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잊힐 권리’ 삭제 판단, 구글에 맡겨둬도 될까

2014.08.13

2008년 3월 21일. 블로거 ‘외계인 마틴’은 동원에프앤비가 참치캔 이물질을 사과하고 리콜을 한다고 밝힌 사진을 첨부해, 다음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6개월 뒤인 9월3일 명예훼손 게시글 삭제신청이라는 내용으로 30일간 임시조치를 당했다. 10월22일 동원 쪽은 “고객상담실 쪽에서 누리꾼의 글에 대해 권리침해 신고를 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비슷한 풍경이 유럽에도 벌어지고 있다. ‘잊힐 권리‘에 대한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로 시작된 구글의 링크 삭제 조치가 그것이다. ‘가디언’은 지난 7월 자사 기사 6건이 영문도 모른 채 구글 검색결과에서 삭제됐다며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왜 삭제됐는지, 어떤 기준으로 차단했는지에 대한 답변을 구글 쪽으로부터 들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뚜렷한 이유 알려주지 않고 삭제하는 구글

Screen-shot-of-Google-UK-008

▲구글 영국에서 ‘Dougie McDonald Guardian’으로 검색한 결과. 

유럽발 ‘잊힐 권리’가 구글의 정보통제, 언론 검열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다. 분쟁의 소지가 다분함에도 1차적 삭제 판단은 구글에 맡겨졌다. 구글은 특별한 해명도 없이 검색 결과 링크를 지워가고 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이 조치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링크를 삭제한 기사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잊힐 권리로 삭제된 ‘가디언’의 기사 6건 중 3건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주심이었던 더기 맥도날드와 관련돼 있다. 더기 맥도날드 주심은 2010년 기성용 선수가 활약했던 셀틱과 던비 유나이티드 경기에서 셀틱 측에 유리한 판정을 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내용을 다룬 ‘가디언’ 기사는 잊힐 권리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구글 검색에서 소리없이 삭제됐다.

‘가디언’은 “삭제와 관련된 어떤 이유도 구글로부터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사실을 기술했거나 명예를 훼손한 측면이 큰 기사도 아니었다. 잊힐 권리라는 이유만으로 구글에서 흔적이 지워졌다.

‘BBC’도 잊힐 권리가 본격 가동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로버트 페스톤 기자가 2007년 작성한 전 메릴린치 회장 비판 기사가 가디언과 같은 처분을 당했다. 당시 구글이 e메일로 전달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구글 검색 삭제 알림 : 더 이상 다음 링크를 구글 유럽 버전에서 노출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게 돼 유감이다.”

이처럼 잊힐 권리로 삭제되고 있는 링크에는 권력자들이 불편했던 과거가 담긴 기사가 포함된 경우가 적지 않다. 1차 판단 권한을 구글이 쥐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언론 검열을 위한 포장지, 잊힐 권리

Legal Help

‘검색된다 고로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검색 가능 여부가 웹 내에서 존재를 가릴 만큼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이제는 ‘잊힐 권리‘라는 이름으로 검색사업자가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링크를 삭제할 권력을 갖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넘겨받은 권력이지만, 행위 여부에 따라선 정보 통제 논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잊힐 권리는 ‘누가 삭제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라는 예민하고도 본질적인 논란을 동반한다. 잊힐 권리의 정의와 가이드라인이 모호할수록 검색사업자의 판단 범위는 넓어진다. 문제는 위임받은 권력이 아닌 사적 기업이 그 윤리적, 철학적, 규범적 판단을 행사하는 게 타당하냐이다.

‘가디언’과 ‘BBC’ 기사의 링크 삭제도 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구글의 검열 논란은 분명 유럽사법재판소의 모호한 판결에서 비롯됐다. 유럽사법재판소는 개인정보 삭제와 관련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거나, 관련이 없는” 때에 적용한다고 판시했다. ‘부정확, 부적절, 관련 없는’ 개인정보인가에 대한 판단은 당분간 구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구글은 판단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거나 제시할 의무도 없다. 검열 논란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누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비슷한 우려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내 법제는 잊힐 권리에 관한한 선도국에 속한다. 개인의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잊힐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자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온 제도가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다. 임시조치는 피해자의 요청만 있으면 콘텐츠 제작자의 기사를 포털 측이 30일 동안 노출 차단(블라인드 처리)하는 제도다.

임시조치는 포털에 자체 심의권까지 부여하고 있다. 정부가 삭제 책임을 떠넘기려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다. 법무법인 세종의 윤종수·김윤희 변호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러한 임시조치 운영이 특정 포털에 맡겨질 경우 공공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분쟁을 염려해 개인정보 주체의 요구를 정밀한 검토 없이 수용하거나 실질적으로 영구삭제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임시조치를 남발할 경우에는 당해 정보 제공자와의 분쟁을 차치하고서라도 역사의 왜곡, 알 권리 침해 등 공공의 이익이 침해될 위험마저 존재한다.”

이러한 국내 사례는 고스란히 구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잊힐 권리의 삭제 판단을 구글과 같은 영리 기업에게 맡기게 되면 공공적 이익이 위험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에게 그 권한을 포괄적으로 넘겨주는 선택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임시조치를 통해 습득한 교훈이다. ‘가디언’은 구글이 아닌 저널리즘의 판단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디어 기술과 프라이버시 그리고 잊힐 권리 

네이버 게시중단 요청 서비스

▲ 네이버 게시중단 요청 서비스 화면

잊힐 권리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그 역사도 100년을 조금 넘어섰을 뿐이다. 새뮤엘 워렌과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홀로 있을 권리’를 제안한 논문을 1890년 출간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주류 미디어였던 신문에 의한 사생활 및 개인정보 침해가 주를 이루던 시기였다. 특히 옐로 저널리즘의 횡행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 좀 내버려둬’라며 나타난 권리가 프라이버시권이다.

잊힐 권리는 넓게 보면 홀로 있을 권리의 인터넷 검색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이라는 재매개 기술이 등장하면서 신문 시대와는 또다른 형태로 개인정보가 위험에 처하게 됐고 이에 대한 보호 처방이 필요해지면서 부상한 권리다. 향후 뉴미디어 기술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면 또 다른 이름으로 ‘프라이버시권’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디어 기술과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의 역사에서 각 국가는 나름의 여건에 맞춰 법이나 제도로 공공 영역에서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때문에 잊힐 권리를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선 공적 기관의 개입으로 이 문제를 풀어왔다. 예를 들어 신문에 의한 권리 침해는 1981년 설립된 언론중재위원회라는 준사법기관에서 판단한다. 잊힐 권리처럼 개별 영리 기업에 포괄적 판단 권한을 떠맡기지는 않고 있다. 게다가 ‘불완전한 과거 기록도 하나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고유 가치를 인정’해 온 전통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의 시대엔 이러한 제도가 미비했다. 임시조치라는 명분으로 포털의 판단 권한을 상대적으로 넓게 보장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삭제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임시조치를 취해왔다. 정부는 모호한 규정과 정의로 포털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활용해온 측면이 있다. 최근 게시자의 이의제기권이 법률적으로 보장하고, 관련 분쟁을 다룰 공적 기관도 확대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프라이버시는 사회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복제와 확산 속도가 무척이나 빠른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정보통제권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김형일 극동대 교수의 주장대로 개인정보(personal information)와 개인에 대한 정보(information concerning person)를 구분하지 않으면 잊힐 권리는 언제든 언론의 자유나 알권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적 통제가 쉽지 않은 사적 기업이 더 많은 판단 권한을 갖게 되면 공익과 배치된 결과가 자주 도출될 수밖에 없다. 비판 여론의 입막음 수단으로 활용돼온 임시조치가 이를 증명한다. 잊힐 권리가 도입되자마자 영국 언론들을 중심으로 터져나온 ‘구글의 정보 검열’ 논란은 국내에선 낯설지도 않다.

잊힐 권리가 보장하려는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우지숙 교수는 개인적 수준의 관심 대상이면서도 사회적 가치로서 공공적 관심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모든 판단 권한을 개인과 기업에 넘길 수도 없다.

구글과 같은 검색사업자도 삭제 판단의 권한을 부여받는 것에 비판적이다. 그 자체가 비용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원하지 않는 정치 시비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립성을 표방해온 검색사업자로선 정치 시비에 휘말리게 될 경우 사업적 피해를 전방위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분명한 사실은 잊힐 권리는 공공적 이해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하며,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존중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삭제에 대한 판단 권한이 과도하게 기업이나 국가에 편중된다면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폭력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dangun76@gmail.com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mediati.kr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뉴스미디어의 수익모델 비교 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관련 분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저서로 '트위터 140자의 매직', '혁신 저널리즘'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mediagotosa/)에서 더 많은 얘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