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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D 8TB 시대…우린 아직도 용량에 배고프다

2014.08.27

씨게이트가 8TB 용량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내놓았다. 하드디스크는 느리지만 여전히 발전 중이다. 속도도 빨라지지만 가장 확실한 변화는 역시 용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하드디스크를 컴퓨터에 직접 달아 쓰지 않게 됐다. 노트북과 PC에서 하드디스크가 차지하던 자리를 SSD에 내어주고 나니 쾌적하다. 용량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그 부분은 외장형 하드디스크로 채울 수 있다. 내 하드디스크들은 PC뿐 아니라 TV와 스마트폰, 인터넷 공유기와 짝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와 SSD는 아직까지 대체재보다는 보완재에 가까운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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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8TB 하드디스크는 그 자체로 놀랍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큰 하드디스크에 대한 욕심은 예전같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용량에 대해 무뎌지는 것 같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드디스크들이 있다.

역시 가장 처음 써본 경험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내가 처음 하드디스크라는 저장 장치를 썼던 것은 1990년 접했던 XT컴퓨터로 용량은 20MB였다. 지금은 작아보이지만 당시에는 플로피디스크 한 장에 360(kB)킬로바이트를 담을 수 있었으니 이 플로피디스크 55장의 정보를 담는 엄청난 용량이었다. 속도도 상대적으로 매우 빨랐다. 사실 그 충격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같은 프로세서를 쓴 다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처리가 빨랐다. PC 성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늘 스토리지였다.

이후 하드디스크는 AT컴퓨터로 불린 286 PC부터 대중화되면서 슬슬 PC의 주요 저장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용량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그 컴퓨터 용량이 얼마야?”라는 질문이 PC를 고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드디스크에 대해 또 한번 놀라게 된 건 1997년 IBM 노트북을 구입했을 때다. 랩톱, 노트북이라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2.5인치 하드디스크는 1GB(기가바이트)를 담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이렇게 큰 게 필요하냐고 묻기도 했고, 스스로도 이 광활한 공간을 다 쓸 수나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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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공간은 다다익선일 수밖에 없다. 1996년부터 슬슬 불어온 MP3 바람은 하드디스크를 채우기에 좋았다. PC통신이 대중화되고, 컴퓨터가 온라인에 연결되면서 하드디스크 공간은 더 빠른 속도로 채워지게 됐다. 데스크톱PC에 꽂았던 5GB 하드디스크를 채우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뭔가를 내려받아 하드디스크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1999년 ADSL과 케이블로 대변되는 초고속 인터넷이 퍼지면서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드디스크 한 개가 아니라 2~3개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2000년 초, ‘100GB 하드디스크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기사도 기억난다.

하지만 하드디스크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일단 속도 문제다. 지금은 대중화된 7200rpm 하드디스크는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효과를 주었다. 이 플래터 회전 속도 경쟁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 WD는 1만rpm의 ‘랩터’, 씨게이트는 1만5천rpm의 ‘치타’ 같은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은 가격에 비해 성능면에서 별 이점이 없기 때문에 사라지긴 했지만 이와 함께 하드디스크-PC 사이의 통신 속도가 개선됐다. 시리얼 ATA의 버스 속도는 병목을 줄이는 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결국 하드디스크는 초당 100MB대 전송률의 벽을 뚫기 어려웠고 그 이상은 SSD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하이브리드 타입의 하드디스크로 진화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SSD를 이길 수는 없다.

대신 하드디스크는 본격적인 용량 확장에 들어간다. 이것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하드디스크는 소재와 헤드 공정 진화로 꾸준히 기록 밀도를 높여 왔지만 평면 플래터에 쓸 수 있는 기록 밀도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해결한 기술이 수직 기록 방식이다. 눕혀서 공간을 차지하던 기록 소자를 수직으로 세워 플래터 자체 면적 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주택을 헐고 아파트를 지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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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을 늘리는 것은 곧 하드디스크의 존재 이유였다. 그리고 하드디스크 용량이 어떤 시점을 넘는 순간마다 세상은 변화가 있었다. 다양한 용도에 대한 고민은 최근의 일이다.

하드디스크가 PC 외 영역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팟’이다. 스티브 잡스는 플래시메모리를 쓰던 음악 플레이어의 가장 문제점이었던 저장 공간을 하드디스크로 풀어냈다. 2001년 이 음악 플레이어가 5, 10GB의 저장 공간에 음악을 담아낸 결정이 지금의 애플을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후 하드디스크는 꼭 PC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주크박스, TV, 자동차, CCTV 등 많은 기록장치를 대체해 나가는 것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PC 시장 자체가 늘 위기론에 휩싸여 있었고, SSD는 빠르게 따라왔다. 업계로서는 하드디스크를 떨어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 저장공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TV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디지털카메라는 고해상도의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내면서, 하드디스크는 SSD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갖고 있다.

최근 씨게이트나 WD를 비롯한 하드디스크 업체들이 시장을 넓히기 위해 기업용, 보안용, NAS용 등 하드디스크를 구분하고 있는 흐름이다. 8TB 하드디스크의 출시를 알리는 자료에도 기업과 데이터센터 등을 주 고객으로 삼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 하드디스크를 바라보는 첫번째 시선은 용도가 아니라 ‘큰 하드디스크’다. SSD가 있지만 여전히 하드디스크를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큰 용량’에 맞춰져 있다.

그런 점에서 씨게이트의 8TB 하드디스크는 ‘아직 하드디스크는 살아 있다’라는 의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크기와 속도, 소음 등의 이슈가 바뀌는 동안에도 저장공간 그 자체는 하드디스크의 기본 요소였다. 그 기술이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8TB 제품 소개는 용도보다도 용량을 늘리는 기술과 그에 대한 비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곧 다가올 10TB 시대를 여는 데 대한 기대도 빠질 수 없다. 데이터센터 유지비용, 스토리지 스케일아웃 등 하드디스크 용도는 이미 충분히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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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