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을, 정부를, 경제를 해킹하자”

가 +
가 -

“해킹은 솔루션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시스템의 문제를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진짜 스마트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남이 생각지 못한 멋진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해킹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C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윤종수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해킹은 파괴하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CC코리아가 9월16일 서울 종로 페럼타워에서 연 ‘2014 CC코리아 국제 콘퍼런스‘ 무대였다.

윤 변호사는 9년 전 CC코리아를 처음 꾸린 주인공이다. 한국정보법학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윤 변호사(당시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는 2002년 미국에서 일어난 저작권 공유 운동 ‘CC’를 보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5년 3월 한국정보법학회 내부 프로젝트로 CC코리아 활동을 시작했다. CC코리아는 2009년 1월 별도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윤 변호사는 인터넷이 발전한 덕에 사람들이 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연결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사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갖게 됐다. 사회 구성원이 그 사회의 문제를 정부에 떠맡기지 않고 않고 직접 해결하려 나서는 ‘시민해킹(Civic hacking)’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부 실패+국민의 노력=시민 해킹

“예전에는 정부를 ‘자판기 정부’라고 했어요. 자판기가 물건 팔 듯 국민이 누르면 원하는 서비스를 잘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어요. 이런 정부의 기능에 가끔 문제가 생깁니다. 자판기를 눌렀는데 원하는 게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럴 때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자판기를 발로 차거나 화를 내곤 주인이 조치를 취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사람들이 생각했죠. ‘우리는 연결돼 있다. 우리가 모여서 해킹하면 이 정부가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서로 연결된 수많은 해커가 모여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윤종수 변호사는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열린 ‘전국 시민해킹의 날’ 행사를 소개했다. 해커가 정부 곳곳에서 공무원과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시민해킹 행사다. 한국에서는 ‘코드나무‘가 비슷한 행사를 열었다. 코드나무는 시민 해킹 행사를 열며 얻은 경험을 ‘렛츠리드‘라는 전자책으로 정리해 공개해뒀다.

저작권 제도+시민해킹=CCL

시민 해킹 운동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다른 분야는 저작권이다. 윤종수 변호사는 창작자를 보호하고 창작 활동에 대가를 보장해주려고 나온 저작권 제도가 인터넷 시대에 폭발하는 창작성을 발목 잡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이라는 시스템이 있었어요. 물론 창작자를 보호하고 인센티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죠. 잘 돌아가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제를 일으키키 시작해요. 저작권 시스템은 항상 이렇게 얘기합니다. ‘허락 받아라, 아니면 큰일 난다.’ 이런 경직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상당했습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바탕이 만들어졌는데, 애초에 있던 저작권 제도는 이런 문화를 부정했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0년대 초 로렌스 레식 교수를 비롯한 법률가와 개발자가 모여 저작권 제도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저작권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공유 조건을 명시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다. 윤종수 변호사는 CCL을 처음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CCL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법률가 중에도 창의적인 사람이 있구나’였어요. 저는 법률가는 창의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창의적인 해법이 나온 거예요. 법을 고친 것도 아니었죠. ‘허락 안 받으면 큰일 난다’라는 사람에게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질문을 던지고, 다른 식으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를 준 거예요. ‘조건을 지키세요, 그럼 자유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거죠.”

CCL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가장 유명한 예는 누리꾼이 직접 만드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다. IT 전문매체 <블로터>는 출처를 밝히고 본문을 편집하지 않으면 기사를 비상업적으로 맘껏 쓸 수 있도록 CCL 조건을 달아뒀다. 음악 창작 그룹 ‘예이존‘은 앨범을 웹사이트에 CCL 조건으로 공개한다.

자본주의 경제+시민해킹=공유경제

윤종수 변호사는 시민 해킹 운동의 다른 유형으로 공유경제를 꼽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경제적 원리, 자본주의가 갖는 장점 많습니다. 시스템 훌륭하고 합리적이고 나름 이론적으로 단단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갖는 문제점도 있죠. 자원의 효율적 분배, 과도한 생산,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소비나 자원 이용에 사람이 소외되는 현상,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에서 사람간 관계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 이걸 해킹하고자 하는 게 공유경제입니다.”

공유경제의 사례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방이나 빈집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 양복을 빌려줌으로써 면접 때나 입으려고 비싼 옷을 사지 않도록 해준 ‘열린옷장‘, 자동차 공유 서비스 ‘쏘카‘, 현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맞춤형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마이리얼트립‘ 등이다. 윤종수 변호사는 “인터넷 상의 연결이 실물경제로 연결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킹하려는 것이 공유경제”라고 설명했다.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윤 변호사는 발표 끄트머리에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문제를 고치려는 의지를 지닌 우리 모두가 해커”라며 “이 모든 변화가 여기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의 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해킹 운동에 힘써달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네티즌의견(총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