록하는 일이 많이 나오는구나 하는 거죠.”

10년 동안 쌓은 데이터,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때

기록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기록은 시간이 지난 뒤 활용될 때 훨씬 큰 생명력을 얻습니다. 10년 동안 e하루616에 쌓인 기록은 4만여건. 이제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민경배 교수는 “아카이빙은 뒷단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고,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큐레이션을 통해 디지털 박물관을 꾸려야 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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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각양각색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반 농담으로 ‘연예기획사에 연예인 싸이 홈피 기록을 팔자’는 얘기도 나왔죠. 방대욱 상임이사는 애초에 이런 자료를 모아둔 다른 웹사이트가 없기 때문에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느낀다고 했습니다.

민경배 교수는 e하루616 아카이브 속에서 자료를 추려 나만의 디지털 도서관을 만들 수 있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습니다.

이소연 교수는 ‘픽처오스트레일리아’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했습니다. 호주 국립도서관이 도서관, 박물관, 기업 등이 가진 호주 사진을 한곳에 모든 겁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진이 모였죠. 미술사나 역사 교사 몇명을 초빙해 주제를 정해서 작은 콜렉션으로 추려 정리한 것이 ‘픽처트레일’입니다. 숲 속 오솔길처럼 방대한 자료를 훑어볼 수 있는 길을 내놓았다는 뜻입니다. e하루616도 이처럼 큐레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입니다.

10년 뒤에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10년 뒤 e하루616은 어떤 모습일까요. 방대욱 상임이사는 지금 모습을 지키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는 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뀌는 것 같지만 안 바뀌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걸 원하고 성과를 빨리 내라고 요구하더라도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다음세대재단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해 6월16일 인터넷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계속하되, 기록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한 방법은 계속 고민할 것.’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될 듯합니다. 지난 업적보다 앞으로 과제가 더 많이 남은 느낌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조만간 다음카카오로 새 출발할 예정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직원과 주주가 출자해 만든 비영리법인인 다음세대재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다음카카오는 다음세대재단을 어찌할지도 두고봐야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모기업이 덩치를 키운 만큼 재단에도 통 크게 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배구조가 달라진 만큼 이해관계도 달라질테니까요. 모쪼록 10년 뒤에도 20주년을 맞은 e하루616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