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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위한 음성안내 TV, ‘이어드림’

2014.11.27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오래 TV를 본단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탓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면, 그만큼 TV와 지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나마도 쉽지 않다. 요즘 TV가 어떤가. 채널은 100개가 넘고, 채널을 바꿔도 방영 중인 프로그램을 쉽게 알기 어렵다. 화면 밑에 디지털로 나오는 프로그램 정보를 읽을 수 없으니. 예전 TV는 몇 개의 채널을 돌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시각장애인의 TV 시청 ‘문턱’이 올라간 꼴이다.

CJ헬로비전이 11월26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TV 서비스를 발표했다. 시각장애인도 스마트TV의 다양한 기능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이름은 ‘이어드림’. 이어드림을 켜면, TV가 시각장애인에게 말을 건다. 방송으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CJ헬로비전의 고민이 이어드림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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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안내로 다시보기부터 VOD까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각장애인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술이 발달했어요. 예전에는 TV는 그냥 누르면 조작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조작 방식도 다양해졌잖아요. 시각장애인은 더 어렵습니다.”

강완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 실장이 CJ헬로비전 상암동 본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강완식 실장은 시각장애인이다. 이어드림 개발 과정에 협력했다. CJ헬로비전의 이어드림 서비스는 저시력자에게도 시각장애인에게도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강완식 실장은 설명했다.

강완식 실장은 “TV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시각장애인은 원하는 채널을 찾기 쉽지 않아 매체 접근성이 나쁘다”라며 “오히려 기술이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을 차단한 꼴”이라고 덧붙였다.

이어드림 사용법은 이렇다. CJ헬로비전의 TV 서비스에 가입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셋톱박스에서 ‘음성안내’ 기능을 켤 수 있다. 음성안내 기능을 켜면, 화면의 모든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준다. 채널을 돌리면, 채널 밑에 나오는 프로그램 정보가 음성으로 나오는 식이다.

‘15번. EBS. ‘꼬마버스 타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요’.’ 채널 번호와 채널 이름, 프로그램 이름과 필요에 따라 프로그램의 회차 제목을 TV가 순서대로 읽어준다. 채널을 돌린 후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오래 들어야 프로그램 정보를 알 수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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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완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 실장, 이재찬 사회공헌경영팀 부장, 김재준 스마트기술팀 부장(왼쪽부터)

CJ헬로비전의 이어드림 서비스는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에도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VOD 서비스는 스마트TV나 케이블TV 셋톱박스를 리모컨으로 조작해야 한다. 비장애인이라면, 메뉴 안의 글자를 읽어 선택하면 된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은 사실상 VOD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각장애인은 VOD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어요. 메뉴의 텍스트를 선택해 접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재찬 CJ헬로비전 사회공헌경영팀 부장은 “이어드림 서비스는 기획 단계부터 시각장애인과 인터뷰를 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춰갔다”라며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TV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속 장면을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방송을 화면해설 방송이라고 부른다. 현재 국내에서 매주 제작되는 화면해설 방송은 100편 내외로, 전체 프로그램의 5% 정도다. 본방송이 나가고, 화면해설 작가가 해설을 별도로 제작해 낮에 주로 편성된다. 낮에 사회생활을 하는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는 시간대다. 이어드림 서비스를 쓰면 낮 시간에 방영되는 화면해설 프로그램도 시각장애인 스스로 예약하고 챙겨볼 수 있다. TV 셋톱박스에 음성안내 기능이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은 부쩍 향상된다.

CJ헬로비전의 이어드림 서비스는 오는 12월3일부터 셋톱박스에 자동으로 판올림된다. 판올림된 이후에는 설정 메뉴에 들어가 음성안내 기능을 켜기만 하면 된다. 별도로 내야 하는 비용은 없다.

CJ헬로비전 ‘이어드림’ 시연 동영상 보기

차별 없는 방송 기술의 불씨 되길

CJ헬로비전의 이어드림 서비스는 CJ헬로비전이 매년 여는 신입사원 아이디어 대회에서 나왔다.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받아 실제 서비스로까지 이어진 경우다. 기술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이를 적용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개발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1년여 개발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메뉴 구성 중 많은 부분이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만들어져 있는 탓이다. CJ헬로비전은 이어드림 서비스에 구글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TTS(Text to speech) 엔진을 활용했는데, TTS는 그림을 읽을 수는 없다. 메뉴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 때문에 글자 대신 그림이 쓰인 경우가 많았다.

강완식 실장은 “문자를 읽도록 하는 기능만 붙이면 될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려운 점이 많다”라며 “어떤 프로그램의 ‘1회’, ‘2회’ 표기가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돼 있으면, TTS가 읽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CJ헬로비전이 이어드림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이미지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때는 메뉴 이미지에 글자를 결합해 TTS 엔진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동안 IPTV 업체에서는 음성안내 기능을 셋톱박스에 추가하는 것을 꺼렸다.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중앙처리장치(CPU)의 성능이 부족해서, 혹은 내장 메모리 용량이 적다는 게 그동안 셋톱박스 생산 업체의 변명이었다. CJ헬로비전의 이어드림은 이제 더이상 기술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CJ헬로비전은 셋톱박스 운영체제(OS)로 구글의 안드로이드OS를 쓴다. 구글의 TTS 엔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인데, 셋톱박스를 HTML 기반으로 구성하는 업체에서도 비슷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플랫폼이 다르다는 점에서 IPTV 서비스의 음성안내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일이다.

“2011년에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가 나와서 덕분에 콘텐츠 수급은 잘 이뤄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 고시에는 시각장애인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어떻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에는 고민이 부족했어요. 콘텐츠가 있어도, 콘텐츠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강완식 실장은 “CJ헬로비전이 먼저 시작했으니 이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도 업체에 요구할 명분이 생긴 것”이라며 “그동안은 기술이 안 돼 못 했다면, 지금은 기술 문제는 해결 됐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어드림 서비스가 갖는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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