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9일(미국 동부 기준), 네트워크 업체인 주니퍼네트웍스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뉴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이 날은 인터넷이 상용화된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 나스닥에 상장돼 있던 주니퍼는 이날부로 뉴욕증권거래소로 옮겼다.
주니퍼는 네트워크 전문 업체다. 시스코가 장악하고 있던 라우터 시장에 고성능 라우터를 출시하면서 입지를 마련했다. 주니퍼의 전략은 별도의 칩(ASIC)을 만들어 기본 처리되는 것들의 성능을 높인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시장에 제대로 먹혀 들었다. 이후 2004년 넷스크린이라는 보안 어플라이언스 업체를 인수하면서 보안 분야도 품에 안았다. 하지만 네트워크 업체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스위치다. 2008년 1월 주니퍼는 스위치 시장에도 발을 담갔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 주니퍼는 ‘뉴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보였다. 왜 이 시점에서 새로운 네트워크일까? 신철우 한국주니퍼네트웍스 상무를 만난 이유다.
신철우 상무는 “현재 보유한 기술로는 앞으로의 유무선 데이터 처리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니퍼의 진단입니다”라고 말문을 열고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은 모든 정보를 한 군데 모아놓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기기에 상관없이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이런 클라우드 환경을 마련할 때 핵심이 바로 네트워크 인프라입니다. 네트워크가 진화되지 않으면 정보를 중앙에 모아놓더라도 접속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니퍼의 전략은 몇가지 기술과 운영체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주니퍼는 이번에 새로운 칩셋을 발표했다. 초기 라우터 제품은 일반 범용 중앙처리장치(CPU)를 통해 연산을 처리하다가 별도의 전용 ASIC로 대체를 해 왔다. 그런데 주니퍼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주니퍼는 주노스 트리오(Junos Trio) 칩셋을 선보였다. 이 칩셋은 3D 스케일링(Scaling) 기술이 내장됐다. 3D 스케일링은 네트워크가 지원할 수 있는 가입자와 서비스, 대역폭의 양을 동시에 증대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신철우 상무는 “이 칩셋엔 10개의 블루레이 DVD를 1초에, 10년간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된 데이터를 1분에 전송할 수 있습니다. 영화 80편을 1초에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죠. 최대 2.6 테라비트(terabits)/sec의 2~4배 빠른 처리량을 실현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네트워크 대역폭은 원래 서비스 이용 가입자가 늘거나 서비스 사업자가 이 망에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속도가 저하되는데 3D 스케일링 기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표준입니다. 이런 표준을 주니퍼가 가장 앞서 제품화 시킨 것이죠”라고 기술 우위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칩셋이 가장 먼저 장착되는 장비는 MX80이라는 에지라우터다. 에지라우터는 통신 사업자가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할 때 일반 가입자들의 접속 업무를 처리토록 지원하는 장비다. 주니퍼는 네트워크 망의 척추에 해당하는 백본 분야에서 처리 속도 경쟁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에지 분야를 노리고 있다. 국내의 경우 MX960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관련 카드를 장착하면 관련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신 상무는 “최근 네트워크 망에서 에지 분야가 상당히 중요해졌습니다. 고속도로를 예를 들어보면 가장 정체되는 곳이 톨게이트입니다. 일단 진입하고 나면 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죠. 네트워크 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사용자들은 단순히 PC로만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않죠. 노트북, 휴대폰, 핸드헬드 디바이스 등 수많은 기기들을 통해 접속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끊김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할 때도 에지 분야에 어떤 장비를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됩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변화 못지 않게 눈여겨 볼 대목은 주니퍼가 OS를 외부 장비 업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한 것이다. 신철우 상무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한 바 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버 운영체제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된 가장 결정적인 배경은 윈도우 서버 위에서 가동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을 확보한 것입니다. 운영체제의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윈도우 서버 위에서 가동되느냐가 시장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죠. 이제 주니퍼도 동일한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라고 밝혔다.
주니퍼는 주노스(JUNOS)라는 독자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다. 라우터, 스위치, 보안 제품들은 모두 이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작동된다. 그동안 대형 통신 사업자 일부에게 제공됐던 소프트웨어개발킷(SDK)와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일반 장비 업체들에게도 공개했다. 블레이드 스위치 전문 업체인 ‘블레이드네트워크테크놀로지’는 주노스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장비를 선보였다. 장비 업체의 경우 주노스 운영체제를 탑재한 자사만의 장비를 만들 수 있고, 네트워크 독립 소프트웨어 벤더들의 경우 이제 SDK와 API를 활용해 자사만의 특화된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런 전략은 세계 1위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를 겨냥한 것이다. 후발주자지만 우군을 빠른 시간 내 확보해 시스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가 시장 판도를 뒤집어 보겠다는 야심도 드러낸 것.
본사 차원의 이런 전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국내에 적용할 것인지가 한국주니퍼네트웍스의 과제다. 신철우 상무는 “이런 애플리케이션 중 몇개의 샘플이 있습니다. 전체 네트워크를 구성할 때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죠. 트러블 슈팅 관련 제품도 있습니다”라고 전하고 “통신사나 파트너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할 부분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보안 업체들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업체가 주노스 기반의 다양한 부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세심히 준비해서 내년도에 고객사와 파트너, 또 다른 업체들에게 자세한 사항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칩과 운영체제의 개방 전략은 주니퍼의 뉴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양 날개인 것으로 보인다. 주니퍼가 새로운 미래 10년을 위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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