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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오픈소스 글꼴 ‘본고딕’, 태어나기까지

2014.09.29

구글과 어도비가 손잡고 한중일 3개국어를 모두 품은 오픈소스 글꼴을 만들어 지난 7월 내놓았다. 구글은 ‘노토산스CJK’로 부르고 어도비는 ‘본고딕’이라고 한다. 같은 글꼴이다. 15억 인구를 아우르는 글꼴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공개한 일은 처음이다. 3개국어를 아우른 글꼴을 만든 과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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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삽은 어도비가 떴다. 어도비는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3개국어를 아우르는 글꼴(이하 ‘본고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도비는 한중일 3개국 콘텐츠 제작자가 일명 ‘납치범의 협박’ 문제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웹브라우저에서 한국어 글꼴을 기본으로 설정해두고 중국어나 일본어로 만들어진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글꼴을 일관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잡지 스크랩마냥 필체가 들쭉날쭉해 보인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3개국어를 한 글꼴 안에 담아 일관성을 줘야 했다.

협박 편지(출처 : 플리커 CC BY- NC-SA)

▲협박 편지 (출처 : 플리커 CC BY- NC-SA Sven-Olaf Peeck)

어도비가 본고딕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들은 구글 글꼴개발팀이 어도비에 힘을 합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구글도 전세계 언어를 아우르는 오픈소스 글꼴(노토 글꼴)을 만들던 터였다. 어도비는 만든 글꼴을 오픈소스로 공개하자는 구글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구글이 제작비를 대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자 구글과 맞손을 잡기로 결단을 내렸다.

구글은 제작비 지원과 전체 프로젝트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실무 작업은 언어학 박사로 동아시아 언어 구조에 능통한 켄 룬드 박사(어도비 한중일 및 베트남 서체 개발 수석 컴퓨터공학자)가 담당했다. 3개국어 글꼴은 각 나라 글꼴을 만들어온 현지 회사에 맡겼다. 한국은 산돌커뮤니케이션, 중국어와 한자는 중국 창저우 시노타입, 일본어는 일본 이와타가 담당했다. 3년에 걸친 대장정이 시작됐다.

본고딕 개발 작업에 참여한 신정식 구글 국제화팀 폰트 비저너리(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본고딕을 만들 때 서로 다른 언어가 함께 놓일 때 조화롭게 보이는 데 힘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기존 노토 글꼴 모음에 있는 라틴어 글꼴과 조화되도록 하고, 본고딕 안에 포함된 글자들 사이 스타일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데 역점을 뒀습니다. 한중일 3개국어가 공유하는 한자어도 언어 및 지역에 따라 조금씩 글자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달리 만들어야 했습니다.”

오픈소스 글꼴이 의도한 만큼 화면에 예쁘게 뿌려지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오픈소스 글꼴을 화면에 뿌려주는 기술이 상용 글꼴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도비는 자사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벡터 형식으로 만들어진 포스트스크립트 글꼴을 비트맵으로 변환해 화면에 뿌려주는(글꼴 렌더링) 기술인 ‘콤팩트폰트포맷(CFF)’ 기술을 구글이 노토 글꼴을 만들 때 쓰는 오픈소스 글꼴 렌더링 포맷 프리타입에 기여했다. 신정식 엔지니어는 “프리타입 2.4.12 이후 버전은 어도비 CFF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기존 프리타입 렌더링 기술(위 2개)과 어도비 CFF 기술을 적용한 글꼴(가장 아래) 비교. CFF 기술을 적용한 글자가 훨씬 일관적으로 보인다

▲기존 프리타입 렌더링 기술(위 2개)과 어도비 CFF 기술을 적용한 글꼴(가장 아래) 비교. CFF 기술을 적용한 글자가 훨씬 일관적으로 보인다

신정식 엔지니어는 본고딕을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선택의 순간’을 꼽았다. 글꼴은 무한정 많은 글자를 다 포함할 수 없다. 글꼴 표준인 오픈타입 표준은 6만5535자만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한중일 3개국어를 모두 포함할 수는 없다. 이 한계 속에서 어느 글자까지 넣고 무엇을 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신 엔지니어는 “최종적으로 대법원 인명용 한자 30여자를 넣지 못한 점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3년 동안 구글과 어도비, 3개국 글꼴 제작회사가 머리를 맞댄 끝에 7월16일 한중일 3개국어를 지원하는 오픈소스 글꼴 본고딕이 세상에 나왔다. 켄 룬드 박사는 “이 프로젝트는 어떤 서체 개발사라도 굉장히 부담스러워할 만한 대형 프로젝트였다”라며 “구글, 어도비와 각 나라 서체 개발사가 힘을 모아 업계에 큰 횟을 긋는 서체 모음을 완성했다”라고 말했다.

디자이너와 앱 개발자 등 콘텐츠 제작자가 특히 본고딕을 환영했다. 신정식 엔지니어는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많은 분들이 크게 반겨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미처 시험하지 못한 응용프로그램에서 본고딕을 시험해보고 피드백을 주셨죠. 구글플러스 등 SNS를 통해서도 많은 의견을 받았습니다.”

신 엔지니어는 옛 한글을 훌륭하게 구현하는 글꼴을 내놓은 점이 가장 기쁘다고 밝혔다. “옛 한글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글꼴을 무려 7개 굵기로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내놓아 기쁩니다. 옛 한글 중 자주 쓰는 500음절을 골라 완성형 글리프로 넣어둬 다른 옛 한글 글꼴보다 더 다양한 표현을 가능케 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100만개가 넘는 모든 음절을 지원합니다. 이제 국내 연구기관에서 유니코드 사용자 정의영역에 저장된 한국어 옛 문헌을 옛 한글을 위한 정규 유니코드 영역으로 옮겨주면 더 좋겠습니다.”

본고딕은 프로젝트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7월 1.0버전을 공개한 뒤에도 구글와 어도비는 계속 본고딕을 다듬고 있다. 글꼴 자체가 오픈소스인 만큼 사용자의 집단지성을 빌려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9월12일엔 본고딕 1.001버전이 나왔다. 신정식 엔지니어는 “버그가 있으면 고치고 글자 모양 등 문제도 필요에 따라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고딕을 쓰다 나타나는 문제는 구글 노토글꼴 웹사이트깃허브 본고딕 페이지에 신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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