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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있었다면 5.5인치 아이폰은 없었을까?

2014.09.12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는 애플의 9·10번째 스마트폰이다. 애플은 큰 결단을 내렸다. 그 동안 굳게 걸어잠갔던 화면 크기의 빗장을 풀었다. 그리고 4.7인치와 5.5인치 2가지 제품을 내놓았다. 화면을 바꾼 것을 팀 쿡이 고집을 꺾은 것으로 해석할까? 스티브 잡스가 있었으면 5.5인치 아이폰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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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그 동안 고집스럽게 내세웠던 화면 크기 정책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이미 2년 전 애플은 아이패드의 화면 크기를 줄였고, 이번에는 아이폰 화면 크기를 늘렸다. 화면에 대한 이슈는 애플의 고집과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이 회사가 어떻게 제품을 진화시켜 가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애플은 꽤 오랫동안 3.5인치 화면을 이끌어 왔다. 이것만 해도 피처폰에 비해 엄청나게 큰 화면이었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더 큰 화면을 전면에 내세워 아이폰을 공격했다. 2010년 애플은 ‘아이폰4’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내면서 기가막히게 경쟁자들의 뒷통수를 쳤다. ‘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해상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화면 크기에 대한 고집을 지켰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계속해서 큰 화면 경쟁을 펼쳤다. 결국 애플은 2012년 ‘아이폰5’를 내놓으면서 화면 크기를 조금 늘렸다. 하지만 이건 화면 크기를 늘렸다고 말하기엔 다소 애매하다. 가로폭은 그대로 두고, 세로 길이만 늘렸다. 그 길이는 16대9였다. 더 큰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HD 콘텐츠를 보는 도구라는 의미다. 나는 사실상 애플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7가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단 한번도 화면 크기를 바꾸지 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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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큰 스마트폰을 내놓는다? 애플은 엄지손가락 하나로 화면 전체를 터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고집을 깨야 했다. ’10인치 아래 태블릿은 DOA’라는 이야기만큼이나 애플을 옭아매는 프레임이다.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크게 느껴지고 4인치 아이폰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큰 스마트폰에 익숙해졌고, 애플에도 더 많은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2011년 삼성전자가 처음 ‘갤럭시노트’를 내놓았을 때는 모두가 이 ‘엄청난 크기’에 놀랐다. 그 크기가 5.3인치였다. 이제는 5.3인치는 패블릿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할 정도다. ‘갤럭시S’가 이 크기에 나온다. QHD 해상도가 나오면서 5.5인치 스마트폰이 아무렇지 않게 팔리는 시대가 됐다. 그 한계가 6인치를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애플은 딱 이럴 때 움직이는 회사다. 소비자들이 뭘 원하는지를 먼저 알아서 꺼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큰 변화가 필요하거나 정말 간지럽다고 느끼는 것들은 끌 수 있는 때까지 끈다. 하지만 더 늦추면 안 되는 정확한 타이밍에 꺼내놓는다. 소비자들은 “내가 원했던 게 이것”이라는 감정을 절정으로 느끼곤 한다. 물론 그 중 일부는 개발 스케줄에 쫒겨 뒤로 밀려나거나 나중에 들어온 것도 있지만, 대체로 이 ‘타이밍’을 지킨다. 초기 아이폰만 봐도 복사·붙여넣기가 없었고, 스티브 잡스는 앱스토어를 만들 생각조차 없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차근차근 목표를 밟아간다. 결국 애플은 시장에 귀를 틀어막고 제품을 강요하기만 하는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몇몇 결정은 극적인 타이밍을 위한 것인지 고집 때문에 늦춰진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언젠가는 한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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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팀 쿡의 애플은 또 다시 서서히, 흥미롭게 변하고 있다. 애플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비밀스럽지만 조금 더 소비자 접점에 가까이 있다는 평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가 터지면 조심스럽긴 하지만 특정 상황에 대해 아니라고 우기기보다는 빨리, 그리고 직접 진화에 나선다. 직접 미래를 이야기하진 않지만 시장이 원하는 제품에 대해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준비한다. 눈치가 좀 빠르다면 그걸 인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팀 쿡의 스타일은 제품 종류에서도 나온다. 팀 쿡은 지금은 경영 일선에 나와 있지만 그의 전문 분야는 공급망 관리다.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과 고통스러울 정도의 품질 관리를 해 왔다. 최근 애플의 제품 가짓수는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난해에 내놓은 아이폰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여러 통신망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신 스펙에 대한 통신사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것도 있다.

그간 이용자들이 아이폰의 화면 크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화면 크기를 통한 절대적인 앱 구성에 있었다. 화면 크기를 바꾸면 당장 앱이 틀어진다. 그것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 해상도를 4배로 올린 것도, 화면 비율을 바꾼 것도 결국 7년 전에 만든 앱도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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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큰 화면에 대한 대비를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아이폰5를 내놓고, 맥북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쓰면서 애플은 앱을 개발할 때 픽셀 단위의 앱 설계 방식을 버리고 상대적인 위치를 이용한 레이아웃을 쓰도록 방식을 바꿨다. NHN넥스트의 김정 교수는 지난 6월 애플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판올림한 X코드 자체가 어떤 화면 크기, 어떤 화면 비율의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다는 힌트”라고 설명한 바 있다. 비슷한 이야기를 지난해 WWDC 직후에도 나누었던 바 있다. 큰 화면에 대한 준비를 오랫동안 하고, 제품을 드라마틱하게 꺼내놓는 스타일은 스티브 잡스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꺼내놓았을 때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계에 대한 준비? 그것 역시 화면의 변화에서 시작해서 개발자들을 위한 워치킷을 공개하는 방법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플랫폼을 쓸 하드웨어를 꺼낸다. 아이튠즈-아이팟, 아이폰-앱스토어, 레티나 디스플레이, 헬스킷 모두 같은 흐름이다.

두 CEO의 방법은 다른 것 같지만, 포장이 다를 뿐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스티브 잡스의 흔적이 지워진 팀 쿡의 애플을 바라보고자 했는가? 오히려 파트너를 잘 설득해 엄청난 규모의 비즈니스를 단번에 잡는 그 근본적인 애플의 힘과 성장동력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했을 따름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화면을 바꾼 것을 팀 쿡이 고집을 꺾은 것으로 해석할까? 스티브 잡스가 있었으면 5.5인치 아이폰은 없었을까?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