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아톰표 안드로이드의 서막, 델 ‘베뉴8 7000’

2014.09.22

안드로이드와 아톰의 결합은 어디까지 왔을까. 아직은 조금 더 멀리 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델이 선보인 ‘베뉴8 7000’시리즈는 그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디자인이다.

애초 안드로이드라고 하면 ARM 위주의 프로세서를 떠올렸고, 인텔은 윈도우 위주의 제품이 주력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ARM 프로세서로 윈도우를 돌리려고 했고, 인텔은 x86 프로세서로 PC 위주의 전략을 펼쳤지만 안드로이드용 아톰 프로세서를 내놓고 구글도 x86용 안드로이드 지원을 시작했다. 그게 2011년의 이야기다.

2

제 짝 찾지 못한 아톰의 방황

그로부터 거의 3년이 지났지만 상대적으로 인텔의 프로세서를 쓴 안드로이드 기기는 빛을 못 봤다. 프로세서의 성능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초기에는 안드로이드의 응용프로그램 호환성과 배터리가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는 공정과 아키텍처의 개선으로 빠르게 좋아졌고, 최근 인텔이 내세운 실버몬트 아키텍처의 아톰 프로세서는 성능과 전력 소비면에서 ARM 프로세서들과 경쟁하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성능에 있어서는 장기적으로 x86이 더 유리했지만 문제는 조심스러운 제조 시장이었다. 이렇다 할 만한 완제품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름 있는 회사라면 모토로라나 레노버가 스마트폰을 내놓았던 바 있고 태블릿은 대부분 저가 제품이었다. 칩 성능은 좋다는데, 완제품은 별로였다. 인텔도 PC 시장과 다른 대접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3

인텔은 IDF의 기조연설에서 ‘베뉴8’을 선보였다. 그것도 델의 CEO인 마이클 델이 직접 들고 나섰다. 베뉴8은 이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여느 ARM 프로세서와 경쟁할 수 있는 기본틀을 갖춘 느낌이다. 이 8인치 태블릿이 주는 첫 인상은 ‘얇고 견고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델이 만들었던 ‘아다모’ 노트북과 흡사하다. 알루미늄 혹은 마그네슘 재질이지만 두께는 아주 얇고 베젤도 거의 없다.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성능과 디자인적인 면에서 많은 제품들이 나와 있는데, 베뉴8의 경우 디자인과 마감은 현재 나와 있는 태블릿 중 손에 꼽을 만큼 잘 만들었다.

화면은 AMOLED를 썼는데 직접 봤을 때 LCD인줄 알았을 정도로 색 표현도 자연스럽다. 두께와 테두리를 얇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디스플레이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해상도는 1920×1080이다.

기능보다 가치 있는 제품 원해

눈에 띄는 점이라면 3개나 달린 카메라 렌즈를 들 수 있다. 이 3개의 카메라가 동시에 여러 가지 초점으로 사진을 찍어 하나로 합친다. 이 기능은 촬영 이후에 초점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리트로 카메라와 비슷한 원리다. 몇 가지 사진을 찍어봤는데 상황에 따라 잘 될 때도, 어색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다.

앱 호환성이나 성능에 대한 테스트를 상세하게 해볼 수는 없었지만, 따로 말하지 않으면 어떤 프로세서를 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릿빠릿하다. 기기에 설치되어 있던 앱들은 매끄럽게 잘 돌았다. 아톰이라는 브랜드가 늘 끌어안고 있는 ‘형편없는 성능’은 보기 어렵다. 이전에 테스트했던 아톰 기반 안드로이드 태블릿들과 비교해도 매끄럽게 작동했다.

이 제품에 대해 하려는 이야기는 폼팩터에 대한 것이다. 아톰과 ARM의 전쟁은 아직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 동안 저전력이 중심이었던 ARM은 한계 전력 안에서 성능을 높이는 데에 신경을 써 왔다. 반면 고성능이 중심이 됐던 인텔의 x86은 꾸준히 전력 소비를 낮춰 왔다. 이 두 방식의 기술적인 접점은 거의 맞닿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시장은 인텔의 스마트폰을 받아들여주지 않고 있다.

4

‘관심은 있지만 제품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중국 기업들이 아톰 스마트폰에 뛰어들었다. 인텔과 PC시장에서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PC 제조사들이 일부 아톰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하지만 상품성은 또 다른 문제다. 최근 2년 동안 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중에서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넥서스와 경쟁할만한 번듯한 제품은 거의 보기 어려웠다.

고급화에 대한 목마름

태블릿에 대단한 기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갖고 다니기 쉬우면서, 다양한 앱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화질과 배터리 성능이 좋으면 된다. 어디에서든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좋은 디자인이 갖춰져야 한다. 물론 교육용 태블릿이나 산업용처럼 외관이 기능적인 제품도 있지만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하는 고만고만한 제품들만 쏟아지는 상황에서 성능 외에 디자인적으로 잘 만든 제품이 주는 가치와 경쟁력도 중요한 문제다. 델 베뉴8 7000 시리즈 태블릿은 아톰이 이제 제조사가 신경 쓰는 제품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7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델에도 적용된다. 저가 PC를 만들던 가치관으로 쏟아내는 저가형 태블릿들은 대체로 쓴맛을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안드로이드 태블릿의 가격 한계점에는 구글이 직접 만드는 넥서스가 있다. 그 동안 델의 제품들은 기능성이나 효율, 가격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제품 자체가 매력적이었냐는 질문에는 흔쾌히 답하기 어려웠다. 그 델이 한 차례 도전했던 것이 바로 아다모 노트북이었는데, 결국 고급화는 경기 불황과 함께 흐지부지돼 버렸다. 하지만 그 유전자는 ‘주식회사’ 딱지를 떼어낸 델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꼭 아톰이 아니었어도 이 제품은 반가웠을 게다. 하지만 전통적인 PC 강자 기업들이 어쩌면 조심스럽게 내어놓은 제품을 보노라니 ‘할 수 있었잖아’라는 뒤끝도 남는다.

좋은 제품을 고르는 기준에는 많은 기능이나 비싼 부품이 전부는 아니다. 단순히 잘 만든 디자인과 빠른 성능, 그게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모바일 기기의 기본이 아닌가. ‘가격 대비 성능비’만큼 무서운 말도 없다. 성능을 가격으로 매긴다니, IT기기는 오로지 성능만이 전부인 걸까. 싼 제품만큼 다른 한편으로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인정받고 발붙일 수 있는 시장의 다양성이 아쉽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