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엘론 머스크, 도전과 행운의 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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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느 소년처럼 우주 탐사를 꿈꿨다. 그리고 지구를 구원하겠다는 희망도 품었다. 공상과학 만화나 영화에 심취했던 꼬마라면 누구나가 꿈꾸는 ‘장래희망’이다. 우주비행선이 거친 굉음을 울리며 달과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누군들 안 가져봤을까. 하지만 그는 여느 어른들과 달리 그 꿈도 열망도 버리지 않았다. 한발짝 한발짝 내디디며 지금은 그 꿈에 바짝 다가갔다.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태생의 캐나다계 미국인. 우주 여행 스타트업 스페이스X와 전기차 개발 스타트업 테슬라모터스의 CEO. 그 전엔 온라인 결제시스템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큰 돈을 거머쥐었던 젊은 엔지니어.

지금은 그에게 전세계 최고의 창업가, 억만장자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한켠에선 그를 ‘피해망상증 환자’, ‘독재자’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거룩한 찬사과 불쾌한 악명이 교차하는 인물, 그가 바로 44세의 ‘무모한’ 창업가 엘론 머스크다.

코딩하는 소년, 12살에 소프트웨어 팔다

앨론 머스크와 동생 킴발 머스크.(출처 : 유튜브 캡처)

엘론 머스크와 동생 킴발 머스크.(출처 : 블룸버그 뉴스 유튜브 캡처)

엘론 머스크는 전기 엔지니어 출신의 아버지와 캐나다 모델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8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의 손에서 컸다.

어릴 때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소질을 드러냈다. 12살 초등학생에 불과하던 엘론 머스크는 ‘블래스타'(Blastar)라는 비디오게임을 개발해 500달러에 판매까지 했다. 만화광이었던 그의 손에서 빚어진 첫 번째 소프트웨어였다. 이 아케이드게임에는 우주로 나아가고픈 그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 한국의 어머니들처럼 비디오게임 개발에 심취한 앨론 머스크를 마뜩잖아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바랐다. 어머니에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얘기를 건네기도 했다. 만화와 기술이 넘치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서기도 했다.

엘론이 17세가 되던 때, 결국 어머니는 그와 남매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갔다. 캐나다 땅을 밟은 지 2년, 엘론은 온타리오 퀸즈대학에 입학한 뒤 펜실베니아대학으로 편입했다. 그가 남아프리카 시절부터 열망했던 미국 땅에 입성한 것이다. 경제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동생 킴발과 함께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창업의 땅에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다

앨론 머스크가 개발한 ZIP2 서비스.(출처 : gopixpic)

앨론 머스크가 개발한 ZIP2 서비스.(출처 : gopixpic)

실리콘밸리는 그에게 시련의 공간이면서 기회의 땅이었다. 1995년 실리콘밸리로 넘어온 그는 스탠포드대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자퇴하고 동생과 함께 집투(ZIP2)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인터넷 세상이 막 열리며 창업가들의 의욕을 부채질할 때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서 삶은 그리 변변치 못했다. 동생 킴발 머스크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엔 YMCA 건물에서 샤워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이러한 고된 일상 속에서 그가 선택한 첫 번째 아이템은 ‘지역 포털‘ 서비스. 주 고객은 신문사들이었다. <뉴욕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이 ZIP2의 고객이 됐다.

그와 동생은 창업 4년 만인 1999년 컴퓨터 제조업체 컴팩의 자회사였던 알타비스타에 ZIP2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무려 3억달러였다. 애초 ZIP2는 시티서치라는 회사와 합병될 처지였지만 머스크는 이사회를 설득해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검색 포털이었던 알타비스타는 야후, 라이코스, 익사이트 등 경쟁사를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뉴욕타임스>와 같은 대형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머스크 형제의 ZIP2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ZIP2 매각으로 보유 지분 만큼인 2200만달러를 손에 쥔 엘론 머스크는 이번에 온라인 금융 시장을 노크했다. 그는 매각 자금으로 확보한 1천만달러를 들여 엑스닷컴(X.COM)을 창업했다. e메일을 활용해 현금을 교환하는 서비스로 보안 기술 개발에 직접 관여했다. 엑스닷컴은 공교롭게도 외계인과의 전쟁을 모티브로 한 비디오 게임 X-COM(1994년 첫 출시)과 타이틀이 동일하다. 엘론 머스크의 우주를 향한 집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듬해 3월, 엘론 머스크는 경쟁사였던 피터 씨엘의 콘피니티를 인수합병했다. 콘피니티의 페이팔은 합병 직전인 2000년 2월, 19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데 이어 매일 9천명의 신규 가입자가 몰려들 만큼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엘론 머스크 입장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콘피니티와 합병 뒤 엑스닷컴의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였던 윌리엄 해리스는 엘론 머스크와 결별을 선언하고 물러났다. 앨론은 자신이 개발한 엑스닷컴 온라인뱅킹 기술이 더 이상 탄력을 받지 못하자 개발을 중단한다. 그리곤 페이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명도 페이팔로 변경했다. 피터 씨엘과 손을 잡은 엘론 머스크는 2002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했다. 두 번째 출구 전략이었다.

본격적으로 화성 정복에 시동을 걸다

테슬라 모델 X를 발표하는 앨론 머스크.(출처 : 플리커)

테슬라 모델 X를 발표하는 앨론 머스크.(출처 : 플리커)

엘론 머스크는 곧잘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에 비유된다. 군수산업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아이언맨 수트를 직접 제작했던 엔지니어. 기술을 무기로 악당과 싸우며 지구를 구원하는 식상한 권선징악의 상징. 유치하면서도 무모한 꿈을 꾸는 성격이 닮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을 위해 전재산을 쏟아붓는 과단성까지도.

‘화성을 정복하고 지구를 구하려는’ 그의 행보는 2002년 스페이스X 설립으로 본격화된다. 엘론 머스크는 마이크로코즘에서 저가 로켓 개발에 참여해온 귄 쇼트웰과 로켓 엔진 연구자 톰 뮐러를 끌어들였다.

그는 페이팔 매각으로 번 돈 1억8천만달러의 상당액을 스페이스X에 베팅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 갓 30 넘은 나이에 그는 우주 여행 로켓 개발이라는 어마어마한 도전을 시작했다. 액체 연료 로켓인 ‘팰콘1’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주 비행은 번번이 실패로 귀결됐다. 그것도 세 번이나.

스페이스X가 로켓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엘론 머스크는 잠시 곁눈질을 하게 된다. 그는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2003년 창업한 테슬라모터스를 눈여겨보다 결국 2004년 또 한 번 베팅을 했다. ‘2년 안에 리튬 이온 전지로 주행하는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마틴 에버하드의 포부를 믿었기 때문이다.

엘런 머스크의 꿈은 2008년 거의 산산조각 났다. 막대한 자금을 들였던 스페이스X의 팰콘은 연속 3차례나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2년이면 출시될 것이라던 테슬라의 전기차 ‘로드스터’는 4년이 넘어서야 첫 모습을 드러냈다. 비용도 무려 1억4천만달러를 소진했다. ‘GM’을 넘어설 것이라던 상상은 물거품이 될 처지였다. 여러 투자자들에게 수백만달러의 투자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노’. 심지어 버럭 화를 낸 투자자도 있었다.

여기에 개인적인 불행까지 겹쳤다. 캐나다 퀸즈대학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던 아내 저스틴 윌슨과 결별했다. “엘론은 모든 관계와 관심이 일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불행은 겹으로 온다는 격언은 들어맞았다. 2008년 그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고 모든 희망이 꺼져갔다.

바닥까지 갔던 2008년 그리고 운

스페이스X의 우주 화물선 '드래곤 캡슐' 앞에 서 있는 앨론 머스크(출처 : 나사 플리커)

스페이스X의 우주 화물선 ‘드래곤 캡슐’ 앞에 서 있는 앨론 머스크(출처 : 나사 플리커)

성공은 운이라고 했다. 성공한 창업가들이 한결같은 말이다. 그에게도 하늘이 내린 행운이 날아들었다. 스페이스X의 4번째 궤도진입마저 실패해 모든 희망의 불씨가 꺼져갈 무렵인 2008년 말, 그것도 ‘비극적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바로 전 주 일요일이었다. 미우주항공국(NASA)이 엘론 머스크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곤 “15억달러 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너무나 행복했던 나머지 무심결에 그는 “정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이를 엿듣기라도 한 듯, 미우주항공국과 계약이 성사된 이틀 뒤인 2008년 12월24일, 몇몇 투자자들이 나서 테슬라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이 모든 반전이 불과 사흘 안에 벌어졌다. 운이 아니면 설명이 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기회였다. 악몽이 될 뻔했던 2008년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메리 크리스마스‘로 맞을 수 있었다.

6년여 지난 2014년 스페이스X는 민간업체로는 유일하게 ISS 화물선을 운행하고 있다. 또한 민간 우주개발 업체로는 최초로 자체 발사대까지 갖출 예정이다. 지난 2013년에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로켓을 개발해 우주여행의 초석을 다지는 데도 성공했다. 화성 탐사의 꿈은 서서히 현실이 돼 가고 있다.

테슬라도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 3분기 7억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9년 1억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3년 20억달러로 20배나 커졌다. 테슬라는 듀얼 모터가 장착된‘ 모델S’를 성공적으로 개발했고 2015년이면 SUV 전기차 ‘모델 X’도 출시할 예정이다. 자동차의 메카를 디트로이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오겠다는 그의 포부도 조만간 실현될지 모른다. 물론 매출이 커지면서 동시에 순손실도 늘어나는 위험 징후가 없진 않지만 그의 성공을 낙관하는 평가가 이젠 더 많아지고 있다.

엘론 머스크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미래

만화와 게임을 즐겨하던 꼬마 엘론 머스크는 이제 화성 정복과 지구 구원을 몸소 실행하는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어릴 적 그래왔던 것처럼 엔지니어”라고 소개한다. 오히려 그는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와 이상주의를 지향하면서 토니 스타크처럼 엉뚱한 발상에 모든 재산을 베팅하는 무모한 도전가에 가깝다.

아직 연료 충전이 필요 없는 태양열 자동차를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화성 정복을 위한 우주왕복선을 발명하지 못했지만 그에게 “너 미쳤니?”라고 따져묻는 이들은 이제 거의 없다. 오히려 그의 꿈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테슬라로 지구를 구원하고 스페이스X로 화성 탐사를 실험하려는 그의 구상이 언제쯤 실현될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시장은 그에게 “꿈을 멈추고 돈을 벌라”고 닥달하지만 엘론 머스크의 ‘꼬마적 감수성’은 여전히 완고하게 꿈을 좇고 있다.

그는 주중 3일은 스페이스X로, 이틀은 테슬라로 출근한다. 주말은 오로지 다섯 아이들, 재혼한 아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8년의 쓰라린 아픔 끝에 찾아온 지금의 윤택함,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이 아직 그의 심장 속에서 춤을 추고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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