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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게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미래…사회가 지원해야”

2014.09.23

“픽션과 팩트가 결합한 ‘팩션’, 허구와 기록을 결합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음모론’ 취향 등 현재 우리 사회에 나나나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의 바탕에 현실을 놀이와 중첩시키려는 대중의 욕망이 깔려 있습니다. 큰 인기를 끈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제 오디션과 게임 상황을 중첩시킨 것입니다. 거기서 게임 상황은 곧 실제 상황입니다. 이처럼 ‘게이미피케이션’은 우리에게 의식되지 않은 채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게임화가 게임 전략을 논리적으로 빌려다 쓰는 차원을 넘어 일상 속에 무의식적으로 게임 논리가 적용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9월23일 아침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엔스페이스에서 ‘게임화’를 주제로 연 조찬 강연회 자리였다.

'게임화'를 주제로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9월23일 아침 마련한 조찬 강연회에서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상권 블루클라우드 본부장, 진 교수, 하지현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회자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 ‘게임화’를 주제로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9월23일 아침 마련한 조찬 강연회에서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상권 블루클라우드 본부장, 진 교수, 하지현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회자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게임화(Gamification)‘란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작동 방식을 접목하는 일이다.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RPG 게임처럼 회원등급을 관리하고 고객에게 임무를 던져주며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게임화의 본보기다.

진 교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가 큰 인기를 끈 이유가 게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는 일베에서 긍정성 두가지를 찾았습니다. 첫번째는 게임화입니다. 게임에서 레벨업하는 것처럼 회원등급을 올리게 했죠. 진보 성향 커뮤니티도 하지 못한 기술적으로 진보한 부분입니다. 두번째는 놀이로서 병신문화입니다. 일베 회원에게 ‘왜 일베에 가냐’고 물으면 ‘나 같은 병신 또는 나보다 더한 병신이 있어서’라고 해요. 원초적인 평등성이 있다는 거죠. 공옥진 선생 ‘병신춤’처럼 우리 모두에게 병신같은 면이 있다는 걸 꼬집는 거죠.”

진 교수는 유희 문화에서 시작한 일베가 이념적으로 조직되면서 변질됐다고 분석했다.

“일베가 그런 문화를 만든 건 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루저’고 한번도 인정 못 받았는데 일베 안에서는 인정해주잖아요. 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이 모여 배제하는 놀이를 하는 겁니다. 배제하려면 큰 집단에 속하는 게 좋죠. 그래서 ‘애국’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국가라는 가장 큰 집단에 속하기로 한 겁니다. 거리로 나온 건 이념화됐다는 얘기입니다. 병신놀이는 무정부주의적이었는데 극우주의로 간 거고, 애국하고 있다는 허위의식도 갖게 된 거죠. 국정원이나 새누리당도 이를 은근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가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광화문까지 나선 겁니다. 일베가 갖고 있던 유희정신이나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이 사라지고 극우적인 공격성만 남은 거죠.”

하지현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베 안에서 집단적 퇴행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혼자였다면 안 했을 사람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면 퇴행하게 됩니다. 개인이 갖고 있던 도덕이나 윤리의식이 일시적으로 마비될 정도로 퇴행이 일어나서 자아가 집단의 초자아로 대체되는 겁니다. 집단이 함께 움직이니 ‘그래도 된다. 광화문 가서 퍼포먼스 해도 된다’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거죠. 그래서 선을 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진중권 교수는 게임이 인간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세기 사진과 영화가 시각문화를 주도했다면, 21세기에는 컴퓨터 게임이 시각문화를 지배할 겁니다. 영화와 TV세대가 영상을 한걸음 물러나 감상하려 한다면, 컴퓨터 세대는 달려들어 조작하려 합니다. 전자가 서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컴퓨터 게임 세대는 집단적 협동을 통해 극중 서사를 직접 창조하려들죠. 21세이게는 모든 예술이 게임의 논리를 품도록 요구받게 될 겁니다.”

진중권 교수는 게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고 지적하고, 긍정성을 키우고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게임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을 IT 강국이라고 하는데, IT 생산 강국이 아니라 IT 소비 강국이잖습니까.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더글라스 러시코프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이 아니라 프로그래밍 하는 자와 프로그래밍 당하는 자로 구분될 거라고 했는데, 게임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몰입에서 빠져나와 비판적 거리를 지키면서 게임 문화를 비평하고 게임을 직접 코딩할 수 있게끔 사회와 학교가 지원해야 합니다.”

nuribit@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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