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 시장, 지금은 거품 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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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D 프린팅은 과도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점보다 과대평가받는다는 얘기입니다.”

토드 그림 TA그림앤어소시에이츠(TA그림) 회장은 3D 프린터를 둘러싼 장미빛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TA그림은 토드 그림 회장이 12년간 3D 프린터 업계에서 일한 뒤 2002년 직접 세운 3D 프린팅 전문 컨설팅 회사다. 3D 프린팅 업계 베테랑인 그는 세계 최대 3D 프린터 회사 스트라타시스가 8월26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한 ‘아시아 태평양 3D 프린팅 포럼’에서 “3D 프린팅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토드 그림 TA그림앤어소시에이츠 회장은 3D 프린팅 시장에 거품이 꼈다고 꼬집었다

▲토드 그림 TA그림앤어소시에이츠 회장

“3D 프린팅 시장, 세 번째 거품기 들어섰다”

토드 그림 회장이 냉철한 판단을 내린 근거는 24년 동안 3D 프린팅 업계에서 일하며 봐온 흐름이다. 그림 회장은 3D 프린터가 과대평가받았던 시기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꼽았다.

1990년대에 3D 프린팅 업계는 층층이 재료를 쌓아 제품을 만드는 ‘쾌속조형’ 방식을 채택했다. CAD 도면을 바로 입체 조형물로 만들어낼 수 있어 모형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이런 이유로 모형 제작(프로토타이핑) 단계를 3D 프린터가 모두 대체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토드 그림 회장은 “산업디자이너에게 3D 프린터로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자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3D프린터를 도입하라는) 우리 제안을 거부했다”라고 술회했다.

2000년대 중반에 3D 프린팅 업계에는 두 번째 거품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제조업 분야였다. 기술적 완성도도 높아진 만큼 3D 프린터가 제조업 분야에 혁신을 일으키리라는 전망이 팽배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조업 분야에서는 CNC선반이나 밀링 기계가 3D 프린터보다 널리 쓰인다.

토드 그림 회장은 이런 현상을 ‘과열된 관심(over-hyped)’이라고 불렀다. 새로 나온 기술이 실제 가능성보다 과대평가받는 것은 3D 프린팅만 겪은 것이 아니다. 보편적인 일이다. 가트너그룹은 20여년 동안 기술 분야를 컨설팅하며 신기술이 공통적으로 겪는 이런 현상을 ‘주목도 사이클(hype cycle)’로 정리했다.

가트너가 발표한 '주목도 사이클(Hype Cycle)' 그래프

▲가트너가 발표한 ‘주목도 사이클(Hype Cycle)’ 그래프 (출처:위키미디어 CC-BY-SA Jeremy Kemp)

주목도 사이클이란 신기술에 사람의 기대가 얼마나 쏠리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기술 자체가 보급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기술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별 얘기가 없다.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관심이 폭발한다. 기존보다 더 자극적이고 과열된 전망도 쏟아진다. 신기술에 기대가 가장 높아지는 거품기다.

이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이 제품에 실망하고 거품이 꺼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토드 그림 회장은 “모든 기술은 거품 제거기를 거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품이 투자를 촉진하는 면도 있다”라며 “좋고 나쁨을 떠나 과도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평했다. 그림 회장은 거품이 꺼졌을 때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실용적인 솔루션이 나와서 (신기술이) 시장 성숙단계에 돌입하도록 도와줍니다.”

토드 그림 회장은 3D 프린팅 기술이 일반 소비자 시장(B2C)에서 거품기를 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집마다 3D 프린터를 1대씩 두게 되고 앞으로 엄청난 투자가 일어난다는 전망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 나타났던 거품과 판박이라는 뜻이다.

토드 그림 TA그림앤어소시에이츠 회장은 3D 프린팅이 세번째 거품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토드 그림 TA그림앤어소시에이츠 회장은 3D 프린팅이 세번째 거품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현재에 발 붙이고 미래를 준비하라

그림 회장이 보기에 3D 프린팅은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제조업의 틈을 메우는 보완적 기술에 가깝다.

“저는 미래를 현실적인 관점으로 봅니다. 3D 프린터로 인한 변화는 점증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3D 프린팅이) 제조업 혁명이나 파괴적 기술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청기 같은 특정 업계를 보면 3D 프린팅을 도입한 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청기 업계 전체를 보면 혁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3D 프린팅 시장의 미래를 비관한 것은 아니다. 토드 그림 회장은 3D 프린팅 시장이 “2025년까지 매년 25%씩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림 회장은 “3D 프린팅 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존 제조업의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어떤 것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기술을 독창적인 뭔가로 보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보는데, 저는 지난 역사 속에서 시장이 도입한 장비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현재에 기반을 둔 것이고, 현재는 전에 설치한 장비에 기반을 둔 것이죠. 워터제트 커팅, 레이저 등 여러 장비가 있습니다. 이런 장비는 (3D 프린터와) 공존할 겁니다. 장비값이 떨어지기보다는 같은 값에도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게 되겠지요.”

토드 그림 회장은 3D 프린팅 기술을 보수적으로 보되 공격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무작정 신기술을 좇지 마세요. 지금 나온 기술을 활용하되 미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사용할 수 있는 게 뭔지, 내일 쓸 수 있는 게 뭔지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 3D프린팅 분야는 분명 성장할 겁니다. 시장 규모로는 1년에 20~40%씩 성장하리라 봅니다. 아시아 시장은 성장폭이 더 클 겁니다. 기술적 가능성은 많지만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지침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손잡고 전세계적으로 협력해 정보를 나누고 지침을 준다면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