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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의 책읽기] 저소득층이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by 임주환 | 2009. 12. 11

fortune<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C.K.프라할라드 지음. 유호현 옮김. 럭스미디어 펴냄.

2007년 여름. 경제부장이 나를 부르더니 여름휴가를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는 후배기자와 인턴을 데리고 3주째 동대문시장 기획기사를 취재하던 때였다. 상가관리를 한다는 ‘어깨’들과 도매상인들(이 사람들은 낮밤이 바뀐 채로 일한다)을 만나느라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어떻게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반항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부장이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대신 인도 다녀와라. 9박10일짜리 출장이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델리 행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현지취재를 위한 벼락치기 공부 삼아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었다. ‘사회적 문제의 기업적 해결 탐방’을 모토로 인도의 사회적 기업들을 방문하는 대학생들을 동행 취재하는 일정이었지만, 나는 당시까지 이런 문제에 대한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윤을 목표로 한 기업이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탐방단 멤버들이 추천한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를 읽는 내내 나는 낯설고 불편했다. 무릎을 치고 탄복하게 만드는 구절을 만나기도 했지만, 때로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신념에 어깃장을 놓는 발언들과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는 지금도 나는 저자의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가 한번쯤 읽어볼만한 ‘문제적 도서’라는 점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기에 기업이 전 세계의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면 막대한 이익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면서 동시에 빈곤구제라는 ‘폼 나는 전리품’까지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저소득층이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세계 인구 중 40억 명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프라할라드는 이들 저소득층이 엄청난 구매력을 갖고 있으며, 이 시장에 적응한 기업들은 엄청난 혁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매력을 선진국 개개인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소득층은 수적으로 월등하게 많다. 또한 저소득층은 소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토지에 대한 법적권리가 없는 이들은 소득을 위생시설이나 주거환경 개선에 쓰는 대신, 얼핏 사치품처럼 여겨지는 품목들을 사는 데 쓴다. 인도 뭄바이 외곽의 다라비 판자촌을 보자. 전체가구의 85%가 TV를 갖고 있으며, 21%가 전화기를 갖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빈곤층은 그들 수입의 7% 정도를 통신료로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해 부자들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이다. 다라비 판자촌의 상수도 요금은 같은 도시의 부자동네보다 37배 비싸다. 이 지역에 은행이 진출해 전통적인 부유층에 대한 이율(10%)보다 비싼 25%를 매기더라도 주민들 입장에선 사채업자에게 600~1000%의 고이자를 빌리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된다. 요컨대 ‘시장’이 작동하면 기업과 저소득층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게 프라할라드의 주장이다.

어떤 기업들이 저소득층 시장에서 성공하는가?

먼저 혁신이라고 부를만한 가격효과가 필요하다. GSM휴대전화의 경우 인도에서 1000달러에 이르던 가격이 300달러로 떨어지자 판매가 상당히 증가했다. 그런데 휴대전화 판매업체 릴라이언스가 선불로 10달러를 납입한 후 매달 9달러50센트를 내고 전화기를 사면 100분의 무료사용 시간을 주는 판촉을 벌이자 10일 만에 100만 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안과시설인 아라빈드(AECS)의 경우, 미국의 1/10~1/60 수준인 50~300달러만 받으면서도 매년 20만 건의 최첨단 백내장 수술을 시행한다. 게다가 환자 중 60%는 공짜로 시술받는다. 의사 한 사람과 기술자 두 사람으로 이뤄진 한 팀이 하루 50건 이상의 수술을 해내는 ‘프로세스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부를 창조하기 위한 생태시스템의 구축이다. 유니레버의 인도 자회사인 힌두스탄 유니레버를 들여다보자. 이 회사는 시골지역에 2005년 기준으로 100만명의 여성 직판사업자(우리나라의 야쿠르트 아줌마를 생각하면 되겠다)를 두고 있는데, 이들을 통해 전기도 안 들어가고 게릴라들이 들끓는 ‘깡촌’에까지 퍼져 들어가 비누나 샴푸 같은 제품들을 판다. 더불어 이 여성들은 농사를 짓는 남편들보다 갑절의 수입을 올리는 경제적 자립세력으로 성장한다.

담배회사 BAT의 인도 자회사인 ITC는 농부들에게 콩을 수거해 가공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에 성공했다. 각 마을에서 산찰라크라고 불리는 성공한 농부들을 뽑아 이들에게 공용컴퓨터를 배포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지방 경매인들에게 휘둘리고 무시 받던 농부들은 제값에 콩을 팔 수 있게 됐고, ITC는 콩 1톤당 300루피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

이런 기업들의 성공이 과연 세계를 바꿀 것인가?

프라할라드는 낙관적이다. 일단 기업들은 특정지역에서 이룬 혁신을 글로벌 시장 장악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유니레버는 인도에서 개발한 제조공정, 홍보기법 등을 브라질에 적용해 ‘알라’라는 브랜드를 런칭했고,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이 거둔 빈곤층 소액대출 방식의 성공은 2005년 현재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1만7000여개 이상의 금융기관 및 지점들에 적용되고 있다. 세계적 확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소득층은 ‘시장경제’를 습득함으로써 자존감과 거래역량을 키웠고, 이는 IT기술의 확산과 맞물려 사회전체의 부패를 경감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담긴 내용들에 대해 반박을 쏟아내자면 상당한 분량의 글을 더 써야한다. 일단 책에서 칭찬해마지않는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프라할라드가 지난 2000년부터 상당한 보수를 받고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는 회사다. 또 내게는 책에서 언급한 사례들 중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 유니레버처럼 이윤을 앞세운 글로벌기업이 아니라, 아라빈드를 비롯해 빈곤층 구제라는 사명(mission)에서 출발한 ‘사회적 기업’들의 이야기였다.

또한 그는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민영화나 세계화를 ‘숭배’하는 편견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한다. 아마 그가 너무 복잡한 인종과 언어를 갖고 있고, 관료들의 부패지수는 다른 국가들을 훨씬 뛰어 넘을 만큼 높고, 아직도 시골에선 마오주의나 이슬람 게릴라들이 출몰하는 인도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책의 가치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일단 그는 경영학자이고, 그의 책은 기업경영의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이 참으로 많다. 또 고상한 모델을 찾느라고 손 놓고 있기에는 세계의 빈곤상황이 너무나 절박한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기업의 이윤추구가 저소득층 구제에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모델(궁극적으론 정부-NGO-기업이 결합된 일종의 ‘칵테일 처방’)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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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노동, 사회적 기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직 신문기자입니다. '게으름뱅이의 전망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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