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잃은 당신께, 치유의 도서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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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난민캠프를 돕는 프로젝트를 맡았다면, 무엇을 그들에게 주고 싶은가? 음식, 건물, 교사, 물, 책? 프랑스에는 지식과 문화를 난민캠프에게 전달하는 단체가 있다. 국경없는도서관(Libraries Without Borders, LWB)이다. 이들은 난민캠프에 ‘아이디어박스’라는 큰 컨테이너를 제공한다. 큰 박스를 분해하면 작은 도서관이 생긴다. 5~6명이 18분 정도만 작업하면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 이 작은 도서관은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할 수 있는 컴퓨터실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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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박스(출처:공식 홈페이지)

무게 800kg, 노트북과 e북 리더 갖춘 이동식 도서관

아이디어박스는 무게 800kg 정도의 컨테이너 박스다. 박스 구성품은 버릴 게 없다. 조립하면 책상과 의자, 책꽂이 등으로 변신한다. 박스 안에는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가 들어 있다. 일단 태블릿PC 15개와 노트북 4개가 있다. 이 기기들은 인공위성이나 3G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터넷을 연결한다. 사실 난민캠프에선 인터넷을 연결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미 기기에 콘텐츠가 담겨 있다. 여기에 무료 온라인 강의 플랫폼 ‘칸아카데미’가 제공하는 온라인 강의와 위키백과 데이터가 있다. 오픈스트리트 지도, 테드에서 제공하는 강의 동영상도 들어 있다. 또한 50개의 전자책 리더기가 있고 그 안에는 전자책 5천권이 담겨 있다. 종이책도 250권 가량 있다.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작은 전력기가 있고, 내부를 구성하는 배터리나 부품 등은 아프리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었다.

☞아이디어박스 조립 과정 동영상 보기

아이디어박스엔 문화 콘텐츠와 창작도구도 들어 있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젝트 빔과 영화 100편, 다큐멘터리, 만화, 단편영화 파일을 담았다.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보드게임과 비디오게임 도구도 넣었다. 코드카데미와 협업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콘텐츠와 5HD 카메라, 영상도구, 만들기 도구도 제공한다.

“재난 지역, 의식주 못지 않게 정서 치료도 중요해”

국경없는도서관은 2007년에 설립된 단체로, 도서관과 협업하며 다양한 시민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 도서관 사서를 교육시키거나 온라인공개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제안한다. 일반 시민들에게 정보와 문화에 대한 쉽게 접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그러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아이디어박스다.

아이디어박스의 개념은 아이티 지진에서 시작됐다. 2010년 1월 아이티에서는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약 50만명의 사상자와 1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국경없는도서관은 아이티 지진현장으로 달려가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 바바라 샤크 국경없는도서관 디렉터 설명을 들어보자.

“많은 구호단체들이 이재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했죠. 하지만 이재민이 받은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는데는 신경 쓰지 못했죠. 그래서 한 파트너가 우리에게 연락을 했어요.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책과 학교 수업으로 이재민의 정서 치료를 함께 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책을 실어서 그곳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작은 도서관은 또 다른 역할을 했어요. 많은 대화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는 장소가 된 것이죠.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일상을 되돌아보고, 미래에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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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경없는 도서관 홈페이지

국경없는도서관은 이 경험을 토대로 유니세프와 협력해 ‘스토리박스‘ 300개를 만들었다. 스토리박스에는 100권이 넘는 책이 있었고, 간단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담았다. 이러한 활동은 지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바바라 샤크 디렉터는 <블로터>와 영상 인터뷰에서 “당시 다른 NGO 단체들은 국경없는도서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곤 했다”라고 설명했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당장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자원과 의료 활동을 지원받는다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그들은 다시 아프고 무기력해진다.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난민과 재해민에게 모두 심리치료를 시켜줄 수 없다. 그곳에 있는 의사와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국경없는도서관은 2012년 ‘어전시오브리딩(Urgency of Reading)’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인도 및 구호 활동에서 독서 환경을 제공해, 이를 통해 정서 치료를 하자는 취지다.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1~2년 그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한 번 난민이 된 사람은 평균적으로 17년 동안 난민캠프에 산다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오랜 된 난민캠프에선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돼요. 무엇인가 교류할 수 있는 경우도 적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숨을 쉬고 있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 뿐만 아니라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끼죠.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난민들을 세상과 연결하려 해요. 그들이 창작하고, 놀고, 배우고, 읽고 할 수 있게요. 그것이 난민에게 필요한 도움이라고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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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경없는도서관 홈페이지

국경없는도서관는 어전시오브리딩 캠패인을 더 많이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기술과 MOOC를 더 결합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필립 스탁 디자이너를 찾아갔다. 필립 스탁은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손꼽힐 만큼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다.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한 필립 스탁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사저를 직접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디자인을 할 때도 윤리 의식을 중요시하며, 인간과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기업을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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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스탁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아이디어박스를 떠올렸고, 거기에 그의 가치를 심었다. 필립 스탁은 국경없는도서관 홈페이지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꿈은 더 중요해진다”라며 “독서는 꿈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바바라 샤크 디렉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난민에게 기존에 있던 것을 주기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아이디어박스를 새롭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필립 스탁이 전하는 ‘아이디어박스’ 소개 동영상 보기

위험한 난민캠프 내 어린이 보호소이자 배움터

국경없는도서관은 유엔 산하단체인 유엔난민기구(UNHCR)과 협업해 브룬디라는 아프리카 국가에 아이디어박스를 처음으로 제공했다. 박스 3개는 난민캠프로 보내졌고, 1개는 청소년 회관에 보내졌다. 6개월 동안 사용됐지만, 누구도 아이디어박스 안 물건을 훔쳐가지 않았다. 파손된 부품도 없다. 브룬디에 아이디어 박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3천명이었으며, 2만4천명이 넘는 방문자가 아이디어박스를 보고 갔다. 아침마다 아이디어박스는 교실로 바뀌기도 했다.

“현재 아이디어박스는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자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돼요. 난민캠프는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일하러 갔을 때 아이들이 안전하게 아이디어박스 안에 머무르죠.”

일부 구호단체들이나 시민들은 이러한 활동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발바라 샤크 디렉터는 “아이디어박스가 난민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문화나 지식의 전달보다 의료, 먹을거리, 입을거리에 대한 생존 문제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경없는도서관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누구도 관심 없던 문제에 접근하면서 그곳에서 변화를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의식주 문제에 접근하는 구호단체는 이미 많고, 전문가도 많기 때문이다. 발바라 샤크 디렉터는 “실제로 아이디어박스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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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라 샤크 아이디어박스 디렉터(사진:영상인터뷰 화면 갈무리)

“난민캠프에 있는 아이들은 태블릿PC에 굉장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태블릿은 터치 기반이고 인터랙티브한 기능을 담고 있잖아요? 아이들이 글을 읽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죠. 매우 재미있어해요. 난민캠프에 있는 어른들은 이미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요. 과거엔 의사, 교사, 기자, 학생이었던 사람들인데 종교나 전쟁 등으로 난민이 된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답답한 마음을 더 느끼고 세상과 단절된 기분을 느끼죠. 아이디어박스로 다시 공부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봐요.”

국경없는도서관은 MOOC에 대한 효과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국경없는도서관은 이전에 칸아카데미와 협업하며 카메룬 학생들에게 온라인 교육을 제공했다. 당시 3개월간 교육으로 수학능력이 14% 향상됐고 창의성은 36% 정도 개선되었다는 데이터를 얻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수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를 기반으로 국경없는도서관은 아이디어박스에 온라인강의를 넣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만약 10년 이상 난민캠프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의식주 활동만 한다면? 바바라 샤크 디렉터는 “한 사람의 잠재력이 가장 많은 때는 10~20대”라며 “그 10~20대를 난민캠프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난민캠프에서 빠져나와도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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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박스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주민들 (출처:국경없는 도서관)

아이디어박스 가격은 현재 5만유로, 우리돈 약 6700만원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조립하며, 기기들은 최신 제품이다. 바바라 샤크 디렉터는 “모든 난민캠프에 아이디어박스를 보내고 싶지만, 재정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반도체나 전자기기 생산하는 회사로부터 후원 및 지원을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경없는도서관은 선진국 도서관이나 작은 도시와 협력하는 방식도 모색하고 있다. 아이디어박스는 이동성이 좋아 움직이는 도서관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과 조만간 협력도 맺는다. 다양한 수익모델을 찾아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중이다.

국경없는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5살 이하로 젊은 편이다. 바바라 샤크도 20대 후반이다. 그녀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대학을 나오고 국제경영전략을 전공했다. 그녀는 일반 기업이나 전통적인 NGO 단체가 아닌 왜 국경없는도서관을 선택했을까. 그녀는 ‘가치’를 이유로 들었다.

“인간은 어떻게 특별해지는 걸까요. 배울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국경없는도서관은 인간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는 곳이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활동을 주체적으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매일 제가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국경없는도서관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혁신적인 곳이기도 해요. 그런 곳이 제가 일하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아이디어박스 소개 동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