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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데이터 공개 운동, 왜 하냐면요…”

2014.09.15

지난 4월, 독일에서는 재미있는 아이디어 경진대회(해커톤)가 열렸다. 대회 이름은 ‘코딩다빈치’. 위키백과, 열린지식재단, 문화유산 보호단체 등이 이 대회를 주관했다. 해커톤 주제는 ‘박물관·미술관에 있는 문화예술작품을 디지털로 바꿔보자’였다. 보통 해커톤은 하루 동안 진행되곤 하지만, 코딩다빈치는 3개월에 걸쳐 열렸다. 코딩다빈치를 이끌었던 헬렌 한 독일열린지식재단 활동가는 인터뷰를 통해 후일담을 들려줬다. 헬렌 한은 9월16일 한국을 방문해 예술계에 불고 있는 오픈운동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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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한 독일열린지식재단 활동가

코딩다빈치는 ‘오픈글램(GLAM)’운동을 지향하는 대회다. 오픈글램에서 글램은 미술관(Galeries,), 도서관(Libraries), 기록보관실(Archives), 박물관(Museums)의 앞 글자를 딴 단어다. 즉, ‘글램’에서 저장된 자료들을 공개하자는 운동이다. ‘오픈컬처 데이터’를 넓히자는 얘기다.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을 공개한다니, 감이 잘 안 온다. 특정 화가의 정보를 공개하는 걸까, 아니면 옛 문서를 스캔해서 보여주는 걸까? 코딩다빈치는 단순히 예술 관련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쉽고 재밌게 문화예술 콘텐츠를 접하게 돕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오픈컬처 데이터엔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은 작품들, 사진, 그림에 메타데이터까지 포함된다. 메타데이터란 특정 작품에 대한 설명, 작가명, 생산연도, 재질 등의 설명이다. 아래 코딩다빈치 해커톤의 결과를 직접 살펴보자.

■ 오래된 베를린(Alt-Berlin, alt는 독일어로 ‘늙은, 오래된’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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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베를린 캡처화면 (출처 : 오래된베를린 깃허브)

베를린시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 사용자는 지도 위 버튼을 이용해 14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도를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당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지도에는 사진과 추가 설명이 뜬다. 예를 들어 “이 건물은 세계 2차대전 때 폭격을 맞아 부서졌다”거나 “해당 지역의 개발이 활발해, 관련 사진이 많다”라는 식의 설명을 볼 수 있다. 베를린시미술관은 이 앱에 필요한 지리정보와 사진을 무료로 공개했다. ‘오래된 베를린’은 아직 프로토타입만 공개됐으며, 2015년에 완성 작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헬렌 한은 “베를린시미술관은 시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소개하는 미술관”이라며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베를린시의 역사를 보여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 인사이드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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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19세기’ (출처 : 공식 홈페이지)

나치정권(1938년~1941년)때 활동이 금지된 작가들의 서적 및 예술작품을 보여주는 웹사이트. 작가에 대한 설명과 그림, 동영상, 지리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다. 나치정권 당시 해당 작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왜 도망가야 했는지, 언제 이사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등이 나온다. ‘인사이드 19세기’는 위키백과, 미국의회도서관, 오픈메타데이터레지스트리,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활용했다. 헬렌 한은 “나치정권 당시 특정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돌아보는 효과를 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새소리 알람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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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코딩다빈치 홈페이지

독일에 있는 새들은 어떤 소리를 낼까. 코딩다빈치에서 나온 알람 앱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알람소리는 새소리다. 사용자는 화면에 나오는 4마리 새 그림을 보고, 들리는 소리에 알맞은 새를 골라야 알람을 끌 수 있다. 새소리는 독일 자연사박물관에 저장돼 있던 오디오 자료를 활용했다. 자연사박물관은 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 소리 파일을 외부에 공개했다. 자연사박물관은 과거에도 관련 데이터를 공개했지만, 이번 코딩다빈치 결과물로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었다.

■ 사이버비틀

☞사이버비틀 소개 동영상 보기

사이버비틀은 딱정벌레를 닮은 미니로봇이다. 사이버비틀은 음악에 반응하고 춤도 춘다. 소리가 나서 마치 살아있는 곤충같이 보인다. 딱정벌레 모양은 베를린달렘식물원에서 제공한 곤충 표본그림을 활용했다.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이 음악과 벌레소리 파일을 제공했다. 사이버비틀은 TV 화면과 연동되는데, 이때 TV 화면에 다른 곤충 표본들이 함께 나온다.

이번 해커톤에 참여한 인원은 150여명. 개발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헬렌 한은 “예상한 것보다 2배 정도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라며 “참가자들은 8~10주 정도 집중 작업했다”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어떻게 코딩다빈치라는 낯선 대회에 참여했을까. 혹시 독일에 오픈글램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헬렌 한은 “한국과 비슷하게 독일에 아직 오픈글램 문화가 퍼지지 않았다”라며 “미국과 네덜란드같은 나라에 오픈글램이 그나마 퍼져 있고, 독일은 이제 막 시작 단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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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다빈치 결승 행사 사진(출차 : 코딩다빈치 트위터 계정)

“참가자들은 굉장히 다양했어요. 혼자 작업하는 사람도 있고요. 팀으로 작업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학생들은 오픈데이터가 뭔지도 모르고 참여했어요. 평소에 해커톤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요. 우연히 인터넷에 나와 있는 공고를 보고 참여한 사람도 있었죠. 참가자들은 이제껏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보였어요. 예술계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자극한 셈이죠. 또 여느 해커톤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나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있어 만족해했어요.”

코딩다빈치에선 총 26개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중 5개 팀이 우승했다. 코딩다빈치는 우승자 상품으로 돈을 주지 않았다. 대신 이번 해커톤으로 얻은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품은 여행티켓이었다. 예를 들어 오픈글램 문화가 잘 퍼져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권을 제공해, 관련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여행티켓도 제공했고, 오픈글램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는 티켓도 있었다.

그동안 예술계에선 공유 운동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창작활동엔 대부분 저작권이 생기고, 자연스레 이를 보호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오픈글램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헬렌 한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계자와 작가들은 오픈글램 운동 취지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작품이 혹시 이상한 방향으로 사용될까봐 두려워한다”라고 설명했다.

“코딩다빈치와 협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열린 마음이었지만, 처음엔 참여를 망설이기도 했어요. 소장 자료를 공개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반대도 생각해봐야 해요. 문화 예술작품들이 공개됐을 때 긍정적 측면이 많거든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서 새로운 활용법이 나오고,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죠. 이번 코딩다빈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자, 많은 박물관 미술관 관계자도 데이터 공개에 대해 만족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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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글램은 많은 사람에게 문화유산 및 예술작품을 제공해 과거 수동적인 관람문화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헬렌 한은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작품을 접하면, 동시에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을 더 귀중하게 여길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과거에 문화유산 및 문화예술 작품은 특정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었어요. 박물관 소장품이나 큐레이터들이 정한 작품과 자료만 볼 수 있었죠. 인터넷은 그런 문화를 바꿨어요. 이제 온라인이란 도구로 누구나 그러한 작품을 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어요. 실제로 문화유산과 작품들은 원래부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두의 것이에요. 그것으로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헬렌 한은 9월16일 서울에서 열리는 ‘CC 코리아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오픈글램 운동과 코딩다빈치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그녀는 “오픈글램 운동을 시작하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안다”라며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가치 있다는 것을 코딩다빈치 사례를 통해 알려드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 코딩다빈치 해커톤 결과물 보기

j.lee.reporter@gmail.com

오픈소스 기술, 프로그래머의 삶 그리고 에듀테크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실행하고 노력하려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그러한 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