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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수집, 안 하겠다는 거 맞아요?”

2014.08.22

대형 카드사와 통신사의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주민번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됐다. 그야말로 공공재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번호 자체만으로 생년월일과 성별, 출신 지역이라는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민등록번호가 다른 개인정보와 연결되는 경우 파괴력이 커진다. 안팎으로 유출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김영홍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장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4년 2월까지 유출된 주민번호를 더하면 3억7400만건이다.

주민번호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이 높아지자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8월7일부터 시행된 ‘주민번호 수집과 이용, 보유한 주민번호 3자 제공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보호법이다. 이와 관련해 안전행정부는 ‘주민등록번호, 함부로 주지도 받지도 맙시다!’라는 제목으로 주민등록번호 수집법정주의를 시행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 시행과 개인정보보호 현황을 살펴보고 과제를 짚어보는 행사가 마련됐다. 8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민등록번호 법정주의 시행과 개인정보보호 현황과 과제’ 토론회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노웅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소비자시민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민사회가 함께 준비한 자리다.

주민등록번호 법정주의 시행과 개인정보보호 현황과 과제’ 토론회

주민등록번호 법정주의 시행과 개인정보보호 현황과 과제’ 토론회

“아픕니다. 아픈 데만 집어서 찌르시네요. 참석하신 분들이 쓴소리 위주로 해주시네요.”

이날 자리에서 문금주 안전행정부 개인정보보호과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론회 자리에서는 주민번호 법정주의 시행과 마이핀 제도 도입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주민번호 관련해 어떤 점들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지 이날 안전행정부가 들었던 ‘쓴소리’들은 이랬다.

쓴소리1.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이날 자리에서는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민번호 수집을 허용하는 법률이 866개(2014년 1월 기준, 안행부 발표)나 되기 때문이다. 신훈민 진보넷 변호사는 “정부가 현재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에 맞춰 법령을 정비하고 있으나, 예외 범위가 넓어 주민번호 수집법정주의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누군가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주민번호 수집 금지는 했으나, 금지는 아니게 된 셈이다.

심우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입법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민등록번호 활용에 관한 이같은 광범위한 허용 범위 설정은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고 볼 여지도 있다”라고 밝혔다.

행정목적 이외에 주민번호 수집을 허용하는 사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주민번호의 도입 취지는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항상 명확하게 파악’해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를 적정하게 처리’하는 데 있기에 행정목적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주민번호를 본인확인 수단으로 활용하게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신훈민 변호사는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6조는 소비자가 개인정보의 이용에 관한 동의를 철회하는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수집·보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라며 “사인간의 거래에 주민번호를 본인확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은 주민등록법과 주민번호 수집 법정주의 도입 취지에 위배된다”라고 말했다.

신훈민 진보넷 변호사

신훈민 진보넷 변호사

김영홍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장은 신원을 담보로 한 거래가 꼭 필요한지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쇼핑몰에서 중요한 수단은 실명이 아니다”라며 “실명을 인증하고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서비스나 상품을 위해 소비자가 내는 건 돈이면 되지, 신원정보가 아니라는 얘기다.

쓴소리2. “왜 이렇게 다급하게 개정했나요?”

법령 정비 과정이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주민번호 수집 관련 법령을 너무 다급하게 개정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주민번호 수집을 허용하기 위해  135개 대통령령을 일괄 정비한다고 지난 7월14일 밝혔다. 하지만 6월9일~30일, 7월14일~18일 두 번에 걸친 입법예고기간이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135개 대통령령을 검토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25일 뿐이었다.

신훈민 변호사는 “행정절차법 제 41조에서 행정상 입법예고를 두어 누구든지 예고된 입법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동법 제43조에서 입법예고기간을 40일로 규정한 것은 국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라는 의미”라며 “135개 대통령령을 입법예고하며 불과 25일의 입법예고기간을 둔 것은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금주 안행부 개인정보보호과 과장은 “시급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146개 시행령을 일괄 개정했다”라며 “졸속으로 한 거 아니냐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각 부처에서 요구해서 할 수 없이 개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196개가 들어왔는데 나름 고민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보수적으로 드롭을 해서 146개만 반영하게 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146개 시행령은 일괄 정비한 135개 외에 개별적으로 추진한 11개가 더해진 것이다.

쓴소리3. “마이핀은 왜 만들었나요?”

“주민번호를 수집해도 법에서 허용해줄 수 있는 범위가 866개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개인정보 수집이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개인을 확인해야 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닐까요. 허용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에서 대체수단(마이핀)을 마련하는 게 정답일까요?”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마이핀은 인터넷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본인확인 수단으로서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13자리 무작위 번호이다. 하지만 마이핀 역시 주민등록번호에 기반한 대체수단일 뿐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신훈민 변호사는 “마이핀은 발급업체인 본인확인기관이 매개된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주민번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민번호와 큰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 역시 “마이핀은 현재 주민번호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 정보 역시 유출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심우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아이핀, 마이핀 등 아무리 그 명칭과 구조를 변경시키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주민번호가 전제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쓴소리4. “마이핀 발급받으려면 아이핀 발급받으라고요?”

마이핀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아이핀을 발급받아야 한다. 또한 마이핀을 발급받기 위해 나이스평가정보에 전화 상담을 하려면 주민번호를 누르라는 안내가 나온다. 주민번호 수집을 하지 않겠다고 만든 마이핀인데, 상담받는 것부터 주민번호가 필요한 셈이다. 윤명 기획실장은 “국민 편의 측면에서 마이핀은 소비자를 더 번거롭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금주 안행부 개인정보보호과 과장은 “활용률이 높진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이미 아이핀이라는 제도가 실행돼 왔고, 내보이진 않았지만 아이핀에 13자리 숫자가 있었다”라며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그걸 끄집어내면 오프라인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보니 아이핀을 발급받아야 마이핀을 발급받을 수 있는 사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쓴소리5. “기업이 할 일을 왜 정부가 나서서…”

공공 아이핀 페이지를 보면 마이핀은 멤버십카드 발급이나 ARS 상담을 할 때 활용이 가능하다고 소개한다. 주로 사기업의 고객관리 용도로 쓰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고객관리는 기업의 몫인데 정부가 주도적으로 주민번호에 기반해 새로운 식별번호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자료 : 공공 I-PIN 페이지

자료 : 공공 I-PIN 페이지

윤명 기획실장은 “본인 확인과 개인식별은 다르다”라며 “민간에서 사업자가 개인식별이 필요하다면 각 민간(개인)업체들이 알아서 고객 식별을 위한 번호를 마련하면 되는 일인데, 민간(개인)업체 영업활동을 위한 개인식별 번호를 왜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신훈민 변호사는 “소상공인의 경우 고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포인트 발급 등을 위해서 별도의 본인확인 수단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라며 “대기업의 경우에도 규모에 맞게 자체적인 시스템 개발이 중점에 두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문금주 안행부 개인정보보호과 과장 역시 “조그만 슈퍼는 쓸 필요가 없다”라며 “기업들 연계 서비스를 쓸 때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이핀을 주민번호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본인식별번호로 삼고 싶진 않다”라며 “마이핀은 널리 활용되면 좋지만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hyeming@bloter.net

기술을 아는 기자, 언론을 아는 기술자가 되고 싶습니다. e메일 : hyemin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