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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의 ‘아이폰’…이통사의 이상한 각서

2014.11.14

최근 이동통신업체 대리점을 방문해 ‘아이폰6′, 혹은 ‘아이폰6 플러스’를 구입한 이들이라면 기억 하실 겁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확인서’에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다는 것을요. 이른바 ‘AS 확인서’입니다. KT나 SK텔레콤, LG유플러스 모두 사정은 같습니다.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를 구입하려면 이 확인서에 이름을 쓰고 스스로 서명까지 해야 합니다.

확인서 종류마다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핵심은 이겁니다. 제품에 결함이 있을 때는 이상 여부 판단을 애플 서비스센터에 전적으로 위임하며, 기기결함이나 통화품질 이상이 아닌 이상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 점을 충분히 숙지했다는 뜻으로 서명을 받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이 확인서는 각서나 다름없습니다. 제품에 이상이 있어도 통신사의 책임은 제한된다는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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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동통신서비스 가입과 휴대폰 구입과 같은 할부거래에 관해 사용자가 철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령을 담은 법은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입니다. 그 중에서 제8조 1항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제8조(청약의 철회)

① 소비자는 다음 각 호의 기간(거래당사자가 그 보다 긴 기간을 약정한 경우에는 그 기간을 말한다) 이내에 할부계약에 관한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1. 제6조제1항에 따른 계약서를 받은 날부터 7일. 다만, 그 계약서를 받은 날보다 재화등의 공급이 늦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재화등을 공급받은 날부터 7일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서는 7일 이내에는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가입도 마찬가지로 여기 해당합니다. 사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기의 이상이나 불량품일 경우는 물론, 가입자의 단순변심도 물론 포함됩니다. 그러니 이동통신업체가 사용자로부터 받는 각서가 더 이상할 수밖에요.

이동통신업체에서는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 가입을 철회할 수 있는 사유로 통화품질 불량과 기기의 이상을 꼽고 있습니다. 단순변심은 사유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제품이 이상이 있는지 여부는 애플 서비스센터의 판단에 따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 가입을 취소하려면, 사용자가 직접 애플 서비스센터에 방문해 제품이 불량이라는 판단을 받은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법조계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청약철회가 불가능한 예외사항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비행기나 선박, 철도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예외 사항에 포함이 안 되고요. 또, 제8조 2항 3호를 보면, ‘시간이 지남으로써 다시 판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화등의 가치가 현저히 낮아진 경우’라고 돼 있는데, 이 부분에도 스마트폰이 들어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ㄱ 변호사는 “스마트폰이 개봉과 개통 이후 중고제품이 됐다는 측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용함에 따라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통신사에서 일방적으로 확인서에 서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약철회가 불가능한 경우를 예로 들어 봅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티켓이 있습니다. 비행기에 올라탄 후에는 비행기 티켓은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상식적으로 이 경우는 청약철회를 할 수 없습니다. 철도나 선박 서비스도 마찬가지고요. 이 때문에 대통령령으로 예외 사항으로 정해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비행기나 철도 서비스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청약철회는 지켜져야 합니다.

또, 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판매가 불가능한 재화일 경우 청약철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 부분은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과일이나 우유 등을 고려한 조항입니다. 아이폰이 7일 이내에 썪어버려 재판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종합하면, 모든 예외조항에 아이폰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업체가 이 같은 각서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동통신업체 대리점의 관계자와 대화에서 조금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애플은 예전 ‘아이폰3GS’때부터 이랬어요. 구입 후 10일 이내에는 불량 사유가 인정이 되면, 불량 판정서를 끊어주고 개통 취소나 교환을 해줍니다. 확인서를 받는 이유는 우리(이동통신업체)가 기계를 물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이동통신업체 대리점의 ㄴ 관계자는 “애플은 흠집이 난 제품에 대해서는 교환해주는 정책이 없다”라며 “우리가 기계를 떠안아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사용자의 단순변심으로 제품에 청약철회를 요구할 경우 이동통신업체는 반납된 제품을 애플로 되돌려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고스란히 소실로 처리되는 것이지요. 사실상 단순변심으로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 구입을 취소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 구입한 제품에 사용자의 잘못이 아닌 흠집이 발견돼도 이를 교환하거나 환불할 수 없습니다. 애플이 제품 외관상의 흠집에 대해서는 교환이나 환불 정책을 준비하지 않은 탓입니다.

사용자가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를 교환하거나 환불할 수 있는 길은 제품에 기능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로 제한됩니다. 애플과 이동통신업체의 이 같은 공지 앞에 국내 법은 힘을 잃을 뿐입니다. 또 다른 법조계 전문가에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ㄷ 변호사는 “사용자의 환불이나 교환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손해를 통신사가 떠안도록 돼 있는 것 같다”라며 “이동통신업체 처지에서는 비용부담이 되는 부분이라 확인서와 같은 문서를 받는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아이폰을 가입할 때 서명했던 바로 그 문서. 그 문서는 그럼 법적인 효력이 있을까요. 알아보니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종이쪼가리일 뿐이었습니다.

ㄷ 변호사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제43조에 나와 있는데, 할부거래법을 위반하는 약정은 모두 위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제43조(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의 금지)

제6조부터 13조까지,제 15조, 제16조, 제23조부터 제26조가지의 규정을 위반한 약정으로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

법을 따르면 ‘AS 확인서’도 무효라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업체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 가입을 받으며 아무 효력도 없는 확인서를 마치 법적인 효력이 있는 문서인 양 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권익이 진정으로 보호될 수 있는 방향은 없을까요. 개통철회로 되돌아간 물건에 대한 손해를 이동통신업체와 제조업체가 분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제조사와 통신사가 리스크를 공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조업체는 출고 대수를 기준으로 제품 돈을 받고 있고, 그러면 이동통신업체는 환불이나 교환에 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이니까요. 단순변심으로 청약철회 요청이 들어와도 이 부담은 사용자가 지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체와 이통사가 지도록 해야 합니다”

ㄷ 변호사의 말이 맞는 말입니다. 제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혹은 충동구매한 것이 후회돼서. 사용자는 얼마든지 스마트폰 구입 청약을 철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애플과 이동통신업체의 환불, 교환 정책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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