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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팬택, 통신사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2014.08.13

팬택이 결국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당사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올해 초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만 해도 팬택은 자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2011년에 한 차례 워크아웃을 졸업했던 경험이 있고,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바꾼 바 있기 때문에 워크아웃도 성공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팬택이 어렵지 않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이었습니다. 최근 팬택의 제품은 삼성이나 LG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잘 살렸고, UX에 대한 반응도 좋았습니다. 제품 주기를 짧게 하면서 시장에서 잘 팔리는 형태의 제품과 팬택이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품이 섞여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자는 ‘베가 시크릿노트’ 같은 제품이고, 후자는 ‘베가 아이언2’ 같은 제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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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과정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나온 불편한 정황들은 대부분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영업정지였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업정지의 가장 큰 피해자는 팬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통신사들이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한 말로만 비쳐졌지만, 실제 지금 팬택이 겪고 있는 자금 문제의 첫 단추는 모두 이 영업정지에서 시작됩니다. 팬택의 목표는 한 달에 15만대 정도를 파는 것이었는데 그게 딱 묶여버린 것이지요.

또 하나, 돌아보면 채권단이 팬택의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가장 잘못 두었던 수는 통신사를 공개적으로 끌어들이고 책임을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빌려준 돈을 정상적으로 받는 것이 우선인 채권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 과정을 조금 더 매끄럽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채권단이 워크아웃과 함께 발표한 팬택 경영 정상화 방안의 핵심도 결국 자금난을 어떻게 풀 것이냐였는데 팬택이 지고 있는 빚 중에서 채권단이 3천억원, 통신사가 18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출자전환이란 채무를 주식으로 바꾸는 것으로, 직접적인 투자가 됩니다.

물론 채권단은 투자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조건에 통신사를 끌어들입니다. 이는 사실 예민한 부분으로 사업적으로 접근해서 풀어야 할 문제인데 채권단은 ‘통신사가 출자전환해야 우리도 출자전환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꺼내버렸습니다. 작은 비용이 아니기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고, 통신사가 제조사의 지분을 갖게 되는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이 출자전환이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팬택의 생사 여부를 통신사에게 맡겨버렸다는 겁니다.

워크아웃의 진행여부를 통신사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통신사들은 출자전환을 더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팬택을 비롯해 모든 미디어들의 관심이 통신사, 그것도 SK텔레콤으로 쏠렸습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출자전환을 두고 안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겠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팬택 살리기’는 명분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한마디 해주기를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결국 통신사들은 입을 닫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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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통신사가 채권을 2년간 유예하는 것으로 팬택은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통신사 외에도 막아야 할 수백억원대 어음들이 계속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팬택은 이 대금을 치를 현금이 없습니다. 돈이 돌아야 하는데 지난 6월 이후 팬택은 스마트폰을 1대도 납품하지 못했고 당연히 돈이 묶이게 됐습니다. 사실 이게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자금이 묶이는 건 단순히 팬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품을 함께 만드는 500여개 협력업체들이 딸려 있습니다. 이들에게 제때 돈을 주지 못하면서 지금 협력업체들 대부분이 도산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또 다시 화살은 통신사에 돌아갔습니다. 팬택은 제품을 사 달라며 통신사에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통신사들의 입장을 보면 팔리지 않는 제품의 재고를 떠안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흐릅니다. 단순히 통신사가 등을 돌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통신사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습니다. 일단 시장이 굳어졌다는 겁니다. 취재 중에도 “영업정지와 경직된 보조금 시장 등으로 판매가 예전의 절반에서 3분의 1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재고를 늘리는 게 만만치는 않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통신사들은 영업정지 기간에도 어느 정도 팬택의 제품을 사 주었습니다. 그게 결국 쌓여서 60~70만대까지 늘어났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줄어들긴 했지만 정상적인 판매라기보다는 통신사가 밀어내기를 한 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통신사들은 팬택의 요구를 외면했습니다. 이게 심각한 이유는 ‘통신사가 사주지 않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 과정에서 법정관리로 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함께 나왔는데 이 역시 소비자들에게는 팬택 제품을 사면 불안하다는 생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는 법정관리 이후에도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잠재 요소이기도 합니다. 통신사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팬택이 위기로 내몰린 가장 큰 이유도 통신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신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방법이 책임 씌우기는 아닐 겁니다. 또한 법정관리까지 가게 된 이상 통신사도 책임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게 됐습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법정관리 심사 결과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팬택은 새 주인을 찾거나 자칫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팬택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제품들이 아깝습니다. 약 8만개의 일자리가 걸린 일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2개만 남는 것도 불편합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팬택이 제품으로 평가받고 제품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라면 아쉬움이 덜할텐데 기형적인 시장 구조때문에 밀려나는 모습은 더 보기 불편합니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